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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이야기

한국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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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중방송 작성일23-03-08 00:37 조회42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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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입원하는 환자가 있어서 간병 하기로 하고 환자가 있는 병실로 들어갔다.
 
순간 나는 깜짝 놀랐다.
 
70 문턱을 금방 넘었다는 어머니인데 80이 넘어 보이고 얼굴색이 창백하고 계속 하혈을 하여 기저귀를 차고 있었다. 30대의 아들과 함께 왔었다. 아들 말에 의하면 어머니가 음식점을 꾸리고 있는데 얼마 전부터 하혈을 한다기에 기저귀들을 많이 사다 놓았다고 한다.
 
그러나 하혈이 인츰 멈추지 않으니 거절하는 어머니를 억지로 모시고 병원에 왔는데 자궁암이라는 진단이 내렸단다.
 
나는 환자분을 “어머니 어머니”라고 하면서 친절하게 대해주었고 많은 위로도 해 주면서 며칠 뒤에 나오는 모든 검사결과를 기다렸다. 며칠 후 결과가 나왔다. 보호자와 나는 또 한번 깜짝 놀랐다. 말기 암인데 다른 부위에도 다 전파되여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호스피스 병동으로 옮기면 좋겠다고 했다. 그러나 아들은 눈물을 머금고 포기하지 않고 치료를 해드리겠다고 했다.
 
너무나도 불쌍하고 가련했다. 울고 있는 아들도, 자기가 죽게 된 것도 모르고 지친 몸을 끌면서 계속 일만 했다는 어머니도 ...
 
자기 병에 대해 모르고 있는 환자는 늘 아들 걱정만 했다. 병원에 올 때는 걸어서 왔건만 병상에 눕고 나니 모든 맥이 다 풀려서 일어서지도 못했다. 그나마 세 분 언니들한테서 문안 전화가 자주 왔다.
 
그때부터 환자가 너무 불쌍해서 동정심이 생겨 극진히 보살펴 주게 되였고 정이 들게 되였다. 언제나 마음속으로 내 부모라면, 내 친형제라면, 내 딱 친구라면 하는 생각으로 사랑의 손길을 주었다. 아들은 언니들을 그리워하는 어머니를 위하여 나를 형제들 카톡 그룹에 가입시켰다. 나는 자주 형제들과 영상통화도 해드리고 환자의 정황과 사진도 찍어 그룹에 올리 군 했다.
 
나를 믿게 된 환자는 짬만 있으면 눈물겨운 가정사를 하나하나 이야기 해주었다. 그 가정사들은 내가 환자를 더 잘 보살펴 주게 된 계기가 되였다.
 
환자의 친정아버지는 알콜 중독자여서 구차한 생활 속에서 자랐는데 결혼 후 남편도 알콜 중독에 걸려서 심한 생활고에 시달렸다. 4남매를 낳았는데 제대로 먹이고 입히지 못하였고 자식들은 공부도 마음껏 못하고 어린 나이에 절로 살길을 찾아 하나, 둘 집을 떠나갔다. 막내 아들을 낳은 후 남편도 집을 떠나 노숙자 생활을 하던 중 세상 떴다는 연락을 받고 시신을 모셔다 장례를 치렀단다. 그때 큰아들과 큰딸은 연락이 두절되였다.
 
그때부터 어머니는 어린 아들을 집에 두고 궂은일, 마른일 가리지 않고 돈을 벌어서 집 나간 작은 딸을 시집보냈고 작은 아들을 정성껏 키웠다. 작은 아들은 누구의 도움도 없이 절로 초등학교를 잘 다녔단다. 낮에는 학교에 갔다가 돌아와서는 숙제를 다 해놓고 어둠이 내리는 저녁이면 인적이 드문 시골 버스 정류소에 혼자 쪼그리고 앉아 엄마가 돌아오기만 기다리다가 엄마가 지친 몸으로 버스에서 내리면 뛰여 가서 엄마 품에 안긴다. 그 후 돈을 모아 작은 음식 가게를 꾸렸고 작은 아들을 장가도 보냈으나 위의 세 남매는 연락이 없었다. 동생을 불쌍하게 여기는 언니들 만 연락을 한다.
 
