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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이야기

[수필] 터밭 가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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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중방송 작성일22-12-01 02:38 조회46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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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눈을 뜨면 나는 창문을 활짝 열고 1.7무 되는 넒은 터밭부터 바라보는 즐거움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풀 한 포기 없이 알뜰하게 가꾼 터밭은 간밤에 내린 단비로 푸성귀들이 한층 더 자라고 푸름과 싱싱함을 자랑하고 있다.
 
잎 끝마다 이슬을 달아 새벽하늘을 보석 밭으로 일구어 놓았다. 나리까지 시원하게 뽑은 옥수수는 마치 미스코리아 처녀들의 미끈한 몸매를 자랑하는 모습과 흡사하다. 매일 아침 터밭에 들어가 내가 직접 심고 가꾼 애기 볼 같은 상추와 햇 배추, 참취, 풋 마늘과 풋고추를 하얀 입쌀밥에 얼큰한 고추장을 곁들어 쌈을 싸 먹거나 그냥 고추장에다 푹푹 찍어 먹을 때의 그 싱싱하고 아삭한 맛은 꿀맛이고 말 그대로 행복 그 자체다.
 
터밭에서 제철 따라 나오는 푸성귀들과 감자, 고구마, 옥수수를 이웃들과 나눔을 통해 마음과 정을 돈독하게 할 수 있어 터밭을 가꾸는 즐거움, 기쁨과 보람을 느낀다.
 
우리 집 터밭이 이렇게 큰 데는 그럴만한 사연이 있다. 원래 우리 동네는 호수가 100여호가 되나마한 동네였는데 교통이 좋고 인심이 좋고 쌀 맛이 좋아 인근에 소문이 나자 외지로부터 이사 호가 많이 들어오면서 200여호로 급격히 늘어나자 집을 지을 터가 부족하여 나중에 1호가 집을 짓는 데 240평을 떼 주었다.
 
집을 짓고 창고와 마당이 자리를 차지하면 터밭이 겨우 0.2~0.3무밖에 안 되어 마을 사람들은 그나마 겨우 푸성귀나 조금씩 심어 먹는 정도다. 그 와중에 나도 부모님들이 우리 마을이 생기면서 지은 초가집이 40여 년의 세월이 겪으면서 허물어지게 되자 벽돌집을 짓게 되었는데 촌에서 떼어준 터가 마음에 들지 않고 마을 제일 남쪽이면서 동쪽에 동과 서로 물이 흐르는 도랑 옆에 3무가 넘는 공터에 눈독을 들였다.
 
이 집터는 마을 사람들이 도랑과 가까운데 집을 지으면 나쁘고 애들도 위험하다고 누구도 집을 지으려고 하지 않는 집터였다. 그러나 나는 그 터가 마음에 들어 많은 사람들이 나쁘다고 말리는 것도 귀 등으로 흘리고 우격다짐으로 1985년도에 3만 원을 들여 84평 되는 벽돌집과 창고 2개를 짓고 앞뒤 마당을 널직히 남기고 뒤 터에다 0.4~무정도 땅을 파서 양어장을 만들고도 터밭이 1.7무가 된다.
 
내가 집을 짓고 그 터에서 예쁜 딸애까지 낳고 아무 탈이 없이 무탈하게 잘만 살자 마을 사람들은 우리 집터가 동네서 제일 좋은 명당자리라고 엄지를 내밀며 모두 다 부러운 눈길이며 다른 집들은 5만 원 정도에 팔 수 있는 가격이지만 내 집을 욕심내 하는 동네 사람들은 15만 원에 팔라고 하고 타민족들은 30만 원에 너도나도 사겠다고 했지만 정신이 멀쩡한 내가 이 명당자리 집을 팔기 만무하다.
 
터밭이 크니 해마다 이웃들과 나눠 먹으려고 여러 가지 푸성귀와 감자, 고구마, 풋옥수수, 수수(高梁), 보리, 등 식물을 넉넉히 많이 심고도 자리가 남아돌아 늘 터밭에 무엇을 심느냐가 큰 걱정거리다. 그래서 마을과 70리나 되는 북산에 가서 참취, 곰취, 도라지, 더덕, 땅 두릅, 참 두릅을 파다 옮겨 심고 집 뒤에는 앵두, 사과, 자두, 포도, 오미자, 등 수십 그루 심어 우리 집 터밭에는 봄부터 여름, 늦가을까지 먹을 것이 이어져 말 그대로 시장이나 다름이 없어 우리 집을 놀러 오는 사람들은 올 때마다 입이 호강을 누리고 집으로 갈 때면 손에는 먹을 것을 꼭 들고 간다.
 
