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명절 맞는 기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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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중방송 작성일22-02-17 15:16 조회706회 댓글0건본문
내 나이 올해 일흔 여섯이니 설 명절을 76번 맞고 보냈다. 수십년 맞은 설 명절 기분이 어떠할까? 대체로 3가지 기분이다.
첫째, 철없는 세월에는 매일 설 명절이기를 바랐다. 설이면 먹 거리가 많아 좋았다. 설 명절이 지나면 아쉬움이 남았다.
둘째, 설 명절이 다가올수록 겁났고 설 명절이 지나면 홍수재해가 지나간 기분이 들었다.
장가를 가고 딴 살림을 하자 설 명절이면 적게 잡아 어르신 계시는 여섯 집에 명절인사를 해야 한다. 37원(인민페) 월급쟁이니 빈손으로 인사할 수 없다. 한집에 적어서 병술 2병, 사탕 한 봉지, 과자 한 봉지, 돼지고기 2근 혹은 잉어 2마리를 사야 한다.
37원으로는 모자란다. 당시 월급 외 들어올 돈이 없다. 흑룡강신문과 흑룡강조선말방송에 원고를 보내면 채용 후 원고료를 보내지 않고 서점에서 팔리지 않는 책을 보내온다.
동료들도 37원 월급쟁이어서 돈을 빌릴 수도 없다.
방법은 아내와 큰 아들이 농촌호구여서 나와 작은 아들의 3개월 식량을 사지 않아도 먹을 건 문제없어 다행이다. 그러면 22원을 모을 수 있다.
그런데 또 골칫거리가 있다. 세배 돈이다. 친조카, 처조카가 26명이다. 50전씩 줘도 13원 나간다. 그러니 돈 근심으로 겁이 드는 걸 어쩔 수 없다.
초이튿날 처갓집 행이 또 고된 일이다. 설 명절기간 처갓집 마을행 버스가 없어 14리 길을 걸어가야 한다. 자전거 뒤에 짐을 싣고 큰아들을 자전거 앞에 태우고 내가 밀고 간다. 아내는 작은 아들을 업고 걷는다.
그때 는 눈이 많이 내려 큰길은 흙길이 아니고 굳은 눈길이다. 칼날 같은 서북풍이 부는 날엔 네 식구의 온몸은 얼어 걷기가 더 힘들다.
이렇게 처갓집에 도착하면 대가족으로 정신을 차릴 새 없다. 처남, 처제가 8명, 처조카 20명이 북적거려 어안이 벙벙하다.
며칠 후 집으로 오니 홍수가 지나간 기분이 든다. 아내의 돈궤에 돈 1전도 없다. 다음 월급날을 눈이 깜해 기다린다. 그러니 누가 설 명절을 만들었는가고 선조를 탓한다.
셋째, 60이 넘어 퇴직하니 설 명절에 외로운 기분이 든다. 부모님, 장인, 장모님, 형님, 형수님께서 세상을 뜨셨기에 설 명절인사를 드릴 집이 없어졌다.
놀아도 퇴직금이 달마다 몇 천원 받아 돈 근심이 없는데도 말이다. 그믐날 전에 하나밖에 없는 손녀에게 1천원 보내면 돈 나갈 일이 없다.
오히려 처남, 처제, 조카들이 60만원(한화)을 송금해 온다. 한국에 온 후 몇 년은 설 명절에 모여 설 쇠는 기분이 들었는데 3년 설 명절은 코로나19바이러스로 모임은 없고 스마트폰에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란 문자 메시지만 오갈뿐이다.
이런 설 명절도 몇 번 남지 않았다. 그러니 외로움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그래도 마음먹고 살 때까지 기뿐 기분으로 설 명절을 맞고 보내자.
/최영철 부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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