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신과 공헌의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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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중방송 작성일25-12-22 21:49 조회5회 댓글0건본문
헌신과 공헌의 위치를 생각 해보노라니 불현듯 떠오른는 것이 내가 조선에서 청년사업을 할 때의 일이 떠오른다,
헌신 과 공헌의 위치, 가정과 사회 인간에 대한 대가 없이 바치는 사랑의 마음, 즉 희생정신이며 인류와 사회 공동위업에 대한 정의로운 마음을 바쳐 얻은 성공의 업적인 것이다,
그러한 태도와 결과를 위한 위치는 누구나 갖고 실행하는 것이 아니다,
가지 가지의 사실은 논하자면 전 인류와 국내외 그 어디서나 바쳐진 고전과 현대 정의의 계급투쟁사에 바쳐진 그 현실이 무지 기수이다,
나는 오늘 남을 논하기에 앞서 소박한 한가정의 위치에서의 현실을 더 이야기 하고 싶다,
아버지
지금에 와서 헌신과 공헌의 위치를 생각 할 때면 자랑스러운 우리가정의 부모님들의 모습이 떠올라 긍지 감을 느끼군 한다.
헌신과 공헌의 위치,
그것은 정해놓은 자리 지킴이나 학력과 기술기준으로 존재의 가치를 논함이 아니라 바치는 것에 대한 대가를 바라지 않는 순수한 가정적 바탕의 본보기에 그 뿌리를 두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원래 나의 아버지는 남조선사람 (한국인)으로서 경기도 외담리 광산에 틀고 앉아 우리 조선 땅의 금은 보화를 략탈해 가던 일본상사 광주를 때려죽여, 그런 아버지 잡으면 상금을 주겠다고 광고를 내여 전 남조선 땅을 벌둥지 쑤셔 놓은 것처럼 들끓는 파문을 일으켰고 일본 침략군을 피해 중국 팔로군 (中国八路军) 에 입대 한것이 바로 아버지가 세계 평화와 해방을 위해 바치신 국제주의 혁명의 첫 발자국이였다,
중국 팔로군에서 중국인민해방군으로 그 과정에서 우리 어머니와의 가정결합이 우리 4남매를 남겼고 또 부모님들의 모습이 우리의 모습으로 이어져 왔다,
우리 집에는 아버지가 항일전쟁에서 중국인민의 해방에서 발휘하여 받은 훈장과 중국 팔로군(八路军), 중국인민해방군(中国人民解放军) 의 자그마한 증서도 보관되여 있다,
또한 반미전쟁에서 공훈을 세워 김일성 주석님께서 몸소 받은 표창장도 벽체에 정중히 모셔져 있다,
이 모든 훈장과 표창은 아버지가 걸어온 휘훈의 역사적 자욱이였고 세계 평화와 정의를 위해 바쳐오신 생을 인정하는 증서이기도 하다,
남조선에서 태여나 반일투쟁에 솔선하시고 타국인 중국 땅에서의 연속된 반일투쟁, 조선에서의 정의로 세계 평화를 위해 바쳐오신 아버지의 헌신정신, 그 로고속에 일찌기 세상을 떠나신 그 아버지를 누구도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의 아버지 고향에서 아버지의 형제를 찿아 할아버지 산소에 아버지를 대신하여 술 한잔 올리려 갔어도 모두가 모르는 척 하고 생존해 있는 아버지의 형제도 선뜻 알려 주려 하지 않았다,
이렇게 아버지의 위훈의 투쟁사는 세월이 흘러 누구도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도, 중국도~
허나 그 헌신과 공헌의 위치에 선 인간은 그 어떤 대가를 바라서 그 길에 들어선 것이 아니다,
또 그 후손인 우리도 그러한 아버지의 공훈에 대한 대우도 모르고 살아왔다,
다만 그 아버지의 자식들은 훌륭하신 아버지를 잊지 않고 있으며그들처럼 살기 위해 애쓰고 있다,
어머니
19살 처녀 시절부터 여성해방사업을 맡아보신 어머니는 어릴 적부터 일제 강점기 망국노의 슬픔을 목격하시였고 정의라는 그 길에서 한 생을 바치셨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사업을 받드셨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맡은 담당 인민반을 단결된 (천리마 인민반) 으로 만드셨고 자신 앞에 차례지는 모든 공적은 반원들에게 남겨 주시고 그 속에서 기쁨을 찿으시면서 인정 많은 어머니로 사람들의 기억속에 전설로 남아 있다,
훌륭하신 아버지, 어머니 슬하에서 우리 4남매는 헌신과 공헌의 위치라는 사회 앞에 책임을 수행하는 과정에 단 한 번의 대가도 기대 하지 않았다,
