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왕봉에서 맞이한 빛의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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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5-10-04 13:09 조회41회 댓글0건본문
9월의 끝자락, 난는 무거운 카메라 가방을 짊어지고 다시 지리산을 찾았다. 지인과 함께 노고단에서 출발해 2박 3일간의 여정으로 계획했다.
배낭 속에는 햇반과 라면, 물 그리고 촬영 장비까지 20kg이 넘는 짐이 들어 있었다. 어깨를 짓누르는 무게와 험한 산 길은 결코 만만치 않았지만 마음만은 천왕봉을 향해 묵묵히 걸어가고 있었다.
애초에는 추석 연휴에 네팔 등반을 계획했지만 현지 사정으로 국내에서 가장 장엄한 산, 지리산 천왕봉을 택했다. 노고단에서 산행을 시작하자 투구꽃들이 길가에 피어 있어 마치 길을 안내하듯 반겨주었다. 그러나 이어지는 산길은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를 만큼 험했다. 다리는 점점 무거워졌지만 사진작가에게 산은 단순한 풍경이 아닌 ‘견뎌야 만날 수 있는 진실의 순간’이기에 나는 하늘을 바라보며 한 걸음씩 내디뎠다.
천왕봉 정상에 오르기 전, 장터목대피소에 들러 지인과 함께 컵라면을 나누어 먹으며 잠시 땀을 식혔다. 뜨거운 국물은 지친 몸을 데워주었고 대피소 밖으로 나서자 밤하늘 가득 쏟아지는 별빛이 펼쳐졌다. 나는 알른 카메라를 삼각대 위에 올려놓고 렌즈를 통해 하늘을 담아보았다. 무거운 짐과 고된 발걸음이 떠올랐지만 그 별빛은 모든 고생을 보상해주기에 충분했다.
다음 날 새벽, 마침내 천왕봉 정상에서 일출을 맞이했다. 구름 사이로 솟아오르는 태양은 산 능선을 붉게 물들이며 장엄한 풍경을 선사했다. 그동안 천왕봉을 여러 차례 올랐지만 오늘같은 광경은 처음이었다. 셔터를 누르는 손끝마저 떨릴 만큼 그 순간은 사진작가로서 평생 잊지 못할 선물이었다.
야생화의 은은한 빛깔도, 별빛의 깊은 울림도, 일출의 장엄함도 이번 여정에서 만난 모든 것이 제 삶의 기록으로 남았다. 하루를 더 머물고 싶었지만 비 예보로 인해 아쉬움을 안고 하산할 수밖에 없었다.
이번 천왕봉 산행은 단순한 기록을 넘어, 제 사진 인생에서 가장 깊이 각인될 장면으로 남을 것이다. 고된 여정을 견뎌낸 끝에 만난 빛은 앞으로도 나의 사진속에서 살아 숨 쉬며 또 다른 길로 이끌어 줄 것ㅇ;다.
/조광회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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