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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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중방송 작성일22-05-25 14:45 조회680회 댓글0건본문
어느 때 부터였던지 내 몸이 이전과 같지 않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체중은 그대로인데 몸이 무거워 지는 것을 느끼게 되였고 작은 글자들이 잘 안 보여 돋보기를 찾게 되였고 기억력도 점점 못해지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늙어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 멀리만 보이던 노년이였는데 세월이 참으로 야속하다. 젊었을 적의 꿈과 열정이 점점 식어가고 나이 들면 추억 속에 산다고 하더니 이젠 자꾸 지난 일들을 돌이켜 보게 된다.
39살 되던 해에 남편과 사별하고 홀로 어린 두 딸을 키우고 공부 시키느라 눈물도 많이 흘렸으며 고생도 많이 했었다. 근 삼십년 세월이 흘러 딸애들도 다 크고 주변에는 긴 세월 얼마나 외롭게 보냈을까 하면서 걱정하는 친구들이 많다. 하지만 지나온 내 인생을 돌이켜 보면 나는 스스로 대견스럽게 여겨질 때가 있다.
남편을 저 세상에 보내고 직장 생활도 해야 했고 두 딸을 키워야 했고 집안에서 맏이로 자란 나는 동생들 뒤 바라지를 하면서 부모 노릇을 해야 했고 딸애들 앞에서는 아버지의 빈자리를 메 꾸어 주느라 외로움을 느낄 여가도 없이 살아왔었다.
2000년도 초기 동생들이 한국에 돈 벌러 가면서부터 나는 조카들을 맡아 키우게 되였는데 남동생 부부의 두 살, 세 살 되는 아들과 딸을 맡아 키우느라 내 사생활 영역을 돌볼 사이가 없었다. 바깥활동은 아예 접어두고 살다보니 지금 생각해도 말로 형언할 수 없이 힘든 시기였다. 다행이도 내가 소통할 수 있었던 곳은 사이버 공간이였다.
퇴근하고 집에 돌아와서 어린 조카애들을 재워 놓고 나는 컴퓨터 앞에 앉아 몇천명 회원이 모인 카페를 운영하면서 문학을 하는 친구들, 영상제작을 하는 친구들을 만나 새로운 취미생활을 찾아 즐길 수 있었다.
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한 나는 중학교에서 화학을 가르치다가 행정관리 일을 하다 보니 문학과 거리가 먼 일을 했었는데 카페를 운영하면서 영상제작도 하고 회원님들과 소통을 하면서 많은 글을 읽었고 가끔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재미를 느끼게 되였다.
퇴직을 하던 그 해에 올케가 귀국하여 조카들을 데려가고 나는 드디어 나만의 시간을 갖고 여유로운 생활을 시작하였다. 내 자식을 키우고 어린 조카애들을 키우면서 어디도 다닐 수 없었던 나는 퇴직한 후 5년간 한국에 여섯 번 다녀왔는데 한국 팔도의 경치 좋다는 곳을 다 찾아 다녔고 딸애들이 살고 있는 곳에 가서는 중국 남방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여행도 즐겼다.
세월은 화살처럼 빨리 퇴직한지도 어느덧 10년이 되였고 내 나이도 60대 중반이 되였다. 좋은 나이를 다 흘러 보냈다고 아쉬워하는 나이가 된 것이다. 반면에 내가 잘 살아왔는지 잘못 살아왔는지를 차분하게 생각 할 수 있는 나이가 됐고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지를 사색하는 나이가 되였다.
세상만사 새옹지마라고 젊어서 희로애락을 다 겪어 본 나한테는 웬만한 고생은 아무것도 아니다. 딸애들은 자신의 일터에서 홀로서기를 했고 아직 건강한 나는 인생을 다시 사는 기분으로 젊어서 하고 싶어도 못했던 일들을 하면서 나 자신만을 위한 생활을 즐기고 있다.
나는 지금이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다. 인생은 지금부터라는 생각도 가끔 하게 된다. 칼 같던 성격도 느슨해지고 마음가짐도 여유로워 웬만한 일에 성을 내지 않는다. 퇴직했으니 시간에 쫓기면서 허둥지둥 할 필요도, 남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이 친구들과 함께 맛 집 찾아 너도 한잔 나도 한잔 하면서 즐긴다.
워낙 활달한 성격인 나는 취미생활도 다양하다. 한생을 책과 씨름 해왔지만 아직도 책 읽기를 즐긴다. 문학에 관심이 많아지고 요즈음엔 시집을 읽기 좋아한다. 등산을 좋아 하였는데 이젠 나이를 염려하여 가파로운 등산은 피하고 친구들과 한담을 하면서 산책을 한다.
젊어서 상상도 못했던 춤 교실, 노래교실에 가서 춤도 추고 노래도 부를 수 있고 봄이면 꽃 구경하고 봄나물을 캐고, 가을이면 단풍 구경 다니며 버섯 따기도 하고, 과일 밭에 가서 과일도 따면서 어디든 떠나고 싶을 때에는 자유롭게 떠난다.
