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리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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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중방송 작성일24-11-13 11:40 조회14회 댓글0건본문
1980년도 어느날, 내가 하마탕 수의소(兽医站)에서 일할 때 있었던 일이다.
당시 우리 수의소에는 모두 다섯 명의 수의사가 있었다. 현성에서 농촌으로 하향하여 온 김소장, 연변농학원을 졸업하고 우리 소로 배치된 주 선생님, 원래부터 있었던 초선생님과 송선생님, 그리고 농학원 수의계를 졸업하고 여기로 배치받아 온 저까지 모두 다섯 명의 수의사가 있었다.
봄철의 농촌은 한창 파종 시기라 아주 빠쁜 시기라 찾아오는 사람들이 거의 없어서 한가한 때였다.
그때 우리 소에는 손잡이 트랙터가 있었기에 겨울철에는 산에 가서 나무 땔감도 하고 가정집 일에 사용 할 수 있어서 매우 유용했다.
5월 중순이 되면 따스한 봄기운을 받아 풀잎들이 들판에 파릇파릇 돋고 산에는 갖가지 야생 나물들도 생기있게 피어오른다.
그러던 어느 날, 직장에 트랙터가 있으니깐 “야산으로 들놀이 할 겸 산나물도 뜯을 겸 고사리 뜯으러 가면 좋지 않을까요?”라고 했더니 모두가 이구동성으로 그렇게 하자고 찬성했다.
고사리 뜯으러 가려면 어느 산으로 가야 하고 또 산책할 겸 떠나는 거라 점심 식사 준비도 해야 하고 또 고사리를 담을 그릇도 준비해야 했다.
그래서 나는 해마다 봄철이면 고사리 뜯으러 다니는 누나를 믿고 고사리를 많이 뜯을 수 있다는 생각으로 내일 차를 가지고 가니 선생님들 모두 한 사람당 큰 마대 2개씩 준비하시고 점심은 요리도 잘하는 누나에게 부탁하려는 생각에 술과 반찬, 밥 등은 내가 모두 준비 하겠으니 아무런 부담도 가지지 말고 단위로 모이라고 했다.
집으로 돌아온 후 저녁밥을 먹으면서 아무리 생각 해봐야 내일 고사리 뜯으러 갈 곳을 정하기가 힘들었다. 할 수 없이 체면 불구하고 산발에 능숙한 뒤 집 아주머니에게 우리와 함께 내일 고사리 뜯으러 가자고 청을 들었더니 선뜻 동의했다.
이튿날 차를 운전해 서양촌 서쪽 방향 시다왕 깊은 산으로 들어갔다. 봄을 맞은 산은 추운 겨울의 추위를 이겨 내고 푸른 잎으로 새롭게 옷 단장했다.
그런데 정작 산에 도착하니 이게 웬일인가? 고사리는 찿아볼 수 없었으며 한참이나 돌아다녀도 누구나 고사리 한대도 뜯지 못했다.
모두 크게 낙심했다. 우리를 안내한 아주머니는 너무 미안해 하면서 왔던 바하고 고사리는 못 뜯어도 다른 나물이라도 뜯어가자고 가자고 하면서 여러가지 산나물을 가르쳐 주었다. 하지만 처음 보는 산나물이라 우리는 모두가 아주머니의 뒤꽁무니만 따라 다니다 보니 겨우 한움큼씩 밖에 뜯지 못했다.
이렇게 이리저리 산길을 다니다보니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기 시작햇다. 시계를 보니 12시가 넘었다.
아쉽지만 그래도 선생님들은 비록 고사리는 못 뜯어도 신선한 공기를 마시면서 힐링한 보람이 있다고 하면서 점심이나 즐겁게 먹고 보자고 했다.
점심을 먹으면서도 고사리를 뜯지 못하고 돌아가면 다른 분들한테 너무나도 미안하다는 생각에 나는 더덕이라도 캐 가면 좋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래서 돌아오는 길에 전에 친구와 함께 더덕캐러 왔던 곳으로 들러보았다. 그런데 이게 왼 일인가? 근처에 도착하니 더덕향기가 코를 찔렀다. 요즘은 바쁜 철이라 누구도 오지 않은 것 같았다. 덕분에 우리 일행은 더덕을 열심히 캘 수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우리의 마음도 즐거웠다. 비록 고사리는 뜯지 못했지만 대신 “산삼”이라고도 하는 고급 영양 식품인 더덕을 한껏 캤으니 말이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그때의 그 일들은 영원히 잊혀지지 않고 추억으로 남아있다.
/전학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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