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동설한의 출퇴근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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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중방송 작성일23-12-26 12:31 조회213회 댓글0건본문
매서운 한파가 몰아치는 추운 겨울의 오늘도 종전과 마찬가지로 이른 아침의 어두운 장막을 깨우는 알람소리가 어김없이 울린다. 그 소리에 날마다 적응된 듯 반응하여 잠에서 깨어 눈을 비비며 기상하자 마자 한밤의 온기를 가득 품은 이브자리를 개이며 하루일과를 시작한다.
곧바로 분주히 서두르며 버스 시간을 놓칠세라 시계를 쳐다보며 부랴부랴 아침 출근 준비를 한다. 날마다 반복되는 일상 스케줄에 따라 풍상고초를 겪는 삶의 노무 현장으로 몸을 담그러 오늘도 종전과 마찬가지로 옷을 두툼하게 입고 집을 나선다.
엄동설한 한파의 칼바람이 달려들어 귓등을 스친다. 시린 두 손으로 꽁꽁 언 귀를 감싸 쥐고 버스정류장에서 한참을 기다려서야 승차하게 된다. 오늘따라 버스카드 단말기에 태그하니 잘 인식하지 못한다. 추워서 손이 시린데 기계는 자꾸만 다시 카드를 찍으라고 하여 앞에서 카드를 찍던 사람이 불만스레 버스 운전기사한테 무엇이라 한다.
아침의 출근 시간 때에는 사람들이 붐비어 버스안은 승객이 꽉 찬다. 임산부 노약자석에 앉아 있는 어떤 30대의 아가씨가 입안에 무엇을 넣고 씹으며 핸드폰을 쳐들고 게임을 하며 즐기고 있다. 그 옆에는 허리 구부정한 백발의 할머니가 힘들게 서 있는데도 자리 양보없이 아랑곳 하지 않고 그냥 모르는 척하면서 틀고 앉아 있다. 곁의 사람들은 아니꼬운 눈길로 흘겨본다. 버스 타고 30여분 경과하여 하차 후 총망히 숨이 차게 회사까지 걸음을 재촉하여 헐떡거리며 도착한다.
회사에 출근하여서는 하루의 일정에 따라 자기 맡은 업무를 수행하려고 모든 준비를 잘하여 열심히 몸을 움직여야 하며 긴장속에서 정신을 가다듬고 작업에 집중해야 한다. 그렇게 회사에서 하루종일 맴돌아 치며 작업에 몰두하다 보면 해는 서산으로 기울어져 짧은 겨울의 하루는 금방 황혼이 된다.
퇴근 무렵이 되면 꼭 운전기사 한테서 뒤늦은 시간대에 전화가 온다. 자동차 계기판에 노란 수도꼭지 모양의 경고등이 뜨면서 차가 힘이 없어 잘 달리지 못한다고 한다. 어서 빨리 회사로 들어오라 하여 이슥히 기다려서 도착 후 확인해 보니 엔진 체크 경고등이 노란빛을 발산하고 있었다.
스캐너로 점검하여 보니 이그니션 코일이 탈이 생겼다. 얼른 신품으로 교환하고 고장 코드를 소거한 후 정상으로 회복시켜 완료하고는 출고시켰다. 그러다 보니 퇴근 시간이 훌쩍 지나서 지친 몸을 털고 퇴근하게 된다.
12월의 겨울은 낮이 짧아서 오후 6시 지나면 어두워지어 저녁 시간대로 진입한다. 가로등 불빛 아래에서 버스 정류장으로 향하는 퇴근길은 집으로 간다는 심리 때문인지 하루 종일 서서 일하던 피곤도 잊고 어쩐지 흐뭇한 심정으로 부리나케 귀로에 오른다.
퇴근길 버스에 앉아 차창밖을 내다보니 오색영롱 화려속의 불빛 찬연한 서울 거리 아파트 지붕마루 위엔 어느새 달이 떠서 휘영청 밝게 빛나고 있다. 하늘의 둥근 달을 쳐다보니 스스로 고향 생각이 떠오른다.
고향 떠나 타관 생활 몇 해 이던가? 기나긴 해외 살이 십여 년 지났지만 오매에도 그리운 내가 태어나서 자란 고향 모습이 보고 싶다. 어릴 적 고사리 같은 손가락 꼽으며 청정한 밤하늘의 수많은 별을 세던 정경이 생생하게 떠 오른다. 지금 역시 고향의 밤하늘엔 달과 별이 떠있겠지? 같은 하늘아래 같은 오늘 밤의 이 시각에 똑같은 달과 별이 반짝이며 비추건만 타관 땅에서 바라보는 달은 고향에서 바라보는 그 모습과 다르게 보인다.
고향에서의 맑은 밤하늘의 달과 별이 윙크할 때 가로등 불빛 아래에서 다정히 가족과 행복하게 손을 잡고 거리를 활보하면서 오손도손 재밌게 이야기 나누며 산책하던 지난 그 시절이 지금도 새삼스레 맴돌아 치며 재현된다. 해란강의 맑은 물 출렁이며 흘러서 싱긋한 향토 내음을 풍기던 내 고향, 풍경화 같은 멋진 경치에 매혹되어 찬란한 웃음소리 듬뿍 넘치며 들끓던 내 고향, 그때에는 청정한 고향산천의 그 모습이 너무도 아름다웠는데 지금은 어떻게 변하였을까?
