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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이야기

나와의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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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중방송 작성일22-12-20 12:50 조회45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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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예외없이 새벽 일찍 일어나 새벽 조깅 운동을 하려고 잠에서 깨어났지만 도무지 일어날 수가 없다. 머리가 아프고 위가 쓰리고 속이 메스껍다. 어제 저녁에 또 과음을 한 것이다.
 
한국에 갔던 친구가 3년 비자가 만기되어 재입국비자를 받으려고 귀향했기에 어제 친구와 함께 택시를 타고 현의 한 불고기집에 가서 술잔을 나누며 그동안 그립던 정을 나눴다. 반가운 기분에 한잔, 또 한잔, 비우다 보니 결국 50도 짜리 소주 4병을 굽 내고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예전 같으면 둘이서 그까짓 소주 4병 정도 마셔서는 간에 기별이 갈까말까 할 정도였는데 이제는 몸도 나이를 알아서인지 술을 조금이라도 과하면 그 이튿날은 온 몸이 지긋지긋 아파 나고 머리도 흐릿하다. 게다가 속까지 쓰리고 메스껍다.
 
내가 새벽 조깅 운동을 시작한지는 내 나이 25살부터다. 나는 매일 새벽처럼 일어나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1시간 정도 달리기와 여러 가지 운동을 하고 서야 아침 밥상에 앉는다. 금년 내 나이 60의 문턱을 넘어섰으니 내가 새벽 조깅 운동을 한지 40년이 된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전날 저녁에 술을 많이 마시고도 몸에 무리가 없어 이튿날 아침에 새벽처럼 잠자리에 거뜬하게 일어나 1시간 조깅 운동을 하고서야 아침상을 마주했다.
 
운동을 하고나면 몸이 개운하고 밥맛도 댕긴다. 그런데 요 근년에 와서는 전날 저녁에 술을 좀 과하게 마셨다 하면 몸이 예전처럼 따라주지 않아 이튿날 새벽에 무조건 잠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그 차수도 점점 많아진다. 그리고 이튿날 아침에 전날 술상에서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무슨 말이 오갔는지, 어떻게 집으로 왔는지 필름이 드문드문 두 동강이나 도통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래서 매번 술 장소가 있을 때마다 나는 술을 좀 자제하고 적게 마셔야지 하고 다짐을 하고 마누라도 늙으막에 건강하게 살려면 술을 좀 재발 적게 마시라고 눈을 흘기고 바가지를 박박 긁지만 술상에서 술이 어느 정도 들어가면 내가 언제 그런 다짐을 했던가 언녕 까마귀 고기를 먹은 후다. 그래서 요 근년에 내가 전날 저녁 술 마시러 가는 기미만 보이면 마누라는 이튿날 아침이면 내가 어김없이 찾는 냉이 된장국을 잊지 않고 끓여 아침상에 올린다.
 
오늘도 마누라는 새벽처럼 일어나 냉이 된장국을 끓여 놓고 나만 일어나기를 기다렸다. 마누라가 냉이 된장국이 식으면 끓이고 3번 끓여 서야 나는 겨우 아침상에 앉을 수 있었다.
 
향긋한 냉이향이 풍기는 된장국 한 그릇 비우니 숙취가 해소되어 아프던 머리도 쓰리던 속도 많이 나아지고 몸도 한결 개운하다. 나는 시원한 바람이라도 맞으면 머리와 몸이 더 개운해질 것 같아 집 문을 나섰다. 아침나절의 찬 냉기가 코끝과 귀 부리에 맴돌고 한기가 몸을 파고 든다. 한겨울 새벽 조깅운동에 나서면 보통 영하 30도의 추위에도 한기를 별로 느끼지 못했는데 나이도 나이지만 그보다 엊저녁의 과음으로 밤사이 몸이 허해져 한기를 더 느끼는 것 같다.
 
가을걷이가 끝낸 터 밭에는 아직 겨울 김장배추와 무 잎에 간밤에 서리가 하얗게 내려 아침 해살에 보석처럼 반짝반짝 빛나고 있다. 길옆 풀숲에 잠자리와 메뚜기들이 서리에 날개가 무거웠는지 아니면 몸이 굳어졌는지 사람이 가까이 가도 도망가지 않고 눈만 뒤룩거리며 나만 빤히 쳐다본다.
 
가을걷이가 끝난 길 건너 사래 긴 옥수수 밭과 논밭에는 소와 양떼가 유유히 흐르고 있다. 길가의 가로수에는 낙엽이 한 잎, 두 잎, 팔랑팔랑 떨어지다 가도 이따금 바람이 확 불어올 때면 무리 지어 우수수 떨어진다. 떨어지는 낙엽을 바라보니 낙엽도 어쩌면 나무와 계절과 자연과의 섭리에 따르는 하나의 약속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낙엽이 떨어져야 다시 내년 봄에 나무 가지에 새로운 생명을 움 틔우고 여름에는 푸름으로 살찌우고 가을에는 울긋불긋 화려한 단풍으로 정렬을 불태우다가 겨울이 오면 한 생을 다 하고 흔연히 나무를 떠나 뿌리로 돌아가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나는 지금까지 인생을 살아오면서 나와 한 약속을 얼마나 지켜오면서 살아왔을까?...
 