베란다에는 각가지 화초를 심어놓고 정성들여 가꿔 이쁘게 피는 꽃을 감상하기를 좋아한다. 가끔 친구들과 모여 마작도 논다. 저녁이면 좋아하는 드라마를 감상하기도 하고 음악도 듣고 글도 조금씩 쓰면서 여유롭고 한가한 시간을 보낸다.
자식을 위해 해야 할 일은 건강관리를 잘 하는 것이다. 내가 아프면 자식들한테 제일 큰 짐이 된다는 것을 항상 념두에 두고 있다.
이젠 70고개를 바라보는 인생의 가을계절이다. 몸은 늙어가지만 마음은 될수록 젊게 살려고 한다. 배움에 게으르지 말고 현시대의 흐름 속에서 젊은이들한테 너무 뒤떨어지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핸드폰과 컴퓨터 다루기를 좋아한다. 가끔 이웃과 친구들이 컴퓨터, 핸드폰에 문제가 생겼다고 하면 달려가서 해결해 준다.
지금은 뭐든지 모르는 것이 있으면 컴퓨터와 핸드폰을 켜고 검색을 하면 다 알 수 있고 어디에 가던 길을 몰라도 아무 문제없다. 핸드폰 네이비게이션을 켜면 큰 성시에 가서도 내가 가고 싶은 곳을 다 안내해 준다. 핸드폰 하나만 들고 나가도 너무 편한 세상이다.
젊었을 적엔 나는 직업상 수칙과 제도를 세우고 솔선수범하면서 살았다. 이제는 도덕적 범주를 지키는 전제하에 원칙과 제도에 자신을 옥매여 놓을 필요는 없다. 몸이 여유로운 시간에 마음도 여유롭게 이웃들과도 가까이 나누면서 누군가의 기쁨을 같이 기뻐해 주고 누군가의 슬픔을 아파해주면서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을 구분하면서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고 검소하나 누추하지 않은 품위 있는 삶을 살아가는 할머니가 되는 것이 내 꿈이다.
얼굴에 고급화장품을 바르고 미용실에 가 보톡스를 맞으면서 늙는 것을 회피하는 걸로 그쳐서는 부족하다. 젊었을 적의 자신을 놓아주고 현실적으로 늙어간다는 사실을 직시하고 노년의 덕을 습득하면서 곱게 늙어가는 노인이 되기 위해, 내 인생의 가을을 더 아름답고 풍요롭게 장식하기 위해 나는 매일매일 최선을 다 해서 살 것이다 .
/전채순
늙어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 멀리만 보이던 노년이였는데 세월이 참으로 야속하다. 젊었을 적의 꿈과 열정이 점점 식어가고 나이 들면 추억 속에 산다고 하더니 이젠 자꾸 지난 일들을 돌이켜 보게 된다.
39살 되던 해에 남편과 사별하고 홀로 어린 두 딸을 키우고 공부 시키느라 눈물도 많이 흘렸으며 고생도 많이 했었다. 근 삼십년 세월이 흘러 딸애들도 다 크고 주변에는 긴 세월 얼마나 외롭게 보냈을까 하면서 걱정하는 친구들이 많다. 하지만 지나온 내 인생을 돌이켜 보면 나는 스스로 대견스럽게 여겨질 때가 있다.
남편을 저 세상에 보내고 직장 생활도 해야 했고 두 딸을 키워야 했고 집안에서 맏이로 자란 나는 동생들 뒤 바라지를 하면서 부모 노릇을 해야 했고 딸애들 앞에서는 아버지의 빈자리를 메 꾸어 주느라 외로움을 느낄 여가도 없이 살아왔었다.
2000년도 초기 동생들이 한국에 돈 벌러 가면서부터 나는 조카들을 맡아 키우게 되였는데 남동생 부부의 두 살, 세 살 되는 아들과 딸을 맡아 키우느라 내 사생활 영역을 돌볼 사이가 없었다. 바깥활동은 아예 접어두고 살다보니 지금 생각해도 말로 형언할 수 없이 힘든 시기였다. 다행이도 내가 소통할 수 있었던 곳은 사이버 공간이였다.
퇴근하고 집에 돌아와서 어린 조카애들을 재워 놓고 나는 컴퓨터 앞에 앉아 몇천명 회원이 모인 카페를 운영하면서 문학을 하는 친구들, 영상제작을 하는 친구들을 만나 새로운 취미생활을 찾아 즐길 수 있었다.
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한 나는 중학교에서 화학을 가르치다가 행정관리 일을 하다 보니 문학과 거리가 먼 일을 했었는데 카페를 운영하면서 영상제작도 하고 회원님들과 소통을 하면서 많은 글을 읽었고 가끔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재미를 느끼게 되였다.
