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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이야기

금궤 할머니

페이지 정보

작성자 한중방송 작성일24-01-24 21:19 조회15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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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하고 집에서 손녀를 키워주다가 손녀가 유치원에 가게 된 어느 날 남편이 우리도 한국에 가보자고 하였다. 남편의 성화에 나는 3년 전에 한국행을 택하게 되었다.
 
한국에 와서 여기저기 기웃거렸지만 간호사로 퇴직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간병일 밖에 없었다. 이렇게 요양병원에서 할머니 5명을 돌봐온 세월도 어언간 3년 되어간다. 그동안 많은 사연을 겪어왔지만 금궤 할머니 이야기는 내 마음을 아프게 하고 인타깝게 한다.
 
작년 5월에 내가 맡아보고 있는 병실에는 이씨 성을 가진 할머니 한 분이 입원하셨다. 모두들 그분을 금궤 할머니라고 부르는데 그럴만한 사연이 있다.
 
할머니는 병원에 입원하시면서 금궤를 안고 오셨다. 92세의 나이에도 자식들에게 맡기는 것이 아쉬워서 금궤를 서랍장에 꽁꽁 묶어가지고 입원하셨다. 그 속에는 집 계약서, 문서, 통장, 현금... 등 여러가지 서류들로 꽉 차 있었다.
 
금궤를 침대 옆에 놓고 하루에 수십번 만지작거렸다. 코로나 비상시기임에도 불구하고 하루가 멀다하게 은행간다, 복덕방 간다 하면서 간호사들을 귀찮게 굴기도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금궤가 열리지 않았다. 비밀번호가 할머니 기억속에서 사라졌던 것이다. 매일 시도 때도 없이 금궤에 매달려 잘칵잘칵 소리내면서 무진애를 썼지만 열 수가 없었다. 보물단지보다 더 소중히 여기던 금궤가 고장났다. 그후부터 할머니는 치매가 점점 더 심해갔다.
 
할머니는 평생 부동산 사업을 하신 어르신이다. 하여 모아 놓은 재산들도 꽤 있다고 한다. 평생을 돈 벌고 모으는 재미로만 살아오신 분이셨고 돈에 대한 집착이 지나칠 정도다.
 
입원한 후 옷 보따리를 정리하면서 나는 깜작 놀랐다. 그렇게 부자라는 할머니가 변변한 옷가지 하나 없었다. 속 내의도 할아버지 입던 것들을 수선해서 당신 것으로 만들어 몸에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입고 다니셔서 남들의 비웃음을 받기도 하였다. 값진 옷이라고는 구경할 수도 없었다.
 
할머니는 늘 이렇게 말씀하시면서 자식은 절대 부유하게 키워서는 안 된다고 하셨고 후회도 많이 하셨다. 할머니는 슬하에 딸 하나, 아들 하나 뒀는데 그들 나이도 60~70이 넘었고 부모님 모실 상황도 못 되었다.
 
요양병원에 오신 후 안정을 찾지 못하시고 날이면 날마다 집에 데려가 달라고, 퇴원시켜 달라고 자식들에게 애원하셨다. 퇴원시켜드리지 못하는 자식에 대한 원망과 불만이 커지면서 자식들에게 재산을 물려준 것마저 후회했다.
 
날마다 자식을 출세시켜 봤자 아무 소용이 없다고 하시고 안부 전화도 거부하고 받지 않는다. 면회와도 반가운 기색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이 외면하였다. 면회 왔다 돌아가는 자식들에게 당신을 데려가 달라고 엉엉 소리내여 울면서 애들처럼 떼쓰기도 한다. 그런 소란으로 병원을 떠들썩하게 만들어 놓을 때가 한 두번 이 아니다. 이런 부모님을 뒤로하고 떠나 가는 자식 마음도 착잡하고 찢어질 듯하여 발길을 떼지 못한다.
 
