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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이야기

퇴직 후 무용 강사로 즐거웠던 나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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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중방송 작성일25-03-14 17:35 조회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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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 후의 나의 시간은 고요한 호수처럼 잔잔했지만 마음속엔 항상 무언가를 채워줘야 한다는 간절함이 남아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가운데서 모두들 우리 민족의 춤을 추고 싶어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친구들과 함께 예술단을 꾸리고 내가 무용 교사를 맡게 되었다.
 
이때로부터 다시는 교원이라는 이름을 사용할 수 없을 것만 같았던 나에게 "두번째 인생"의 “교원”직업이 다시금 차려졌다.
 
첫 수업의 날, 춤 배우러 온 “학생” 남녀 20여명이 내가 들어서자 박수로 열정적으로 환영해 주었다. 대부분이 퇴직 후 자식들을 따라 청도에 온 분들인데 각자의 이유로 민족 춤을 배우고자 하는 것이였다. 이들은 호기심과 기대가 나를 맞아주는 것이였다.
 
순간, 나의 머리에서는 묵직한 책임감이 감돌기 시작했다.
 
이런 분들에게 우리의 민속춤을 잘 가르치기 위해서는 문화적 이해를 바탕으로 한 종합적인 연습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생님, 전 춤이라곤 한 번도 추어본 적 없어요"라고 말하는 분이 있는가 하면 "춤은 너무 좋아하는데 나이가 많아서 전혀 기억을 못하겠어요"라고 말하는 분들도 있었다. 현실이였다. 그래서 나는 위안이라도 해드리고 싶은 마음에 "우리 함께 배워 가면 돼요" 라고 말하면서 “함께”라는 말에 특별히 힘을 주었다.
 
“조선족 춤은 단순한 동작의 반복이 아니라 기본자세를 섬세하게 표현해야 합니다. 춤의 우아함은 바른 자세에서 시작됩니다. 허리를 곧게 펴고 어깨를 자연스럽게 내린 후 목과 팔의 유연한 움직임에 집중하면서 손끝과 발끝의 각도를 세심하게 조절하면서 흐르는 듯한 동작을 구현하면서 춤을 추어야 자연스러운 춤 동작이 나옵니다.”
 
나의 첫 강의는 이렇게 리론과 실전을 교차하면서 시작되였다. “학생”들도 쉬운 것 같지만 쉽지 않은 하나하나의 동작을 익히려고 애를 썼다.
 
기본 동작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이 곡에 맞추려니 뜻대로 되지 않아 애간장을 태우는 것을 보자 구령에 맞추어 배워주는 것을 생각해 봤다. 결과 효과가 좋았다. 그 뒤로 “학생”들이 춤을 빨리 배우고 곡에도 잘 맞출 수 있었다.
 
이어서 리듬과 호흡조절에, 장구 반주에 맞춰 발을 구르는 동작까지도 연결하여 가르쳤다. 이런 반복적인 강훈련에 동작과 리듬, 호흡조절이 잘되면서 춤이 한결 이쁘고 날씬하여 선녀를 방불케 하였고 춤에 대한 애착심도 깊어만 갔다.
 
대부분이 농촌에서 아들딸을 따라 왔기에 손자, 손녀를 보는 뒤바라지를 하다보니 매우 힘들었지만 춤추는 순간만큼은 눈빛이 반짝였다.
 
"이 나이에 새로 춤을 시작한 게 부끄러웠는데 이제는 춤추는 날이 가장 기다려져요.“라는 그들의 말에 가르치는 이로서의 보람이 느껴지기도 했다.
 
반년 후 공연에 참가한 단원들은 긴장한 분위기속에서도 자신의 실력을 발휘하여 차가자들의 인정을 받았다. 공연장을 가득 매운 관중들은 수시로 박수로 환영하고 위로해주었다. 성공적으로 끝난 첫 공연에서 그동안 고생한 보람을 느꼈다. 또 단원들도 용기를 가지게 되었다. 공연이 끝나고 환호속에서 손에 손을 잡은 순간, 우리는 단순한 "무용선생과 단원"이 아닌 한 가족이 되었다.
 
이렇게 나는 전통무용, 농악무, 부채춤, 등 다양한 무용을 가르치기에 온 열정을 다했다. 춤을 추려면 기본 공은 물론이고 문화적 이해와 춤동작속에 담긴 내용을 정확히 알고 추면 동작의 깊이와 무게를 더 상세하게 나타낼 수 있다는 것을 강조했다.
 
내가 창작한 무용 "황궁춤"을 가르칠 때도 옛날, 우리 선조들이 적과 싸울 때 무기가 창과 방패였는데 이 춤에 아박 춤과 칼춤을 도입한 것은 칼이 있으면 방패가 있어야 한다는 의미로 아박을 방패로 해서 했는데 전사들이 승리하고 황제앞에서 방패와 끊어진 칼을 들고 환호하면서 추는 춤이여서 당연히 웃어야 한다고 가르쳤다.
 
이때로부터 무용수들은 얼굴에 환한 웃음을 띄고 매력 있게 춤춘 결과 세계조선족민간문화 예술축제에서도 특등상을 수상하고 나도 우수 창작상과 국회 표창까지 받았다. 그리고 청도 국제 모래절에서 내가 창작한 작품이 최우수상으로 입선되여 금상을 받기도 했으며 청도시 텔레비전방송 인터뷰를 가지는 영광을 얻었다.
 
무용으로 시작된 나의 새로운 인생은 퇴직 후 삶의 문을 닫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문을 여는 것임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또 나뿐만 아니라 우리 민족의 전통을 이어가려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삶의 길을 열어나는 개척자로 알려지고 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내일도 연습복을 입고 그들과 함께 춤추러 나가고 있다.
/유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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