퇴직을 하던 그 해에 올케가 귀국하여 조카들을 데려가고 나는 드디어 나만의 시간을 갖고 여유로운 생활을 시작하였다. 내 자식을 키우고 어린 조카애들을 키우면서 어디도 다닐 수 없었던 나는 퇴직한 후 5년간 한국에 여섯 번 다녀왔는데 한국 팔도의 경치 좋다는 곳을 다 찾아 다녔고 딸애들이 살고 있는 곳에 가서는 중국 남방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여행도 즐겼다.
세월은 화살처럼 빨리 퇴직한지도 어느덧 10년이 되였고 내 나이도 60대 중반이 되였다. 좋은 나이를 다 흘러 보냈다고 아쉬워하는 나이가 된 것이다. 반면에 내가 잘 살아왔는지 잘못 살아왔는지를 차분하게 생각 할 수 있는 나이가 됐고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지를 사색하는 나이가 되였다.
세상만사 새옹지마라고 젊어서 희로애락을 다 겪어 본 나한테는 웬만한 고생은 아무것도 아니다. 딸애들은 자신의 일터에서 홀로서기를 했고 아직 건강한 나는 인생을 다시 사는 기분으로 젊어서 하고 싶어도 못했던 일들을 하면서 나 자신만을 위한 생활을 즐기고 있다.
나는 지금이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다. 인생은 지금부터라는 생각도 가끔 하게 된다. 칼 같던 성격도 느슨해지고 마음가짐도 여유로워 웬만한 일에 성을 내지 않는다. 퇴직했으니 시간에 쫓기면서 허둥지둥 할 필요도, 남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이 친구들과 함께 맛 집 찾아 너도 한잔 나도 한잔 하면서 즐긴다.
워낙 활달한 성격인 나는 취미생활도 다양하다. 한생을 책과 씨름 해왔지만 아직도 책 읽기를 즐긴다. 문학에 관심이 많아지고 요즈음엔 시집을 읽기 좋아한다. 등산을 좋아 하였는데 이젠 나이를 염려하여 가파로운 등산은 피하고 친구들과 한담을 하면서 산책을 한다.
젊어서 상상도 못했던 춤 교실, 노래교실에 가서 춤도 추고 노래도 부를 수 있고 봄이면 꽃 구경하고 봄나물을 캐고, 가을이면 단풍 구경 다니며 버섯 따기도 하고, 과일 밭에 가서 과일도 따면서 어디든 떠나고 싶을 때에는 자유롭게 떠난다.
베란다에는 각가지 화초를 심어놓고 정성들여 가꿔 이쁘게 피는 꽃을 감상하기를 좋아한다. 가끔 친구들과 모여 마작도 논다. 저녁이면 좋아하는 드라마를 감상하기도 하고 음악도 듣고 글도 조금씩 쓰면서 여유롭고 한가한 시간을 보낸다.
자식을 위해 해야 할 일은 건강관리를 잘 하는 것이다. 내가 아프면 자식들한테 제일 큰 짐이 된다는 것을 항상 념두에 두고 있다.
이젠 70고개를 바라보는 인생의 가을계절이다. 몸은 늙어가지만 마음은 될수록 젊게 살려고 한다. 배움에 게으르지 말고 현시대의 흐름 속에서 젊은이들한테 너무 뒤떨어지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핸드폰과 컴퓨터 다루기를 좋아한다. 가끔 이웃과 친구들이 컴퓨터, 핸드폰에 문제가 생겼다고 하면 달려가서 해결해 준다.
지금은 뭐든지 모르는 것이 있으면 컴퓨터와 핸드폰을 켜고 검색을 하면 다 알 수 있고 어디에 가던 길을 몰라도 아무 문제없다. 핸드폰 네이비게이션을 켜면 큰 성시에 가서도 내가 가고 싶은 곳을 다 안내해 준다. 핸드폰 하나만 들고 나가도 너무 편한 세상이다.
젊었을 적엔 나는 직업상 수칙과 제도를 세우고 솔선수범하면서 살았다. 이제는 도덕적 범주를 지키는 전제하에 원칙과 제도에 자신을 옥매여 놓을 필요는 없다. 몸이 여유로운 시간에 마음도 여유롭게 이웃들과도 가까이 나누면서 누군가의 기쁨을 같이 기뻐해 주고 누군가의 슬픔을 아파해주면서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을 구분하면서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고 검소하나 누추하지 않은 품위 있는 삶을 살아가는 할머니가 되는 것이 내 꿈이다.
얼굴에 고급화장품을 바르고 미용실에 가 보톡스를 맞으면서 늙는 것을 회피하는 걸로 그쳐서는 부족하다. 젊었을 적의 자신을 놓아주고 현실적으로 늙어간다는 사실을 직시하고 노년의 덕을 습득하면서 곱게 늙어가는 노인이 되기 위해, 내 인생의 가을을 더 아름답고 풍요롭게 장식하기 위해 나는 매일매일 최선을 다 해서 살 것이다 .
/전채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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