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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이야기

욕심과 만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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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중방송 작성일26-06-05 07:42 조회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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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밤은 유난히 잠이 오지 않아 이리뒤척 저리뒤척하다가 결국 머리맡의 핸드폰을 들고 틱톡을 켰다. 무심히 화면을 넘기던 중 눈길을 사로잡는 소식이 있었다. 

 

중국 단동에서 한국으로 향하는 배길이 다시 열린다는 뉴스였다. 2019년 코로나19 사태 이후 무려 5년 동안이나 굳게 닫혀 있던 길이 마침내 다시 열린다니 참으로 반갑고 고마운 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배를 타고 가면 우리가 사는 고장과 가까워 시간도 절약되고 비용도 적게 들 뿐만 아니라 짐도 많이 실을 수 있으니 그야말로 ‘꿩 먹고 알 먹고 둥지 털어 불 때기’ 격이다.

 

불면증으로 안타깝게 모대기던 밤이었건만 이 소식에 신경이 번쩍 살아나며 정신이 외려 맑아졌다. 그리고 지난 10년 동안 하늘길과 바닷길을 오가며 한국에서 알바를 하던 치열했던 나날들이 영화 필름처럼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2011년 나라의 좋은 정책 덕분에 우리 일부 교원들도 H2나 F4 비자를 받아 방학 기간을 이용해 한국을 드나들 수 있게 되었다. 부지런하고 악착같이 일해서 생활 수준을 개선해 보겠다는 열망으로 가득 찬 행렬이었고 당연히 나 역시 그 대열에 합류했다. 남편이 먼저 한국에 들어가 일하고 있었기에 나에게는 ‘님도 보고 뽕도 따는’ 겸사겸사의 여정이었다.

 

한국 드라마를 통해 접한 한국은 중국보다 훨씬 발전하고 문명화된 곳이었다. 무엇보다 마음을 끌었던 것은 우리와 같은 언어를 사용하고 같은 피가 흐르는 동포들이 사는 곳이라는 점이었다. 꿈에 그리던 그곳에서 더 많은 돈까지 벌 수 있다니 그야말로 금상첨화라 여겼다.

 

‘바닷물은 채울 수 있어도 사람의 욕심은 채울 수 없다’던가. 당시 국내에서 매달 받는 교사 월급만으로는 도저히 만족할 수 없었다. 더 잘살아 보겠다는 열망, 현실에 안주하지 않으려는 욕심이 나를 낯선 땅으로 이끌었다.

배를 타고 꼬박 하루밤을 지새운 끝에 드디어 한국 땅을 밟았다. 마중 나온 남편을 따라 이국땅의 신비로운 길거리 풍경을 두리번거리며 구경하다가 그가 살고 있는 월세방에 도착했다. 그러나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나는 저도 모르게 두 눈이 퀭해지고 말았다.

 

문을 열자마자 나타난 아주 좁은 주방은 밥도 해 먹고 샤워도 겸해야 하는 열악한 구조였다. 

안쪽 문을 하나 더 열면 나타나는 방은 겨우 6평방미터가 될까 말까 한 크기였다. 가구 하나 없는 그 방은 혼자 지내기엔 겨우 괜찮을지 몰라도 두 사람이 누우면 공기마저 희박해져 가슴이 답답해왔다. 설상가상으로 창문은 작은 미니 창문이 전부여서 대낮에도 방에 들어가면 전등부터 켜야 했다. 

 

반지하 특유의 눅눅하고 매캐한 공기가 온몸을 감쌌다. 화장실은 밖에 있었는데 세 집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허술한 공공화장실이라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마치 중국의 1970년대 생활 수준으로 돌아간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밥상조차 없어 식사 때가 되면 한국에서 흔히 구할 수 있는 신문지를 바닥에 펴놓고 밥을 먹어야 하는 신세였다.

그동안 홀아비 신세로 지냈을 남편의 형편은 참으로 말이 아니었다. 이런 환경에서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거친 현장 일을 하며 스트레스를 받았으니 오죽했을까. 