돌이켜 보면 나는 나와의 약속은 많이 했지만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살아온 것 같다. 우선 술과 담배다. 지금은 백세시대라고 많은 사람들은 건강을 챙기느라 술을 과음하던 데로부터 자기 몸에 해가 가지 않게 적당히 마시거나 금주하고 몇십년을 피우던 담배도 하루아침에 금연하고 사는 사람이 갈수록 많아지고 사회적으로 하나의 좋은 기류로 형성되고 있다.
 
요즘 한국에서는 금연을 하는 사람들을 돕기 위한 무료금연상담캠페인, 전국 각 지방보건소마다 금연상담소를 설치하여 금연을 원하는 사람들과 수시로 상담하고 금연에 필요한 여러가지 약과 껌, 사탕도 주면서 금연을 돕고 있어 사회적으로 큰 반응과 호응을 받고 있다.
 
나도 과음이 몸에 해롭고 백해무익인 담배는 무조건 금연하려고 나와 20년 전부터 약속을 했다. 그런데 그 약속을 2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지키지 못하고 있다.
 
매번 술 마실 장소가 있을 때면 나는 술을 좀 적당하게 마셔야지 하고 가는데 정작 술상에 앉아 어느 정도 마시면 내가 언제 그런 약속을 했던가 싶게 남이 권하는 대로 마시고 때론 기분이 좋아 한잔, 기분이 나빠도 한잔, 안주가 좋아 한잔, 안주가 맛있어 한잔, 이래저래 마시다 보면 번마다 술을 과음하게 된다.
 
그리고 담배도 한달 , 때론 반년까지 금연하다 가도 옆에서 한대씩 자꾸 권하면 그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또 담배를 피운다. 내 친구 몇 명은 30년 전부터 술을 몸에 적당하게 마시고 담배를 금연한다고 했는데 지금까지 그 친구들이 술상에서 언제 한번 술을 과음하거나 담배를 피우는 것을 단 한 번도 못 봤다. 그들은 모두 자기와의 단 한 번의 약속과 싸움에서 모두 승자로 성공한 것이다.
 
내 친구들 뿐만 아니라 내 주위와 우리 사회에서도 술을 자제하거나 술을 금주하고 담배를 금연하여 성공한 사람이 많고도 많다. 하지만 나는 20년 전부터 술을 과음하지 않고 내 몸에 적당하게 마시고 백해무익인 담배는 금연한다고 나와 수십 번을 약속했지만 20년이 지난 오늘까지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오늘 이날까지 실천이 안 되고 성공하지 못하는가.
 
그것은 술을 자제하고 금연하는 사람들에게는 확고한 의지와 결심이 있고 인내와 의지력으로 자기와의 약속과 자기와의 싸움에서 승자가 되어 성공했다. 하지만 나에게는 아직도 술을 내 몸에 맞게 적당하게 마시고 담배를 금연하겠다는 확고한 의지와 결심이 없고 인내와 의지력, 노력과 실천이 부족하기 때문에 그동안 나와 수십 번의 약속을 번복하고 지금까지 나와 한 약속이 지켜지지 못하고 나와의 싸움에서도 번마다 패자가 되고 성공을 못하는 것이다.
 
시원한 바람이 불 때마다 나무에서 낙엽이 떨어진다. 이 가을도 곧 떠날 채비를 한다. 지금 내 나이가 인생의 가을에 살고 있지만 60이 청춘이라고 했거늘 나는 이제부터라도 나에게 주어진 인생을 내 인생의 제2의 인생의 시작이라 생각하고 이 가을이 떠나기 전에 나는 또 다시 술을 절대 과음하지 않고 내 몸에 적당하게 마시고 백해무익인 담배는 무조건 금연하리라 내 나이를 걸고 나와 다시 한번 마지막 약속을 한다. 그리고 창창한 가을 하늘과도 약속을 걸어보면서 나는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끈기와 인내력, 확고한 결심을 갖는다면 그 약속이 꼭 지키고 성공될 것이라 다짐해 본다. 집으로 돌아오는 내 발걸음이 그 어느 때보다 힘이 생기고 가볍게 느껴진다.
 
아침나절의 해가 가던 걸음을 멈추고 나에게 다가와 어깨를 다독이며 흐뭇한 미소를 주면 나를 집까지 바래다주고 다시 제 갈 길을 재촉하고 있다.
 
어느새 마당 앞 사과나무에 산 까치부부가 꼬리 총을 흔들며 나를 반갑게 맞고 있다.
/허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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