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은 고향에서 보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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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중방송 작성일23-08-20 18:34 조회400회 댓글0건본문
장마가 오기 전 6월에 나는 고향으로 향한 비행기를 탔다. 나는 비행기를 탈 때 늘 창가쪽 좌석을 선호한다. 이번에도 예외없이 창가 쪽 좌석을 요구하여 배정받았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을 즐기기 위함인데 나에겐 무척 매력적이다. 높은 산이나 고층 건물이 저 아래 내려다보이고 꼬물꼬물 애벌레처럼 흘러가는 강을 보는 재미도 있다. 세상을 멀리 떨어진 시선으로 바라보는 일은 흥미롭다.
저 아래서 일어나는 일들을 상상해 봤다. 저 건물 안에는 서로 티격태격하는 사람도 있을 거고 생사를 드나들며 호흡기에 의존하는 생명도 있을 거고 넘어진 사람을 부축해주는 선한 군자도 서로 돕고 의지하는 동료의 모습도 있을 것이다.
여기까지 상상이 미치니 내가 마치 신이나 부처님이라도 된 것 같았다. 온 세상을 다 품은 것 같이 아량이 넓어진 듯 세상 일 모두 아무것도 아닌 사소하게 느껴졌다. 그러면서도 저 아래 성냥갑만큼 바라보이는 빌딩을 보면서 십수년을 아글타글 돈 벌어도 저 성냥갑속의 점 하나도 가지지 못하고 이 땅을 떠나는 삶이 서글프기도 했다.
8년만의 귀국이라 많이 설레였다. 연길 공항에 도착하자 공항일군들의 부드럽고 친절해진 모습에 감동되였다. 그동안 이 작은 변강도시는 차량과 사람들로 붐비고 고층빌딩들이 경쟁이라도 하듯이 폭발적으로 일어섰다. 번화해진 고향모습에 흡족하고 행복하다. 조선족이 수십만 명이 떠나간 자리에 타지방 한족들이 자리하고 있어 고향은 인구감축 없이 여전히 번화하다.
훈훈하고 풋풋한 고향 민심도 여전하다. 신호등이 없는 6차선 도로를 건너야 해서 길목에 서 있는데 꼬리에 꼬리를 이어 달리던 차들이 서서히 모두 멈추어 섰다. 놀라서 어리둥절해 하는 나에게 운전자들이 건너가라고 손짓해서 고맙다고 목례하며 건넜더니 “빵“하고 낮은 경적으로 화답해주어 또 한번 감동 받았다.
한국에 새벽배송이 있듯이 내 고향 연길에는 새벽시장이 있다. 나이 탓인지 습관이 안되여서인지 나는 새벽시장에서 장보면 돈만 치르고 야채는 챙겨오지 않던가 야채만 가져오고 돈을 지불하지 않는 실수를 자주 하였다. 아침을 짓다가 생각나서 다시 뛰여가면 다시 올줄 알았다고 챙겨놓고 반겨주는 “장사군”들이 참 고맙다.
고향은 많이도 변했다. 서시장도 세개건물을 털어서 하나의 큰 빌딩으로 상당히 큰 시장으로 바뀌였고 가는 곳마다 관광객들이 우리의 한복과 우리의 전통 음식에 환호하는 모습들이다. 연길의 명산 모아산에는 호랑이 석상이 떡하니 버티고 서서 소나무숲의 울창한 모습을 한결 업그레이드해주고 모아산 기슭의 꽃밭에는 백일홍과 여러가지 여름꽃들이 산들산들 바람에 아름다움과 황홀함으로 사람들을 유혹한다. 조선족 생활문화 전통을 자랑하는 민속촌은 전국에서 몰려온 관광객들로 매일 잔치 행사다. 너무도 변해있는 고향에 돌아 온 나는 낯선 곳에 온 이방인 마냥 모든 것이 새롭고 낮 설어서 적응하느라 노력중이다.
세월이 빠른 건지 내가 급한 건지 눈뜨면 아침이고 돌아서면 저녁이고 월요일인가 하면 벌써 주말이고 귀국한지도 2달이 되여 간다. 이렇게 세월 가는 줄 모르고 살다보니 일요일에도 다니던 직장 退休办 문을 노크하는 실수도 했다. 고향에 와서 실수투성이다. 모든 것이 낮 설어서 절절매는 중에 물가, 돈의 가치가 제일 어렵다.
중국어도 잊혀 져서 물티슈를 사고 곽 티슈를 사야겠다는데 중국어로 뭐라 했던지 도통 기억나지 않아서 물티슈가 湿巾이니까 곽딧슈는 干巾이라 하면 되겠다 싶어 干巾을 달라 해서 종업원을 요절복통 시켰다.
마음속의 나는 그대로인데 세월이 참 많이 흘렀다. 실수도 나이 핑게하기 좋은 때다. 늙음의 특권으로 만든 노인카드로 대중교통도 무료로 탄다. 한국에서 외국인이라 향수하지 못하던 노인우대 혜택을 고향에서 누리고 있다. 다녔던 직장에서는 노인절이라고 상품권 300원을 줘서 백화점마트에서 연변소고기 한보따리 사다놓고 흐뭇한 나머지 헤벌레 웃어버렸다. 아직 젊은줄 알고 열심히 일만하고 살아오다가 노인대접을 받으니 즐거우면서도 “내가진짜 노인인가?”하는 의문도 가진다.
짧은 세월, 허무한 세월에 하루하루 그래도 건강하게 행복하게 살려고 노력하고 있다. 삶이 바람처럼 우리를 스쳐 지나간다 해도 사는 동안 아프지 말고 고민 없이 잘 살아 가야겠다. 이젠 이 몸 쉬여가면서 인생의 석양 길, 황혼의 삶을 잘 엮어 가야할 때가 된듯하다.
무더운 여름이 지나 곧 시원해 질듯하다. 겨울이면 그리워질 이 여름의 뜨거운 맛을 즐기듯이 인생의 청춘을 기억하면서 슬기롭고 지혜롭게 노년을 보내면 어떨까? 재한 노년동포모두가 그리운 고향에서 행복한 노년을 보내기를 기원하면서 두서없는 글을 마친다.
/김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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