같은 여성으로서 이런 가슴 아픈 사연을 들으면서 눈물도 흘렸고 등을 어루만지면서 위로도 해주면서 속으로는 어쩌면 이런 기구한 운명으로 태어나서 인제야 손자도 안아보고 웃으면서 살만하니 병마 앞에 쓰러지게 되었을까 하는 동정심이 생기군 하였다. 하여 친구처럼, 딸처럼 지내면서 밥맛이 떨어지면 맛 나는 것을 사다 드리고 기분이 흐리면 우스갯소리로 위로해주고 고통스러워 할 때면 인츰 간호사들을 부르고 하면서 모든 정성을 다 했다.
 
살아갈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엄마를 두고 효자인 작은 아들만 엄마 옆에서 눈물을 훔치고 있을 뿐 다른 자식들은 너무나 깊은 상처 때문인지 오지 않았다.
 
나의 이 한국 “어머니”는 기적적으로 나와 3개월 넘게 같이 있었다. 병세가 악화 되자 과장님은 호스피스 병동으로 옮겨야겠다고 했다.
 
이때 뜻밖의 일이 생겼다. 환자가 울면서 “이 언니(나를 존대해서)와 갈라지라면 어디도 안가. 언니는 형제나 자식보다도 더 좋아. 언니 없으면 난 못살아” 하면서 야단쳤다. 며칠 동안 아들이 설복하고 호스피스 병동 과장님과 간호 부장, 간호사들이 와서 설득해도 듣지 않았고 병원교회 목사님까지 와서 설복하자 “당신들 우리 언니가 어떤 사람인 줄 알아요? 대학 졸업생이예요.”하면서 말도 못 붙이게 했다. 평상시에 “어머니” 이야기를 들으면서 환자의 신임을 얻기 위해 나도 내가 지나온 일들을 가끔 말해드렸는데 이렇게 깊이 기억할 줄 몰랐다.
 
순간 목사님은 나를 보면서 사실이냐 물었다. 내가 머리를 끄덕이자 목사님은 “환자분이 좋은 언니를 만나 행운이예요”라고 하시며 “어머니”를 위로해주셨다.
 
저도 어떻게 하면 될까? 생각을 굴리던 끝에 호스피스 병동 간호 부장님한테 나도 환자와 같이 가서 이삼일 있으면서 설득하면 안 되겠냐고 했다. 그렇게 하기로 하고 그날 저녁 환자와 엄숙한 대화를 했다.
 
“어머니 왜 옮겨가야 하는지 몰랐어요? 그 병동은 간병비를 받지 않아요. 그래서 옮기라고 했어요” 라고 했더니 화를 내면서 “간병비를 줄 만한 돈은 내게 얼마든지 있어”라고 했다.
 
“그 돈을 절약 했다가 불쌍한 아들과 손주들에게 주면 안 돼요?”라고 나도 말했다. 그날 밤 “어머니”는 장밤 뒤척이면서 사색에 잠겼다. 이튿 날 아침, 눈이 부은 “어머니”는 “내가 장 밤 울면서 생각했는데 언니가 시키는 대로 할게”라고 했다.
 
바로 그날 호스피스 병동으로 옮기고 저녁이 되니 “어머니 나도 집에 가고 싶은데 오늘 저녁은 아들과 함께 지내면 안 될까요?”라고 했더니 그러라고 대답했다.
 
이튿 날 아침, 과자봉지를 들고 갔더니 기다렸다며 좋아한다. 간호 부장님은 “어머니”와의 정을 떼여야 한다면서 자주 오지 말거나 잠자는 시간에 와서 조용히 보고 가라고 했다.
 
그 후부터 나는 “어머니”가 낮잠을 잘 때면 간식을 사다 놓고 전화로 이야기를 하곤 했다. 다른 환자를 돌봐드리기에 시간이 없어서 인츰 돌아왔다고 핑계를 댄다. 저도 정을 뗄 수가 없어서 짬만 있으면 윗층 병실에서 “어머니”가 있는 아래층 건너편 병실을 하염없이 바라보면서 “어머니” 앞길이 걱정되어서 한숨을 쉬였다.
 
“어머니”는 떠나갔어도 내 머리 속에서는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다. 지금도 “어머니”가 마지막까지 걱정하시던 작은 아들 한데 가끔씩 전화를 해보기도 한다.
/태순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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