특히 감자와 고구마, 풋옥수수 먹을 철이 되면 이웃들과 마을 사람들이 저녁이면 우리 집에 자주 마실을 오는데 그때면 나와 아내는 밖에다 큰 솥 두 개를 걸고 감자나 고구마, 옥수수를 삶아 먹으며 이야기 한 마당 주고받으며 긴 여름밤을 보내곤 한다.
 
그렇게 풀 한 포기 없던 터밭이 장마가 지나가면서 범이 새끼 칠 지경으로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 나와 아내는 오늘 새벽부터 잡초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김매기에 나섰다. 지난해 가을, 터밭 가을걷이를 끝내고 이웃 돼지농장에서 4바퀴 트랙터로 돼지똥거름 10차 사다 터밭에 밑거름으로 한 벌 두툼하게 펴고 504 미니로터리(旋耕机)로 터밭을 파쇄까지 해 놓았다.
 
그리고 올해 초봄부터 나와 아내는 밭고랑을 내고 식물들의 시기별로 상추, 배추, 쑥갓, 당근, 류월콩(六豆)마늘, 고추, 감자, 고구마, 찰옥수수, 등 여러 가지 푸성귀와 식물을 심고 풀 한 포기 있을세라 손자, 손녀 돌보듯이 터밭에서 살다 싶이 터밭을 알뜰, 살뜰 가꾸었다. 그 보람으로 우리 집 배추와 상추, 쑥갓, 풋마늘은 잘도 자라 다른 집들보다 10일 정도 더 빨리 밥상에 오르게 되었고 이웃들과 마을 사람들과 몇 번 나누어 먹었다.
 
우리 부부는 이제 곧 다가오는 장마에 대비해 풀 한 포기 없는 터밭을 또 한번 호미로 긁어주고 밭고랑까지 시원하게 후쳐놓고 한시름 놓았다. 그런데 그 이튿날부터 장마가 시작되면서 연 25일 동안 밤낮으로 장대비가 내려 한동안 풀 한 포기 없던 터밭에 씀바귀, 돌피, 토끼풀, 달 개비와 아직껏 보지 못했던 이름 모를 허다한 잡초들이 살 때를 만났다고 땅속에서 머리를 내밀고 자기들끼리 누가 떠 빨리 자라나 마치 릴레이 경주라도 하듯 하루가 다르게 무성하게 자란다.
 
그리고 그놈들도 영역 확장을 하느라고 뿌리 번식이 강한 씀바귀는 뿌리로, 덩치가 큰 돌피는 덩치로 서로 머리채를 잡고 어마어마한 전쟁판을 벌리고 있다. 더욱이 지난해 가을에 터밭에 밑거름을 준 돼지똥이어서 전에 보지도 못했던 허다한 잡초들이 생겼고 잡초들은 또 그 거름 발을 받으니 파죽지세로 자라는 품이 당장 하늘이라도 찌를 기세다.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고 그렇게 싱싱하게 잘 자라던 부성귀와 식물들은 잡초들의 위세에 시달리고 몸이 싹 오그라들어 점차 누런색으로 변하면서 마치 사람이 영양실조에 걸리거나 학질에 걸린 것처럼 비실대며 “주인님, 어서 빨리 저희들을 살려주세요.”하고 애원하고 있는 것 같아 너무 불쌍해 보였다.
 
초봄부터 지금까지 나와 아내가 땀 흘리며 고생한 보람이 이렇게 허무하게 수포로 돌아가는 것 같아 생각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괘씸한 잡초들의 머리채를 잡아 뿌리채 뽑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하늘이 구멍이 뚫렸는지 비가 매일 낮과 밤을 이어가며 내리고 있어 질척거리는 터밭에 들어설 수도 없어 애간장을 태우다가 다행히 3일 전부터 비가 그치고 지긋지긋한 장마 도망가자 잡초와의 전쟁을 시작했다.
 
