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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이야기

나의 형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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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5-06-21 20:45 조회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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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상을 치운 뒤, 소파에 앉아 휴대폰을 들자 조카에게서 메시지가 도착해 있었다.
 
“직은 아버지, 안녕하세요. 그간 찾아뵙지 못해 죄송합니다. 5년 전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기 직전, 작은아버지께 빌린 5만 원은 꼭 갚으라는 유언을 남시셨습니다. 저는 지금 심양에서 옷가게를 운영하며 잘 살고 있습니다. 늦었지만 그 돈을 갚고자 하오니, 한국 계좌번호를 알려주십시오. 꼭 부탁드립니다. 조카 신혜란 올림”
 
짧은 글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 자리에서 한참을 움직이지 못했다.
 
무겁게 내려앉은 후회와 자책감이 가슴 한복판을 눌렀다.
 
이제야 알겠다. 형님을 향한 나의 서운함, 불만, 그 모든 감정이 얼마나 옹졸했던가를.
아, 나도 과연 동생이라 할 수 있을까?
 
내게 단 한 분 뿐이었던 형님.
가난 속에서도 끝끝내 우리를 거두었던 분.
왜 그렇게 상처를 드렸을까.
 
그날 형님의 투박한 손이 문득 떠올랐다.
소나무 껍질처럼 갈라진, 햇볕과 바람 속에서 일생을 버텨낸 손.
우리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시고, 형님은 우리 넷의 삶을 고스란히 짊어졌다.
하루하루를 허리 휘도록 일했건만, 가난은 그림자처럼 따라붙었다.
 
1987년, 아버지께서 장염으로 입원하셨을 때, 형님은 병상 곁을 한시도 떠나지 않으셨다.
아버지의 대소변을 받아내고, 손발을 씻기며, 사람 구실 다 하지 못하는 환자를 정성껏 돌보셨다.
 
나는 어느 일요일, 형님을 대신하겠다며 병원으로 갔다. 형님의 얼굴은 피골이 상접해 있었다.
 
“형님, 며칠이라도 제가 시중들게요. 저녁 차로 집에 가서 쉬세요.”
“내가 있어야지. 너는 학교를 비우면 안 되잖니.”
“말미를 맡고 왔어요. 형님께서 쓰러지면 어쩝니까…”
 
나는 꺼내온 책들을 병상 옆에 올려놓으며 진심을 보였다.
그러나 형님은 고개를 저었다.
 
“수삼아, 이러지 마. 애들한테 실망을 주어서는 안 돼. 더구나 졸업반이잖니.”
결국 형님은 차 시간이 되자, 나를 병실 밖으로 내보내셨다.
 
그해 나는 형님의 믿음 덕분에 교사 실무대회에서 상을 받고, 지역의 모범 교사로 뽑히기도 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세 차례 수술 끝에 끝내 세상을 떠나셨다.
형님에게 2만 원의 빚을 남기고 말이다.
 
나는 그때 2천 원을 겨우 내놓았지만, 형님은 그것마저 사양하셨다.
“제수씨가 어떻게 번 돈인데… 허투루 쓰지 마라.
 
나는 가을에 쌀 팔면 된다. 초가에서 사는 너희가 더 급하지 않니.” 나는 형님처럼 살림을 꾸린 지 5년이 되었지만, 농기구 하나 제대로 갖추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었다.
 
한 번은 나무 낫이 필요해 형님네 집을 찾았다.
“형님, 나무 낫 좀 쓰게요.” 형님은 말했다.
“며칠 전에 용철이 아버지가 빌려갔어.”
 
나는 불쾌함을 숨기지 못했다.
어제 큰집 헛간에서 본 것 같은데, 정말 낫 하나도 아까운가.
부엌문을 쾅 닫고 상점으로 달려가 새 낫을 사왔다.
그날 저녁, 형님은 숫돌을 들고 우리 집을 찾았다.
 
“낫을 샀다며? 내가 갈아줄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 순간, 아들이 헛간에서 낡은 나무 낫을 찾아 형님께 드렸다.
형님은 토방에 앉아 숫돌에 물을 끼얹고, 낫을 갈기 시작했다.“수삼아, 미워서 그런 게 아니야.
 
이제 너도 쟁기며 농기구를 좀 갖춰야 하지 않겠니?
제수씨가 삽이나 호미를 빌리러 다니는 걸 차마 못 보겠더라.”
 
나는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벌방으로 전근을 가면서, 내 논은 형님이 대신 관리하셨다.
가을이면 1천 원 정도 수익이 있었지만, 그 일로 아내와 자주 다투었다.
“남들은 다 큰집 덕을 보는데 우리는 큰집 시중만 드네요.
 
10년 동안 대사 때마다 얼마나 부조했는지 아세요?”
나는 화가 치밀었지만, 꾹 참았다.
 
“우리가 형님께 받은 게 얼마나 많소.
2년간 사범학교 다닌 것도, 농사일 도와주신 것도…”
하지만 아내는 지지 않았다.
“그래도 그뿐인가요? 이제는 다른 사람한테 맡기세요.
 
1년에 1천 원, 어디 가서 못 벌겠어요?”
 
나는 그녀가 들이민 명세 장부를 보며 결국 고향 논을 다른 이에게 맡겼다.
그날, 뭔가 잃은 듯한 허전함이 가슴을 떠나지 않았다.“여보, 무슨 생각에 잠겼어요?”
 
아내의 말에 정신이 돌아왔다.
왜인지 가슴이 몹시 답답했다.
한바탕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나는 휴대폰을 집어 들고 답장을 쓰기 시작했다.
 
사랑하는 조카에게,
잘 지낸다니 기쁘구나.
 
방금 너의 편지를 읽고, 마음이 참 복잡하구나.이국에서 13년이나 고생했지.
고향에도 못 오고, 너희 아버지 장례에도 함께하지 못한 내가 얼마나 미안한지 모른다.
정말 부끄럽다.조카야, 이제 나도 형편은 괜찮으니 그 돈은 필요 없다.
 
그 대신, 추석에 아버지 묘지에 비석을 세워다오.
 
그리고 내가 고향에 가면, 아버지 묘지에 다시 용서를 빌겠다.그분은 내게 그 누구보다 크고 따뜻한 사람이었단다.
 
안녕히 지내라.
작은아버지로부터
/신석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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