(표창관계) 란의 빈자리
헌신과 공헌이란 위치에 선 인간이 대가를 원한다면 이미 그 위치에 설 자격을 잃은 사람이라고 본다,
우리 형제들중, 언니 오빠들도 그러하듯 나도 집안의 막내로 부모형제들 못지않게 살았다고 생각해 본다,
내가 기업소 청년 단체의 문화부를 담당하고 맡은 책임은, 공연 사업과 기타 행사 사업뿐만 아니라 조직 내부 문건 및 청년 모범 표창 추천서를 올리는 일이였다,
청년단체의 여러가지 문화조직 행사를 보장하느라 새벽달을 맞을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였고 청년사업을 위해 걸어온 수십리 길이 지금도 나에겐 자랑스러운 추억이 되곤 한다,
그중에서 가장 자랑으로 추억하는 것이 조직으로부터 받은 표창추천서 책임을 맡은 일이였다,
기업소안의 청년단체 성원들의 긍정자료에 맞는 표창 추천내용이 정부의 요구 조건에 맞는 합당한 표준이 되여야 하며 그에 따라 군 표창, 시 표창, 도 표창, 최고급인 중앙 표창까지 받게 되어 있다,
나의 표창추천 내용에 따라 훌륭한 우리 청년들의 생산기업과 정치 문화 활동에서의 성과로 많은 표창장이 수여되곤 하였다,
그 많은 훌륭한 청년들속에는 남의 눈에 잘 띄우지 않고 키가 작은 김명숙 이란 성실하고 일잘하는 처녀가 있었다,
나는 언제나 말없이 묵묵히 일 잘하고 청년사업에도 모범인 그를 중앙 표창까지 추천하는데 무진 애를 쓴 것이 성공적인 기록으로 남게 되였다,
토요 청년의 날에 그녀는 청년단체의 열렬한 박수속에 중앙청년 표창을 수여 받고 얼마나 감격해 했는지 모른다,
그때마다 나는 대오의 뒤 자리에 앉아 표창장을 수여 받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행복을 느끼군 하였다,
나이가 들어 청년사업을 마치고 시집이라 가고 보니 녀맹이란 새단체의 한성원으로 가입하게 되였다,
새 단체에 가입하니 개인 이력서를 써내야 하였다, 그 이력서 구분안의 마지막란에 (표창관계)라는 란이 있었다,
바로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조직으로 부터 받아안은 표창수를 적어 넣어라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나는 대원들 표창 추천서는 많이 올려도 나 자신을 위해선 하나도 남기지 못했다,
결국 (표창관계) 란은 빈자리로 그대로 남길 수 밖에 없었다,
그 표창관계 란의 빈자리를 보는 나의 마음은 무등 즐거웠다,
그 빈자리가 나의 깨끗한 마음을 증인 해 주었고 보이지 않는 훌륭한 우리 청년들의 소중한 싹들을 찿아 내여 표창하여 주는 것으로 그들이 사회와 조직, 조국과 인민 앞에 더 훌륭한 일을 하게끔 떠밀어주는 원동력이 된 것이였다,
그것이 바로 나의 자랑이고 행복인 것이다,
아버지 어머니가 살아오신 그 헌신의 길, 또 그 위치의 대가는 나 자신을 떠나 이 사회의 행복을 위해 바칠 줄 알아야 그 자리에 설 자격을 가질 수 있음을 실천으로 가르쳐주셨다,
우리가 하는 크고 작은 모든 일 처리의 근본은 필요한 사회적 위치에 선 자는 반드시 헌신과 공헌의 위치라는 중요성을 잃지 말아야 하며 만약 이기적인 필요성을 내세우고 바치면 무조건 적인 대가를 원한다면 그것은 개인 장사로밖에 되지 않는다,
헌신과 공헌의 위치,
사회앞에 책임진 그 위치로 헌신하고 공헌하며, 대가를 원치 않는 굳어진 성품의 선량함, 정의와 정열이 받침 되지 않고서는 실현 할 수 없는 최상의 위치인 것이다,
그 위치에서 또 그렇게 사는 인생이 바로 제일 행복한 인생인 것이다,
우리 주변에는 그런 분들이 수없이 많다,
우리 민족의 언어를 되 찿기 위해 알아주지 않는 길을 찿아 가며 당당한 우리 글의 정체성을 지켜내시며 민족 대단결을 위한 새로운 문화축제도 창조해 가시는 실력가 선생님이나 문학가, 예술인들이 민족의 얼을 지켜내기 위해 대가 없는 그 길에서 한생을 바쳐가고 있는 것.
그렇게 헌신하고 공헌하는 그 위치에서 대가를 모르는 단결되고 열정적인 우리 조선 민족만이 가질 수 있고 실행할 수 있는 그 자리, 어제도 그러하듯 내일도 영원히 그 위치에서 대가없이 서 있을 모두의 모습에 나도 서 있을 것을 맹세한다,
/황명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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