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시크가 뭐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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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중방송 작성일25-03-14 16:06 조회9회 댓글0건본문
요즘 세상이 변해도 너무 빨리 변해가고 있다.
내가 재직할 때 까지만 해도 제3차 산업혁명을 운운하며 원자력, 컴퓨터, 우주공간기술과 생물유전프로젝트 발명과 응용을 급선무로 간주하고 있었는데 20여년이 지난 지금은 어느덧 인터넷 이동통신과 인공지능 스마트 제조업이 주도하는 제4차 산업혁명의 시대가 도래했다고 거의 모든 언론이 한결같이 이구동성으로 분위기 조성에 열을 올리고 있다.
얼마전 중국 항주의 150 여명 종업원이 근무하고 있는 자그마한 한 회사에서 상대적으로 엄청나게 적은 자금을 투입하여 출품한 딥시크(DeepSeek)대형 인공지능 대화 모델이 세계 인공지능 선두주자로 손꼽히는 미국 오픈에이아이(OpenAI)에서 천문학적인 거금을 투입하여 제조한 대형 인공지능 대화모델 챳트GPT(Chat GPT)를 압도적으로 초월하였다는 놀라운 뉴스가 전 세계에서 폭발적인 센세이숀을 일으키면서 하루밤 사이에 세계의 주식시장마저 한바탕 마구 뒤흔들어 놓았다.
딥시크가 도대체 뭐길래 이처럼 전세계가 열광하고 주목하고 있는 것일까? 나는 비록 팔순을 훌쩍 넘긴, 그러나 정보통신기술에는 전혀 깜깜 문외한인 보잘 것 없는 변강 한 시골의 졸로이지만 그래도 세상의 흐름을 감지하고 세상이 변해가는 새로운 모습을 조금이라도 살펴보려는 호기심에서 스마트폰으로 인터넷에서 딥시크 인공지능 조수를 다운받았다. 그리고는 겁도 없이 딥스크와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딥시크 대화창에는 “저는 DeepSeek입니다. 반갑습니다. 저는 당신을 위해 코드를 만들어 드리고 파일도 읽어드리며 여러가지 아이디어로 문장을 써드릴 수 있습니다. 저한테 임무를 맡겨주시지요.”하는 제시어가 떠 있었다.
사람에게는 저마다 저도 모르게 생활의 세파 속에서 굳어진 습관이라는 게 있다. 딥시크의 제시어를 읽고 있는 순간, 나의 눈에는 내가 지금 한창 읽고 있는 책이 언뜻 눈에 띄이여 그냥 별생각 없이 딥시크 임무란에 “영국의 저명한 력사학자 오랜드 파이지스(Orlande. Figes)의 저서《나타샤의 댄스:로씨아 문화사》(《娜塔莎之舞:俄罗斯文化史》)의 서평을 한편 써달라고 부탁했다.
내가 “심도 있는 사색”(R1) 버튼을 클릭하여 이 임무를 딥시크에 발송하자 15초만에 《나타샤의 댄스:찢어지는 파렬 속에서 피여난 두 송이 문명의 꽃》이란 제목으로 1,600자에 달하는 서평이 스마트폰에 떠올랐다.
딥시크는 15초란 이 짧디짧은 한순간에 세계의 여러 도서관 빅데이터에서 전광석화마냥 600 여페지, 71여 만자에 달하는 《나타샤의 댄스:로씨아 문화사》라는 이 거작을 검색하여 통독하고 더 나아가 이 책에 관한 대량의 정보와 평론을 훑어본 다음 <문명 접목의 아픔과 영광> ,<지하실에 갇힌 로씨아의 넋>, <문화 복합성의 영원한 카니발>이란 세개의 소제목으로 나누어 서평을 펴냈다.
나는 이 서평을 읽으면서 신문사에서 한동안 편집으로 일해온 경험에 비추어 만약 이 임무를 신문사의 어느 문화 편집한테 맡겼다면 그는 아마 많은 시간을 할애하여 600 페지가 넘는 원작을 열독하며 독서필기를 하고 또 여기저기서 참고자료들을 찾아내 끙끙거리며 불철주야 집필에 몰두한다 하여도 이만한 수준급 서평을 써내기가 그리 쉽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적어도 열흘이나 반달쯤은 소요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뇌리를 파고들었다. 딥시크가 15초 동안에 해내는 이 일을 신문사 편집이 반달 동안에 제대로 해낼지도 모른다는 이 엄연한 사실이 나에게는 너무나 크나큰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내가 난생 처음 사용해보는 딥시크란 이 인공지능 대화모델이 15초만에 완성한 이 범상치 않은 서평을 읽고 경탄을 금치 못하고 있는데 곁에서 나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마누라는 잔주름이 자글자글한 함박얼굴에 미소를 지으면서 내뱉는 한 줄 평이 가관이였다.
“지금 핸드폰으로 돈을 주고받는 것만 보아도 세상이 돌아가는 게 똑 마치 귀신놀음 같습니다.”
딥스크의 글재주를 확인하고 나서 나는 딥스크한테 그 무슨 또 다른 귀신놀음 같은 재주가 있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갑자기 고중다닐 때 어문교과서에서 배웠던 북송 애국시인 신기질(辛弃疾)의 시구가 떠올라 그의 《菩萨蛮.书西江造口壁》를 조선어로 번역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러자 16초후에 번역문이 스마트폰에 떠올랐다,
신기질의 <파사만 : 강서 조구벽에 쓰다> 전문을 조선어로 번역해 드리겠습니다. 원문의 정서와 시적 이미지를 최대한 살리려 노력하였습니다:
파사만 : 강서 조구벽에 쓰다
울고 대 아래 청강 흐르니
그 물길엔 나그네 눈물 고여있네
서북으로 장안 바라보아도
애달픈 수많은 뫼들이 구름 걸렸도다
그 물길엔 나그네 눈물 고여있네
서북으로 장안 바라보아도
애달픈 수많은 뫼들이 구름 걸렸도다
푸른 뫼들 막아도 소용없어
청강은 끝내 동으로 흘러가니
강물 저물어 시름 잠기는데
깊은 산골 꿩 울음 소리 들려오네
청강은 끝내 동으로 흘러가니
강물 저물어 시름 잠기는데
깊은 산골 꿩 울음 소리 들려오네
번역에서 가장 어렵다는 중국의 고시를 번역함에 있어서 그저 그 뜻풀이에 그치는 게 아니라 원문의 정서와 시적 이미지를 최대한 살리려 노력했다는 그 하나만 보아도 인공지능이 이미 어느 정도 발전하였다는 것을 알고도 남음이 있을 것 같다.
이제 인공지능이 계속 일장월취 발전하여 오라지 않아 딥스크와 비슷한 인공지능 로봇이 시를 쓰고 소설을 쓰고 평론을 쓰는 새로운 문학의 시대가 도래할지도 모른다. 지금 미국 할리우드에서는 이미 벌써 인공지능 로봇이 씨나리오를 쓰고 인간작가가 약간의 수정을 가한 후 직접 영화제작에 들어간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배움의 바다는 끝이 없다. 인간은 시대와 더불어 부단히 전진하면서 평생 배우고 또 배워야 시대의 낙오자가 되지 않을 것이다.
옛적부터 우리네 조상님들께서 가라사대——
태산이 높다한들 하늘아래 뫼이로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 리 없건만
사람들은 제 아니 오르고 뫼만 높다 하더라.
/강룡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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