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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이야기

돌 위에 핀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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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중방송 작성일23-02-07 11:20 조회48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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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녕성 무순현 상선촌의 오영선 양주가 효자 아들의 손에 호화로운 식당에서 85세 생신을 훌륭하게 치렀다는 소문이 무순, 철령 일대에 파다히 퍼지고 있다.
 
오영선은 일찍 청원조선족간부 사범 반을 졸업하고 해룡에서 교편을 잡다가 1961년에 무순으로 전근되었고 1963년부터 무순현 장당조선족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1963년 초봄의 어느 날 점심 때였다. 오 선생이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니 아내가 마을의 산모 유금자가 해산 후 심한 출혈로 정신을 잃고 있다고 했다. 오 선생은 그길로 아내와 함께 부랴부랴 유금자네 집으로 향했다.
 
그 집에 들어서니 산모는 벌써 숨을 거두었고 올망졸망한 5남매는 어머니를 부여잡고 슬피 울고 있었다. 방안을 둘러보던 오 선생은 구들 한구석에 놓여있는 베개모양의 꼼지락 거리는 피 덩이를 발견하였다. 동네사람들은 산모를 구하느라고 비닐박막위에 놓여있는 갓 태어난 피 덩이를 돌볼 겨를이 없었다. 유금자씨의 남편은 군대에 나갔다가 다리에 중상을 입었는지라 이미 낳은 자식 5남매도 키우기가 아름찬 형편이었다.
 
저 피 덩이도 생명이 아닌가?! 어쩐담. 내가... 아니...
 
오 선생은 아내의 눈치를 살폈다.
 
《여보세요, 뭘 주저하나요. 빨리...》
 
오 선생의 말이 떨어지자 아내는 자기 웃옷을 벗어 피 덩이를 싸서는 집으로 달려와서 흙 버치에 물을 쏟아 말끔히 씻었다.
 
《으앙!, 으앙!》 아기의 고고성이 두 칸 초가집에서 울렸다.
 
이튿날 오 선생은 젖 염소를 사려고 인근 동네를 다 헤맸지만 끝내 헛물을 켜고 말았다. 별수가 없어 오 선생은 쇠절구에 좁쌀을 찧어 죽을 끓였다. 그것도 하루 이틀이지 오래 지탱하기가 힘겨운 일이였다.
 
한 달이 지난 후였다. 50여리 상거한 산촌에 젖 염소가 있다는 말을 듣고 오 선생은 자전거를 타고 찾아갔다. 생산대장은 남의 자식을 키우겠다고 찾아온 오 선생의 진정에 목이 메여 20원 헐값에 젖 염소를 팔았다. 오 선생은 한손으로 자전거를 밀고 한손으로 젖 염소를 끌고 타박타박 50리 길을 걸어 밤중에 집에 들어섰다.
 
《여보, 젖 염소를 사왔소! 빨리!》
 
빈 젖꼭지를 어린 아이에게 물리고 있던 아내는 어린 아이를 자리에 눕히고 남포등을 들고 뛰쳐나왔다.
 
《애 아버지, 이 봐요. 젖통이 팽팽 불어났네요. 젖살도 오르겠어요.》 아내는 젖 염소를 어루만지며 기뻐 어쩔 줄을 몰랐다.
 
그 이튿날부터 아내는 용철이를 등에 업고 아침부터 젖 염소를 산에 들에 몰고 다니면서 싱싱한 풀을 뜯어먹게 하였다.
 
그 세월은 사탕을 정량 공급하는 때라 젖에 섞을 사탕을 사려고 공일마다 무순, 심양으로 다니곤 하였다. 간혹 한밤중에 어린 것의 먹이가 떨어지면 오 선생은 잠자리에서 일어나 남포등을 들고 나가 염소젖을 짰고 아내는 아궁이에 불을 피웠다. 오 선생은 젖이 빨리 식지 않는다고 책장으로 부채질 하였고 아내는 입김으로 홀홀 불어 젖병에 쏟았다. 염소 젖을 먹고 난 어린것은 아내의 팔에 안겨 죄꼬만 몸뚱이를 갑신거리며 신나게 놀다가는 쌕쌕 잠들었다.
 
