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병인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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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중방송 작성일23-12-21 23:22 조회225회 댓글0건본문
언니, 이모, 아저씨, 팀장님은 오늘도 돈을 향해 병원에서 뱅글뱅글 돌아친다. 돈을 벌려는 언니 이모, 아저씨들이 모여드는 곳이 한국 요양병원이다. 중국에서 저마다의 꿈을 품고 온 언니,이모, 아저씨들이 돌봄의 현장을 잠깐의 서식지로 삼는다. 취업이 쉬운 이유로 온갖 펌혜와 하대 멸시를 혀사이로 질근질근 씹어 삼키며 남의 배설물을 치우는 더럽고 힘든 간병이라는 직업을 선택한다.
사람들은 묻는다. "굳이 왜 간병일을 하는가?"고. 답은 오직 하나 돈이다. 대부분 간병인들이 그렇게 대답할 것이다. 돈 참 좋은 물건이다. 돈이면 뭐든지 다 할 수 있는 요즘 세상이다. 특히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 이미가 더 두드러진다. 간병일은 주말도 휴일도 없다. 토·일요일도 휴무이니 한 달 벌이가 250만 원쯤 된다. 제법 쏠쏠한 액수이다.
처음엔 돈 벌 생각에 피곤하지도 않고 오히려 즐거웠다. 한국에 집도 없어 오갈데 없는 처지라 병원에서 먹고자고 하니 마음 편했다. 그런데 몇 개월 지나니 버티기 힘들어지기 시작하였다. 누군가를 24시간 돌본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최소한의 통잠도 자기 힘들고 환자의 불편한 심리까지 온몸으로 떠안으며 감정노동도 해야 한다. 침대 사이가 꼬불꼬불 산길 같았고 세포 사이에(细胞间隙) 냄새가 배여드는 느낌이었다. 솔직한 말로 살맛이 안 난다.
간병인에게 병실은 단순히 “방”으로만 의미하지 않는다. 병실은 일터이자 쉼터이고 먹고 자는 곳이 되기도 하다. 간병인들은 간이침대에서 쪽잠을 잔다. 점심시간의 짧은 휴식은 간병인들에게 지난밤의 잠을 보충하고 오후를 견디게 하는 에너지다. 하지만 많은 요양병원들에서는 이런 휴식도 허용하지 않는다. 원 없이 늘어지게 자고 싶은 것이 간병인의 소원이다.
짠맛 단맛이 빠진 병원식사에서 라면은 간식으로, 요리로 인기가 짱이다. 얼큰하고 진한 국물을 흡입할 때는 여느 곰탕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황홀하다. 김치찌개 국물 같기도 하고, 때론 육게장 같기도 한 시원함은 간병인의 고단함을 달래주는 데 손색이 없다. 간호사들의 눈을 피해가며 고구마·감자를 환자용 전자렌지에 쪄 먹기도 하는데 간병인들에게 가끔 주어지는 호사다. 어느 간병인 언니가 하던말이 생각난다. “돈은 벌지만 거지 같이 사는 게 간병인의 삶이다.”
코로나가 폭발적으로 퍼지던 시기 방역조치가 우왕좌왕이 되면서 접촉자와 확진자를 격리시킬 공간도 역부족이었던 탓에 밀접 접촉자인 간병인을 화장실에 격리시킨 일도 있었다. 아니 격리시켰다기 보다 가두어 놓았다는 게 더 적합한 거 같다. 화장실에서 밥까지 먹어야 했던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 벌어졌다. 먹는 입(口)과 들어갈 입(入)과 나갈 출(出)이 혼재된 장소여서 만감이 교차하는 식사였다. 간병인은 액면 그대로 배설하는 곳에서 먹어야 했고 배고프니까 먹었고 피곤하니까 주저앉아 잤다. 잘 먹고 잘 자는 것은 생존의 문제이고 그야말로 작으면서도 가장 기본적인 일상일 뿐만이 아니라 확실한 행복이기도 하지만 간병인의 삶은 그렇지 못하였다.
세상에서 가장 낮은 계층이라고 간병인을 하대하고 중국동포라고 차별하는 사람들이 있다. 간병은 노동의 어려움보다 세상에 존재하는 온갖 폄훼가 더 어렵다. 그야말로 눈물 젖은 삶이다. 간병인을 깔보고 업신여기는 순간, 따듯한 돌봄은 사라진다. 간병인과 환자, 보호자간에 감정이 실리면 서로가 불편하다. 량자 사이에는 “돌봄”이라는 거래가 있다. 즉 도움을 주고 받는 두 상대가 갑과 을의 상태로 존재한다. 도움을 받는 환자가 부리는 자세가 아닌 고마운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간병인은 내 부모처럼 존중하며 섬기는 자세로 돌봄을 한다면 가장 질 좋은 간병이 이루어 진다. 간병인에게는 그 시간이 가장 보람된 시간이 될 것이다. 간병은 단순이 돈만 버는 직업이 아니라 정을 주고받고 희생과 봉사가 겸비된 도덕과 사랑이 있어야 하는 서비스 업종이다. 간병은 갑을이 존재해서는 안 되는 직종이다.
치매환자에게 당하는 무시와 욕도 마음속 깊이 씹으면서도 잘 보살피고 돌보는 것이 간병인의 본능이고 천직이다. 그러기에 힘들어도 참고, 피로함도, 외로움도 견뎌내야 한다.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견뎌내야 할 인내에 져야 하는게 간병인의 사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간병인에게서 해서도 안 되고 있어서도 안되는 “환자”학대라는 사건이 일어나 세상의 질책과 흴난을 받으며 조선족 간병인 전체를 욕보인다.
며칠 전에도 조선족 간병인이 환자의 항문에 위생 패드 조각을 여러 차례 집어넣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3년 6개월 실형을 받았다. 가족처럼 돌보고 따듯하게 대하라는 것은 입에 바르는 가르침이 아니다. 법을 무시하고 인격과 량심을 버리면 위와 같이 감옥행이다. 간병인은 그 어디에도 대변하는 단체가 없다는 사실을 잘 알아야 한다. 부당함을 당하거나 억울함을 당해도 하소연을 할 정부기관이 없다는 말이다. 간병인은 노동법 보호 범위 밖이라 노동법의 보호도 받지 못한다.
간병인 스스로 자신을 하대하는 게 참 가슴이 아프다. 잘못한 것도 없이 주눅이 들어 당당하지 못한 간병인들을 보면 안타깝다. 그들이 연변과 동북 3성에서 간 고향사람이라는 게 더 마음이 쓰인다. 타향에서 만난 고향 사람은 반갑다. 외로운 마음에서 같은 곳에서 살았다는 이유만으로도 친숙해진다. 고향에 있을 때는 서로 모르고 또는 친하게 지내지 않았어도 타향에서는 향수의 마음이 우리들을 끈끈하게 이어놓는다. 그래서 그들에게 비록 남루한 일상이지만 힘내라고 주먹을 쥔 채 파이팅 자세를 해주고 싶다. 사과 한알도 나눠먹는 아름다운 모습으로 힘을 실어주고 싶다.
간병인은 오늘도 인생을 버티기 위해 밤을 샌다...
재한 중국동포간병인들에게 작으마한 힘이라도 되였으면 좋겠다.
/김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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