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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이야기

설날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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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중방송 작성일25-01-27 16:31 조회1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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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 아침이다. 전화기를 열고 보니 위챗, 카카오톡에 형제자매, 조카, 동창, 친구...등 설 인사가 수두룩 들어왔다. 나는 일일이 답장을 올리고 보니 옛날 설날 생각이 눈앞에 삼삼하다.
 
섣달 그믐날 밤 온 집 식구들은 따뜻한 구들에 모여앉아 웃고 이야기하다 새해를 알리는 벽에 걸린 괘종시계가 “당~ 당, 당~ 당” 12시를 알리는 종 소리를 듣고는 부랴부랴 물만두를 삶아 먹는다.
 
자정이 넘었지만 잠을 자지 않으려고 애썼다. 아버지께서는 일찍 잠을 자면 눈섭이 희여진다고 하지만 나는 졸음을 이기지 못해 끝내는 잠들고 말았다. 이 기회를 타서 형님께서는 나의 눈썹에 흰떡가루를 발라놓고 놀려주었다.
 
섣달 그믐날 밤, 자지 않은 것을 “수세한다”고 하여 집집마다 초롱불을 환하게 밝혀놓고 정월 초하루를 맞이했다. 설날 아침이 되면 가족들이 모두 새 옷으로 차려입고 차례를 지냈다.
 
차례를 지낸 후에는 자리를 정리하고 앉는다. 그리고 아버지, 어머님께 절하고 형님, 누나 등 차례로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절을 하며 새해 인사를 드렸다. 그리고 차례를 지낸 설음식으로 아침 식사를 마친다.
 
결혼 후 나는 무순시로 이사 갔지만 해마다 명절이면 부모님을 모시고 있는 시골 형님 집으로 가서 설을 보내곤 했다. 형수님은 명절 때가 되면 숙제 검사를 받는 아이 심정이 되고 만다.
 
설날 아침이면 형제자매들이 모여 왁자지껄 떠드는 웃음소리가 문틈으로 새여나가 고향 마을 파란 하늘 위로 퍼져갔다.
 
“둘째야, 그래도 동네 어르신들을 찾아뵙거라”,
 
“예, 아버지” 나는 아버지의 호령에 동네 일가 친척과 환갑지낸 노인들을 찾아 세배를 하러 다녔다. 세배를 하고 나면 술 안주상이 들어온다. 어르신께서 한잔, 두잔 권하는 60도 배갈을 마신다. 이렇게 반나절 동네를 돌고 나서 초저녁 친구 집에 모여 넓은 방에다 상다리가 부러지도록 차린 고사리 무침, 나물, 두부, 돼지고기, 콩 나물,.. 등 음식을 놓은 술상에 앉아 귄하는 인정에 술잔을 비운다.
 
그리고 장단을 잘 치는 용남이는 부엌에 내러가 대야에 물을 반 정도 담고 그 위에 물바가지를 엎어 놓고 방으로 들고 와서는 양손에 대나무 저가락 묶음을 쥐고는 “쿵작작 쿵작작, 쿵작작 쿵작작” 손에 젖 먹던 힘 까지 다 해가면서 장단을 친다. 그럼 우리들은 그 장단에 맞춰 “도라지, 노들강변, 민중의 길, 18세 순희...” 등 다양한 노래와 춤으로 초가집이 무너지도록 노래를 부르고 구들장이 들썽 들썽하게 춤을 추면서 취흥을 돋우면서 설날을 지냈다.
 
나는 아직도 그 세월이 그립다. 한번 흐르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것이 세월 이라고 그 시절은 영영 돌아 오지 않을 것이다. 오늘날 설날보다 옛날 설날 다양한 세시풍속이 더 그립다.
 
오늘의 설날 아침은 장남, 며느리, 딸이 부어주는 술을 마시고 밖으로 나왔지만 설날에도 친구, 형제들이 식당에 출근하고 또는 고향에 있는 처자식들과 명절을 쇠러 가고 있어 나는 찾아갈 곳이 없다.
 
눈앞에는 노래방, 다방, 마작 게임방 간판만 보이지만 거기로는 발길이 가지 않는다. 비록 살기 좋은 세월은 분명 하지만 몸이 멀어지니 마음도 멀어지면서 인연이 멀어지는 소리가 설날 아침의 겨울바람에 마른 나무가지 부딪치듯 처령하게 들려오고 있다.
 
부모님들도 다 돌아갔으니 형제자매들도 제집에서 설은 지내다 보니 차츰 정이 멀어지고 직장을 그만두니 동료들과의 연락도 두절 되고 고향에서 함께 지내던 친구들과도 설날이면 함께 이야기를 나누면서 한잔 술에 인생과 그리움을 달래곤 했었는데 지금은 어디 있는지도 모르고 이국땅에서 15년 동안 금전의 노예로 살아온 것이 못내 후회되기도 한다.
 
오늘따라 설날이 다가오니 나는 옛날이 더 그리워진다. 고불고불 산골길로 오르고 내리고 하던 소박한 삶, 사람과 일로 정신없이 부대끼며 살아야 하는 것보다 산야와 흐르는 계곡 소리에 몸과 마음을 담으며 조용히 내면의 뜰에 비자루 질을 하면서 살고 싶다.
 
가진 것 많지 않아도 마음 편한 풍족한 고향의 시골, 컴퓨터 게임 같은 유홍 없이 자연과 더불어 마음껏 숨 쉬며 뛰놀 수 있는 옛날이 그립다.
 
이제 그 고향 집에는 아무도 없다. 부모님, 형님은 하늘나라로 가셨고 조카들은 모두 시내로 나가고 형수님은 혼자 현성에 나와 아파트에 사신다고 하는데 아마도 형님의 3간 벽돌기와집은 폐기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설날이면 온 가족이 모여들던 형님의 집 마당에는 오늘도 사람 그림자도 없이 함박눈만 소복이 쌓여 있을 것이다.
 
오늘은 우리 민족의 최대 명절 설날이다. 이 설날 아침, 지나온 어린 시절을 생각하노라니 나의 눈굽은 절로 젖어들기 시작한다. 왜서일까?
 
이제 60성상을 살아온 나에게 또 몇개의 살날이 더 찾아올까?
아, 그립다. 지나온 고향의 설 명절이여!
/신석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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