할머니는 날마다 치매가 심해지면서 자식들을 경찰서에 신고한다, 변호사를 찾아가서 물려준 재산을 되돌려 받겠다고 야단이다. 그리고 택시 타고 당신 혼자 집에 간다고 고집부리기도 하고 통장 3개를 기저기속에 감춰 두기도 하였다. 하여 통장이 오줌에 흠뻑 젖어 볼품없게 되는 울지도 웃지도 못할 일들이 비일비재였다.
 
이런 세월을 보내면서 기진맥진한 할머니는 밥맛까지 잃어가시더니 자리에서 일어날 수도 없게 되였다. 나는 매일 이러는 할머니를 달래고 위로하면서 온갖 정성를 다 했다. 맛있는 간식거리 챙겨드리고 어린애 달래듯 두 손 꼬~옥 잡고 대화를 나누면서 그 병든 마음을 보듬어 드리고 함께 힘든 시간을 보냈다.
 
치매환자도 가끔씩 맑은 정신으로 돌아올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나를 빤히 쳐다보면서 당신은 인생을 바보처럼 살아왔다고 한탄하시면서 나더러 돈 벌어 고향으로 돌아가면 남은 인생 자기만을 위해 살라고 한다.
 
할머니는 인젠 바짝 말라 뼈가 앙상하고 하루하루를 겨우 지탱해가고 있다. 갈수록 쇠약해지는 할머니를 보면서 돈과 재산이 뭐길래? 하고 나는 인생에 대한 허무감을 느낀다.
 
평생을 부자로 살아오면서 부자답게 누려야 할 것을 누리지 못하고 돈과 재산에 그토록 집착하셨던 할머니가 가엽다. 인젠 자기 돈을 자기 마음대로 지배할 수 없게 되였으니 아무리 금산, 은산 가지고 있다 한들 무슨 소용 있으랴...
 
정신이 흐려지고 몸도 내 의지대로 움직일 수 없으니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자식들 뜻대로 따를수 밖에 없는 신세다.
 
할머니 모습은 요양원, 요양병원의 수많은 노인들의 축소판이다. 인생의 끝자락에 선 어르신마다 제일 후회를 하는 것이 젊어서 자기를 위해 살지 못한 회한들이다. 물론 만족한 삶을 누리자면 일상에서 필요로 하는 돈 없이는 불가능하다. 자기의 신근한 노동으로 열심히 돈 버는 것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돈의 노예가 되여 소처럼 일만 하는 자세는 바람직하지 않다. 또 돈 벌어서 쓸 곳에 안 쓰고 은행에 꼬박꼬박 저금만 하는 것도 비뚤어진 삶이라고 보아진다. 열심히 벌어서 나를 위해 쓰고 주변도 둘러보면서 어려운 이들도 보듬어 주면서 여유 있는 삶, 보람된 삶, 봉사하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백세시대라 해서 사람마다 백세까지 행복하게 산다는 의미는 아니다. 천년만년 살 것 처럼 발버둥 치며 살다가 예고없이 부르면 모든 것을 다 두고 빈손으로 떠나는 것이 인생이건만 할머니의 집착은 오늘도 진행형이다. 그 집착은 할머니만 괴롭힌다. 나를 위한 집착도 좋지만 우리는 베푸는 아량을 배우고 키워야 한다.
 
나이 60을 넘었지만 나의 노후의 삶을 위하여 자식들 경제적 기반을 도우려고 이국 타향에서 자존심도 안면도 다 버리고 밤잠 설치면서 힘들고 어지러운 일 마다하지 않고 한다.
 
오늘도 보람차고 활기차게 어려움을 견뎌내면서 묵묵히 열심히 일하고 있다. 할머니가 살아오신 일생을 지켜보면서 나는 깨달은 바가 많다. 인젠 내 나이도 자기만을 위해 살아야 할 때가 되었다고 ...
 
내일은 기약이 없으니 오늘이 생의 마지막 날이라고 생각하고 지금까지 누리지 못한 것들
을 누리면서 내일 떠나더라도 후회 없는 삶을 살겠다고 마음속으로 다짐해 본다.
/문홍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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