장마가 물러가면서 대신 날마다 30'C를 웃도는 더위가 기승을 부리면서 집에서 에어컨이나 선풍기를 틀어도 땀이 줄줄 흘러 나와 아내는 한낮에는 아예 김맬 생각을 접고 새벽과 저녁 시간을 이용하여 터밭 김을 맬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철이 철이라 새벽과 저녁 시간에 김을 매도 날씨가 후덥지근하고 습도가 많아 김을 매면서 땀이 얼굴과 등골을 타고 내렸지만 풀 한 포기 없이 김을 매고 난 밭고랑의 푸성귀와 식물들이 거름 발까지 받아 금세 푸른색을 되찾아 싱싱하게 잘 자라고 있었다.
 
우리 부부는 그런 모습을 보면 지난날 아들과 딸자식이 하루가 다르게 크는 모습을 보는 것 같아 힘이 들어도 눈과 마음이 즐겁고 보람도 느낀다. 나와 아내는 꼬박 일주일 내내 잡초와 싸우면서 부지런히 일손을 놀려 김을 몽땅 매고 후치 질까지 깨끗하게 마무리를 지었다.
 
오늘 새벽도 눈을 뜨자 창문을 활짝 열고 풀 한 포기 없는 터밭에서 갖가지 푸성귀와 식물이 푸르싱싱하게 잘 자라는 것을 보면서 생명의 신비와 경이로움에 무한한 기쁨과 행복을 느낀다.
 
터밭을 가꾸면서 나는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는 밭의 겸허함과 참을성, 인간의 노력에 정직하게 응답해 주는 성실성, 늘 열려 있고 무한한 가능성을 안고 누워 있는 밭, 누군가 밭에 거름을 내지 않고 봄에 씨앗을 적게 뿌리고 건성으로 다룬다면 “네가 나의 땅거죽을 얼리면 나는 너의 뼈 가죽을 얼린다.”는 속담이 있듯 밭은 가을에 적게 주거나 아무것도 돌려주지 않고 그런대로 죽어 있을 뿐 아무런 의미가 없는 밭으로 되지만 누군가 해마다 밭에 적당히 밑거름을 주면 토양이 비옥해지고 봄에 많은 씨앗을 뿌리고 땀과 정성을 쏟으면 밭은 가을에 주는 것에 인색하지 않고 뿌린 것의 몇십 배, 몇백 배, 몇천 배도 더 돌려준다.
 
매일 다시 시작하는 나의 삶도 어쩌면 새로운 밭과 같은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이제부터 나는 내 마음에 새로운 터밭 하나 만들어 놓고 살고 싶다. 밭에 씨를 뿌리는 마음으로 매일 살 수 있어야겠다. 매일이라는 나의 마음의 밭에 나에게도, 남에게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싸늘한 눈빛, 차가운 마음, 가시 돋친 말과 나태한 습관과 거친 행동, 등 나쁜 씨앗들을 가차없이 뽑아 흘러가는 물에 던져버리고 대신 부드러운 눈빛, 아름다운 말씨, 따뜻한 마음, 좋은 습관과 친절한 행동, 등 좋은 씨앗을 많이 뿌리고 열심히 가꿀 것을 다짐한다.
 
그리고 부정의 씨앗을 긍정의 씨앗으로, 불평의 씨앗에서 만족의 씨앗으로, 질투의 씨앗에서 용서의 씨앗으로, 미움의 씨앗에서 사랑의 씨앗으로, 악의 씨앗에서 선의 씨앗으로, 낡은 관념의 씨앗에서 새로운 관념의 씨앗으로, 아집의 씨앗에서 경청의 씨앗을 골라 심는다면 내 마음의 밭도 더 좋은 밭으로 되어 내 삶도 질적인 새로운 변화와 발전을 가져와 보다 깨어 있고 성숙되고 무게 있는 삶으로 결실을 맺을 것이다.
 
요즘 나에게 예전에 없었던 새로운 고민거리가 두 개 생겼다. 하나는 내 마음의 밭에 나도 모르게 혹시 어떤 나쁜 잡초의 씨앗이 숨어서 싹트고 있는지, 늘 신경을 쓰는 마음으로 살펴보게 되는 고민이고 다른 하나는 내 마음의 밭에 어떤 좋은 씨앗을 더 많이 심어야 할까? 하는 고민이다.
 
지금부터 나는 항상 즐거운 고민을 하고자 한다.
/허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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