 

남편의 얼굴은 몰라보게 상해 있었고 살도 많이 빠져 있었다. 살이 빠지니 입은 예전보다 더 커 보였고 목은 길어졌으며 풍채 좋게 나왔던 배도 흔적 없이 사라졌다. 한국에 도착한 첫날 그 모습을 목격하며 가슴이 뭉클하고 허해졌지만 슬퍼하고 있을 여유는 없었다. 

 

하루도 지체하지 않고 돈을 벌어야겠다는 욕심과 악바리 같은 용기를 내어 나는 바로 이튿날부터 일터로 향했다.

한국에 머무는 짧은 시간 동안 돈을 벌어야 했기에 남들이 하기 싫어하는 일이며 힘들고 더러운 일을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그중에서도 삼복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토요일 저녁에 고깃집에서 설거지를 하거나 복날 삼계탕집에서 홀 서빙과 주방 일을 돕는 것은 내 인생의 거대한 도전이었다. 

 

얼굴에서는 구슬 같은 땀방울이 주르륵 흘러내렸고 온몸이 땀범벅이 되어도 숨 돌릴 틈조차 없었다. 주방에서는 손이 기계처럼 움직여야 했고 홀에서는 숨을 할딱거리면서도 끊임없이 뛰어다니며 주문을 받고 음식을 날라야 했다. 

 

참으로 장난이 아니었다. 다행히 농촌에서 태어나 어머니를 따라다니며 몸을 아끼지 않고 일했던 경험이 있었기에 모진 고단함을 견뎌낼 수 있었다. 저녁에 녹초가 되어 집으로 돌아올 때 손에 쥐어진 일당을 보면 온몸의 피로가 가뭇없이 사라지며 묘한 성취감이 밀려왔다. 그때마다 나에게 일하는 법과 인내를 가르쳐주신 어머니에게 마음속으로 깊이 감사하곤 했다.

 

비록 다 같은 민족이고 같은 언어를 사용한다지만 한국의 표현 방식은 달랐고 외래어가 많아 말귀를 알아듣지 못해 초반에는 고생이 심했다. 

 

그 과정에서 겪은 천대와 무시는 마음의 흉터로 남았다. 고향 학교에서는 학생들의 존경을 받으며 누구에게도 싫은 소리 한마디 듣지 않고 살았던 나였다. 

 

그랬기에 타인의 싸늘한 눈총은 속을 아리고 쓰리게 만들었다. 식당 일에 서툴러 사장에게 늘 지적을 당했고 말귀를 못 알아들어 손님들이 짜증을 부릴 때면 가슴이 무너져 내렸다. “아, 이 아줌마 왜 이래? 말귀를 못 알아듣네…” 하며 얼굴을 찌푸리는 인상을 마주할 때마다 작아지는 나를 느꼈다.

 

하지만 그런 스트레스 속에서도 돈을 벌겠다는 욕심 하나로 꾹 참으며 하루 12시간, 13시간씩 쉬지 않고 일했다. 마음이 남보다 여린 탓에 사장이나 동료들에게 상처 주는 말을 들을 때마다   ‘내가 왜 여기까지 와서 이런 천대를 받아야 하나’ 싶어 억울한 눈물을 훔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이렇게까지 욕심을 부리며 일하는 내 모습이 참 비굴하지 않은가’ 하고 스스로에게 반문하기도 했다. 심지어 너무 욕심을 부리는 내 자신이 미워지기도 했다. 

 

학교에서는 학생들에게 항상 고상하고 품위 있게 살아야 한다고 가르쳤으면서, 정작 나 자신은 왜 돈 앞에서 이토록 비굴해져야 하는지 자괴감이 들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 어느 기사식당이었다. 여섯 가지 반찬이 셀프로 운영되는 곳이라 반찬이 떨어지면 즉시 채워 넣어야 했는데 그것도 깔끔하고 예쁘게 올려놓아야 했다. 그곳에서 가장 곤욕스러운 일은 무거운 깍두기와 김치 통을 채워 넣는 일이었다. 밖이 아무리 춥고 눈이 내리는 날이어도 외투를 걸쳐 입을 새도 없이 홀 서빙을 하던 가벼운 차림 그대로 뛰어나가 언 손으로 김치 통을 날라야 했다. 

