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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이야기

설날의 곤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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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중방송 작성일23-01-22 16:56 조회57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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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설이 오면 왜 마음은 이처럼 허전하고 쓸쓸해 나는지 모르겠습니다. 50대 아줌마의 권태기? 아니면 돌아가신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  아니면...

 

착잡해지는 이 마음 무엇때문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면서 저도 모르게 십대의 옛날 그 시절로 돌아가봅니다. 우리들의 십대에는 설날이 일년중 제일 큰 명절이어서 늘 손꼽아 기다리군 했습니다. 설이 다가올 무렵이 되면 할머니와 엄마의 손길은 무척 바빠지시군 하였습니다. 지금은 상점들에 기성복이 있어 돈 주고 사 입으면 그만이지만 그때 우리들 삼형제의 설날 입을 옷은 모두 엄마가 손수 천을 사다가 만들군 했습니다.

 

일년중 설날에야 새 옷을 입고 새 양말을 신을 수 있었습니다. 한편으로 식구들의 옷을 만들랴, 한편으로는 설 음식들을 장만하랴, 그야말로 엄마는 눈코뜰새없이 바삐 돌아쳤습니다. 옷을 만드는 것이 엄마의 몫이라면 음식은 거의 전부 할머니가 장만하시군 했습니다.

 

설 한달전부터 할머니는 미리 만들어 놓은 누룩으로 막걸리를 담그군 했습니다. 할머니가 만든 막걸리는 노오란 기름이 동동 떠있는것이 그야말로 일품이였습니다. 그리고는 설날에 먹을 콩나물과 녹두나물도 직접 길렀습니다. 깊은 밤이면 일어나셔서 콩나물 시루에 물 주시군 하던 할머니의 그 모습 지금도 눈 앞에 선합니다.

 

또 가을에 장만해주었던 보리가루에 찰옥수수쌀, 싸래기를 넣어서 엿을 달이기도 했습니다. 엿을 달이는 날에는 이웃집 아이들과 더불어 엿가마 주위를 뱅뱅 돌면서 달콤한 엿물을 얻어먹느라 여념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하루종일 달인 엿을그대로 넙적넙적 얼군것은 판대기라고 하였고 불그레한 엿을 할머니와 엄마가 오래동안 서로 잡아당겨 하얗게 되면 토막낸 것은 엿사탕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찹쌀을 꼬들밥 만들어서 말리운 다음 기름에 튀기여 물엿을 넣어 강정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깨강정, 국수튀우기 강정을 만들어 놓으면 우리삼형제의 겨울간식거리였고 이웃들이나 친척들이 세배오면 내놓기도 했습니다.

 

그믐날부터는 큰 집부터 번갈아가면서 사촌들까지 다 모여서 음식을 먹군 했눈데요. 어른들 두상, 아이들도 두상, 그렇게 온 구들 꽉 차게 앉아서 웃고 떠들썩 하면서 보내던 십대의 설이였습니다. 설날이면 엄마가 해준 새 옷을 입고 큰집 할아버지 할머니, 큰 아버지 큰 어머니, 할머니와 부보님께 엄마가 가르쳐 준대로 세배하고 나면 웃 어른들이 주시던 세배돈이 그렇게 소중할수가.

 

그 세배돈으로 개학이면 공책이랑 연필도 사군했습니다. 그렇게 손꼽아 기다리던 설이 언제부턴가 싫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북적북적하던 설이 언제부턴가 조용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도시진출과 출국바람에 친척들과 함께 설을 쇠는 것은 고사하고 식구들이 함께 모여서 설을 쇠는 것도 까마득한 옛 일로 되여버렸습니다.

 

지금은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져 돈만 주면 옷이든 먹을 것이든 무엇이나 다 살 수 있는데 옛날의 그 설이 그리운 건 무엇 때문일까요? 설날이 오면 마음이 허전한 건 옛날의 그 추억이 그리워서 일까요? 아니면 삭막해진 이 세상 정이 고파서 일까요?
/김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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