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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이야기

지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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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중방송 작성일24-01-25 17:43 조회16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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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중학교졸업을 맞으며 나에게도 의학원으로 추천 받아 갈 기회가 있었다. 그러나 학교가는 것을 포기하고 말았다.
 
중학교를 졸업할 때 나는 이미 16살이 되어 집에서 호주노릇을 할 수 있었기에 학교추천을 그만두고 농촌에서 일하며 집을 돌보려고 결심했다.
 
나는 아버지를 일찍(11살)에 잃었다. 아버지는 불치병으로 치료를 받지 못하고 끝내 어린 나를 두고 저 세상으로 떠났다. 그 후 설상가상으로 어머님도 눈병으로 치료를 했으나 효과를 보지 못하고 앞을 잘 보지 못하는 신세가 되었다. 이때로부터 우리 집은 오보호 대상으로 되었다.
 
그때 농촌에서 제일 큰 어려움은 땔나무를 해결하는 것이였다. 농촌에서는 쌀이 없으면 꾸어 먹어도 되지만 땔나무가 없으면 꾸어 올 수도 없고 도적질 해올 수도 없으니 땔 나무가 없는 것이 우리 집으로는 진짜로 골치 아픈 일이였다,
 
하여 나는 13살 때부터 겨울철 방학이 되면 산으로 나무하려 다녔는데 어린 나이에 산에 가서 땔 나무를 먼저 해 놓으면 그것마저 도적질 해가는 어른들이 있어 정말 눈물이 날 지경이였다. 그래서 소를 좀 쓰려 해도 나이 어리고 키도 작다고 대장은 소는 생산대의 큰 재산이기에 어린 아이에게는 빌려줄 수가 없다고 하면서 아무리 여러 번 사정해도 빌려주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어린 나이에 고생하는 걸 측은하게 생각해서인지 나무를 먼저 해놓으면 사람을 안배해 집까지 실어다 주겠다고 말씀하셨다. 참말로 고마운 말이였다.
 
며칠 후 나는 윤길규씨와 함께 만리고 서산에 가서 추위를 무릅쓰고 나무를 먼저 해 놓고는 다음날 소달구지를 빌려 나무 실으러 산으로 가보니 웬걸, 이게 무슨 일이야!. 어떤 약삭빠른 사람이 벌써 우리가 그처럼 힘들게 해놓은 나무를 몽땅 가져가고 없었다.
 
이런 일을 겪고 보니 그래도 나를 도와 나무를 해주던 윤길규씨가 고맙기도 하고 또 그에게 미안하기도 했다.
 
어린 나이에 해 놓은 땔나무를 몇 번이나 도둑마치고 나니 속에 불이 날 지경이였다. 그 후로는 새벽 일찍 일어나 대장의 허가도 없이 연속 며칠 남 먼저 소달구지를 가지고 땔나무를 해서는 집에다 쌓아놓았는데 낟가리가 점점 커지니 어머님은 얼마나 기뻐하셨는지?
 
이 일로 하여 소달구지를 쓰려던 사람들은 내가 먼저 가져갔기에 분통이 터져 나를 죽으라 고 욕했고 또 대장마저도 함께 욕을 했다. 그래서 나는 욕을 너무 많이 먹어서인지 욕으로 배를 채우다 보니 밥 안 먹어도 배부른 느낌이 들었다.
 
이렇게 여러 번 소를 부려도 소가 별다른 사고가 없으니 생산대 대장이 말했다. “여름철에 소를 개인에게 나누어줘 먹이니 네 이름으로 소를 먹이면 겨울철에 시름 놓고 소를 쓸 수 있다”며 내 몫으로 소를 나누어 주었다.
 
이때로부터 나는 학교에 다니면서도 무더운 여름철, 비가 내려도 하학 후면 소를 정성들여 먹였더니 소는 먹은 값을 해서인지 너무나도 피둥피둥 살이 찌기 시작했다. 그래서 모두들 “닭이 봉황으로 변했다”며 엄지를 내 밀었다. 덕분에 나도 더는 땔 나무 운반에 신경쓰지 않아도 외였다.
 
중학시절 나도 다른 학생들처럼 학습성적도 좀 우수했고 또 학교의 각종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가하면서 친국들과도 잘 어울렸기에 담임선생님은 우리 집으로 찾아오셔서 어머님과 “이번에 70년 졸업반 학생을 대학교로 추천하는 기회가 있으니 나를 의학원으로 추천하면 어떤가?”고 어머님께 의견을 물었다. 그러나 어머님은 선뜻 대답할 수가 없었다. 그것은 내가 땔나무와 같은 크고 작은 일을 모두 다 감당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나는 “광활한 천지 농촌은 우리를 수요하니 농촌으로 내려가 농촌건설 하겠다”는 지원서를 큰 종이에 붓으로 써서 학교복도에 붙이고는 사회로 진출했다.
 
학교 문을 나와서부터 생산대 노동에 참가하고 보니 작은 체구로 인해 일이 너무 힘들었다. 또 가방끈이 짧다보니 회의에서 발언할 때도 힘들었으며 총결보고를 쓰려 해도 남의 방조 받을 때가 많았다. 이때에야 나는 졸업할 때 추천을 받아 의학원로 가지 않은 것이 못내 후회되였다.
 
이후 남들보다 더 열심히 했더니 조직의 인정을 받고 끝내 추천받아 의학원을 다닐 수 있게 되었었는데 당시 하마탕 수의소 소장은 내가 의학원으로 가게 되니 몹시 아쉬워 하면서 공사 서기에게 요청하여 의학원에 배정된 나의 명액을 다른 사람에게 주고는 나를 농학원 축목계로 보냈다. 그래서 졸업 후 나는 사람을 진료하는 의사가 아니라 동물을 치료하는 수의자로 되었다.
 
지금 자신이 걸어온 길을 생각해보면 사람을 치료하는 의사가 되나 가축을 치료하는 수의사가 되나 모두 생명을 연장시키는 일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런 후회는 없다.
/전학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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