오 선생부부는 염소젖으로 어린것을 3년 동안 길렀다. 그러다가 젖 염소가 죽게 되자 분유를 사서 대기 시작했다. 하지만 집안 네 식솔이 오 선생의 혼자 월급에 매달리고 게다가 아내가 어린 것 때문에 생산대의 일에 나가지 못하다보니 자연히 빚이 늘어 가을엔 양곡도 제대로 타지 못했다.
 
결혼 한지 10년이 되어도 초가 두 칸에 가장집물이란 낡은 농짝과 책장밖에 없었다. 하여 말 그대로 이 동네치고 가난한 선비였다. 이 동네 사람들은 오 선생부부에게 동정을 보내는 사람도 있었고 남의 자식을 가져다 고생을 사서 할 건 뭐냐고 비난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럴수록 오 선생부부는 어머니 없는 설음응 받지 말라고 남의 집 아이들보다 더 잘 입히군 하였다. 걸음발을 타서 절로 놀러 다닐 때면 오 선생의 아내는 뒤를 따르면서 보살폈고 오 선생의 아내가 가는 곳에는 “아들” 용철이가 있었다. 유치원에 다닐 때도 그는 짬짬이 찾아가 용철이를 보고서야 시름을 놓았다.
 
《여보, 이번에는 나들이 옷 한 벌 갖춥시다.》
 
《나야, 괜찮지 뭐...》
 
《그럼, 구두라도 한 컬레...》
 
《당신도 참, 이 헝겁신이 어떻소? 신기도 간편하고 ...》
 
《학생들 앞에 나서는 몸인데 그래서 어찌나요.》
 
《괜찮소.》
 
오 선생은 양복 한 벌도 없이 언제나 색 바랜 테트론 옷을 입고 회의에 다녔다.
오 선생은 자기의 친딸은 초중을 졸업시켰지만 용철이는 기어이 고중까지 보냈다. 용철이가 대학시험에 낙방되었을 때는 친자식처럼 괴로워했다. 이제라도 용철이의 직장을 찾아주겠다고 오 선생은 발바닥이 닳도록 무순노동국, 인사국을 찾아다니면서 손이야 발이야 빌었다. 지성이면 돌 위에도 꽃이 핀다고 용철이는 끝내 무순시 시멘트공장에 정식 노동자로 들어갔다.
 
오 선생부부는 그제야 발편잠을 잘 수 있었다. 하지만 잃은 것이 너무도 많았다. 오 선생은 3년 전에 고혈압 병으로 걸음도 걷지 못하는 신세가 되였고 사모님은 불과 쉰둘인데 너무 겉늙어서 환갑이 훨씬 넘어 보였다. 하지만 용철이를 볼 때마다 그들의 마음은 흐뭇하였다.
 
어느 날 저녁이였다. 용철이는 밥술을 놓자 밖으로 나갔다.
 
《여보, 용철이도 이젠 20살 아니요. 모든 것을 알려주는 것이 좋겠소.》
 
《그럼요.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어요.》
 
이튿날 오 선생은 한 동네에 사는 용철이 형님과 다른 마을에 시집간 누이들에게 자기 집으로 모여 달라고 기별을 하였다. 드디어 그날이 돌아왔다. 용철의 형님과 누님들이 오 선생 집에 모였다.
 
《용철아, 이젠 너도 철이 들었으니 너의 역사를 알아야 한다. 너의 친아버지는 지금 이 동네에 계시고 너의 생모 유금자란 분은 너를 낳고는 저 세상으로 돌아갔다... 여기 모인 분들은 너의 친 형님과 누님들이다.
 