 

이런 고되고 궂은일은 당연히 나 같은 일당 알바생의 몫이었다. 그 식당은 얼마나 바쁜지 제대로 된 휴식 시간조차 없었다. 늘 짬을 타서 서둘러 밥을 밀어 넣어야 했기에 한 달 동안 일하면서 편안하게 밥 한 끼 먹어본 기억이 없다.

몸에 맞지 않는 과도한 노동을 감당하려니 매일 온몸이 쑤시고 아파 뼈가 마디마디 저려왔다. 진통제를 먹지 않으면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한 번은 일을 하던 중에 코피를 주르륵 쏟기도 했다. 일이 얼마나 고단했는지 얼굴은 매일 퉁퉁 부어 있었고, 입만 벌리면 마른기침이 새어 나왔다. 평소에는 코를 골 줄도 모르던 내가 집에만 가면 피로에 짓눌려 고꾸라진 채 드르렁드르렁 코를 골며 곯아떨어지곤 했다.

 

그럼에도 나는 이 삼중의 고통을 악으로 버티며 한 달이 넘도록 단 하루도 쉬지 않고 일한 뒤에야 집으로 돌아왔다. 자식을 위해 내 가족이 조금 더 번듯하게 살게 하기 위해 나는 제 몸에 고장이 나는 줄도 모르고 눈먼 욕심을 부리며 살아온 것이다.

 

그러던 중 2019년 연말, 마침내 터질 것이 터졌다.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덮치면서 바다길이 막히고 비행기 표 값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그렇게 나의 치열했던 한국행도 잠시 멈추게 되었다.

 

 지나고 보니 장장 9년이라는 세월 동안 방학 때마다 한 번도 쉬지 않고 한국으로 가 알바를 했던 것이다. 고무줄도 늘였다 줄였다 해야 오래가는 법인데 하물며 사람의 몸이야 오죽하겠는가. 쉬어가며 일을 해야 건강을 유지할 수 있거늘 나는 내 욕심을 채우기 위해 무리하게 몸을 혹사했다. 

 

설상가상으로 코로나에 걸렸을 때는 자칫 이 세상과 영영 하직할 뻔한 아찔한 순간도 겪었다. 기계도 고장이 나면 수리해가며 쓰는 법인데 나는 몸이 부서져라 비명을 지르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오직 돈만 바라보며 앞만 보고 달려왔던 것이다.

 

이런 큰 시련을 겪고 나니 예전에 어르신들이 하시던 말씀이 자꾸만 뇌리를 스친다.

“‘고만이’가 평생 따르고 있으니 아글타글 애써도 소용없느니라.”

 

즉 사람은 저마다 하늘이 정해놓은 ‘고만큼’의 분량이 있으니 지나치게 욕심을 부려봤자 소용없다는 뜻이다. 인생의 가혹한 세례를 받고 나서야 나 역시 이 말의 참뜻을 뼈저리게 믿게 되었다. 항상 제 힘에 맞게 숨을 고르며 살아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고 그 욕심이 만들어내는 만족의 기준 역시 끝이 없다. 그러나 가질 수 없는 끝없는 만족을 위해 지나친 욕심을 부리는 것은 결국 자신을 갉아먹고 해치는 지름길일 뿐이다.

 

내가 가진 현실을 소중히 여기고 지금 이 순간에 감사하며 만족할 줄 아는 것. 그것이 오롯이 나를 지키며 살아가는 진정한 인생의 도리가 아니겠는가. 

오늘 밤, 다시 열리는 바다길 소식 앞에서 나는 비로소 욕심을 내려놓는 평온한 만족을 배운다.
/리미옥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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