버스에 앉아 깊은 생각에 잠겨 있다 보니 하마터면 내려야 할 정류장을 지나칠 뻔했다. 버스가 출발하려는 순간 갑자기 정신 차리고 후다닥 운전 기사 보고 "잠깐만, 내립시다" 하며 카드 찍고 하차하였다.
집으로 향하여 걸으면서 언제까지 이렇게 몸을 부대끼며 해야 하나 반문하면서 또 한번 정리해 본다. 대부분 사람들은 처음에 출국할 때에는 몇 년간 열심히 돈 벌어 가지고 고향으로 돌아 가겠다고 계획을 세우다가 그 몇 년이 지나면 다시 십년을 채워서 더 있겠다 하고 또 십년이 지나면 애매모호하게 결론 내리지 못하고 정답을 찾지 못한 채 망설이고 있다.
어느 때까지 어떻게 할지를 단정할 수 없어서 확실한 계획을 세우지 못하고 그냥 그럭저럭 머물러 있게 되는 추세로 나간다. 처음에는 아끼고 열심히 힘들게 일하며 욕심 부리던 것이 지금은 점차 나이가 들어 가면서 건강을 챙기며 자기 일상 생활 용돈만 벌면 된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하면서 그냥 머물러 있는 것 같다.
사람들은 살면서 자기가 하는 일은 모두 옳은 것 같고 남이 하는 일은 모두가 아닌것 같아 한다. 그냥 말로 옳다 그르다 하며 왈가불가 할 것이 아니라 그런 환경속에서 직접 자기가 체험하고 어떠한 것을 느껴 보아야 그 정도의 측도를 알 수 있기 마련이다.
실로 속담에 "애를 낳아본 사람만이 그 고통을 안다" 고 하는 것이 틀림없는 것 같다. 본인이 직접 겪어 보아야 그 진가를 확실히 알고 인정하기 때문이다. 그냥 다른 사람들의 말만 듣고는 귀 등을 스쳐 지나 버리고 이해되지 않아 하며 부정한다. 나도 역시 이 부류의 일원에 속한다.
그 한 가지 실례를 들자면 나는 집에서 혼자 술을 마시는 스타일이 아니어서 다른 사람들이 늘 밥 먹기 전 반주 술을 마시는 것에 대하여 의문을 가진 사람 중의 한 성원이었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니 그 사람들이 얼마나 힘들고 지쳤으면 술로 달래였겠는가 하는 것을 이해할 것 같다. 또 한 면으로는 지친 몸을 술로 위로하며 달래는 것 같기도 하지만 상습적으로 이것이 습관화 되면 당연 안 되는 것인데 하면서 생각하기도 한다.
그렇게 주장해 오던 내가 요새 너무 정신없이 자동차 정비하면서 승용차 변속기를 두 대나 교환하는 큰 작업을 연거퍼 하다 보니 체력 노동으로 안 쓰던 근육을 동원하면서 힘을 썼더니 여기저기 온몸의 구석구석 잡아당기는 느낌으로 몸을 움직이기가 아주 불편하였다.
저녁을 먹으려고 밥상에 앉으니 혼자서 술을 마시지 않던 내가 은근히 술 생각이 나서 소주잔에 술을 부어 눈을 지그시 감고 "캬" 하고 몇 잔을 원 샷 하였더니 바로 액체에너지가 기분 전환의 파워로 작동하여 피곤도 풀리고 마음이 홀가분해 지면서 둔탁한 움직임이 서서히 자취를 감추는 느낌이 들었다.
이렇게 여태껏 체험 못했던 음주의 또 다른 반응 효과가 새로운 일상생활의 심취를 불러일으키는 것 같았다. 저녁상을 거둔 후 텔레비전을 틀고 오늘은 국내외 정세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나 하고 저녁 뉴스를 집중하여 본다. 그렇게 한참을 TV 보다가 몰려오는 피곤함의 졸음에 떠밀려 꿈나라로 들어간다.
세월의 시계 바퀴는 야속하게 빨리도 굴러 가고 있다. 소리 없이 빙글빙글 돌고 돌아가기만 하며 인생에 던져 주는 건 어쩜 연륜과 주름뿐이다. 한국에 입국할 때 만해도 파릇파릇하던 선남선녀들이 세월속에서 슬그머니 노화의 핍박을 면치 못하여 미의 흔적만 남겨놓고 머리에 서리발이 내린다. 마음은 의연히 새파란 데 겉모습은 낙인이 찍혀진 단풍의 이미지이다. 실로 나무 위의 파란 잎을 바라보았는데 땅에 떨어진 그 잎을 주어 봤더니 그것은 세월이 였더라. 그 세월은 우리와 함께 동행하여 단풍이 들었다.
단풍잎 같은 황혼 노을빛 인생 고개마루에서 이젠 건강을 잘 챙기는 것이 가장 요긴한 우선 과제인 것 같다. 이젠 쉬엄쉬엄 느슨하게 주어진 자기 일상을 잘 소화하면서 행복을 추구하여야 하는데 어쩐지 사람의 욕심이란 것은 끝이 없는가 보아진다.
그리하여 오늘도 내일을 기약하면서 또 다시 출근길에 올라선다.
/남철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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