《뭐요?! 아버지! 세상에 그럴 수가 있나요. 절대 그럴 수가 없어요...》
 
《용철아, 정말이다. 어서 형님, 누나들에게 인사를 하거라...》
 
《어머니...》
 
용철이는 어머님품속에 안겨 황소울음을 터뜨렸다. 그의 형님과 누나들도 흐느껴 울었다. 한 동네에 사는 형님들은 오 선생의 아들이 분명 자기 친 동생이란 것을 알면서도 언제 한번 떳떳이 동생이라고 불러보았던가? 오 선생 부부를 봐서라도 이 비밀을 누설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오 선생부부는 오늘 도량 넓게 우리를 불러놓고 20년 동안 지켜온 비밀을 끝내 동생에게 알리지 않는가?!
 
《동생, 오 선생님 말씀이 정말이야! 만약 오 선생님과 사모님이 없었다면 너는 첫 울음도 내지 못하고...》
 
《누님...》
《형님...》
《동생...》
 
이 6남매는 서로 부둥켜안고 울기 시작했다.
 
아, 참된 인간들이고 깨끗한 양심들이다.
 
1993년 7월, 용철이는 철령시 모 촌에서 김모라는 마음씨 곱고 인물 좋은 농촌처녀를 우연하게 알게 되였다. 용철이의 인물과 직업으로서는 무순시 인근 마을에서도 얼마든지 배우자를 선택할 수 있었지만 용철이는 25년 길러준 부모의 사랑에 꼭 보답하리라고 마음씨 고운 농촌처녀를 택하였다.
 
오 선생 내외는 기꺼운 심정으로 며느리 맞을 대사를 밤마다 의논하였다. 정말 춤이라도 추고 싶은 일이지만 그에 반해 대사 치를 근심에 잠겼다. 10년 전부터 남몰래 한푼 두푼 모아왔지만 저금통장에는 만원뿐이다. 용철이의 결혼잔치를 남보다 더 잘 치르지 못해도 섭섭하지 않게 치러야겠지만 형ㅌ편은 그렇지 못했기 때문이다. 정말 용철이를 키울 때보다 더 난감한 일이였다.
 
그 사연을 눈치 챈 용철의 형님과 누나들은 한자리에 모여 의논하게 됐다. 친동생을 길러준 것만 해도 고마운데 우리가 어찌 오 선생 내외를 난감하게 하겠는가? 각자가 생활형편에 따라 힘껏 돕자! 이것이 그들의 한결같은 결의였다.
 
이튿날부터 용철이 둘째형님은 500원짜리 가죽잠바, 3000원의 냉장고, 오디오 그밖에 결혼식 날에 쓰라고 현금 1000원을 내놓았다. 그의 셋째 누나도 3500원짜리 칼라텔레비전, 가죽소파를 사주고 다른 형님과 누님들은 1만 2천원을 모아 오 선생부부에게 내놓았다.
 
오 선생은 흥분과 감격에 목이 메여 울고 또 울었다.
 
용철이 결혼식 날 밤, 친척들이 한자리에 모여 앉았다.
 
《아버님, 어머님, 저도 용철이의 역사를 알고 있어요. 저는 앞으로 꼭 훌륭한 며느리로 되기에 힘쓰겠어요. 많이 타일러주세요.》
 
《고맙다 며늘아...》
 
《며늘아...》
 
오 선생 내외는 목이 꽉 막히는 것만 같았다.
 
《적은이 꼭 한 가지 부탁이 있소. 아무쪽록 어머님, 아버님을 잘 모시고 행복한 가정을 꾸리시오.》
 
용철이 아주머니들의 속심 말이였다.
 
《형수님, 안심하세요. 저의 눈에 흙이 들어가도 25년 길러준 부모의 사랑을 어찌 잊을 수 있겠나요?!》
 
그들은 과연 무엇을 말해주고 있는가? 그 마디마디 말들에는 인간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진정이 슴배어 있으며 가슴깊이에는 뜨거운 것이 여울치고 있지 않는가?
 
그렇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돈보다 인간사이의 정, 정이였다.
/신석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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