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터 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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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중방송편집부 작성일17-02-06 10:58 조회7,262회 댓글0건본문
남편은 나를 “놀이터 대장”이라고 한다. 싫지가 않다. 내가 “살아있다”, 내가 “건강하다”는 증표니깐.
2011년 1월 한국 땅을 밟은 나는 7개월간의 학원 교육을 마치고 취업비자를 손에 쥔후 “본분”을 잊지 않고 오직 일에만 전념하였다. 사실 나느 학원 다니는 7개월 동안도 주말반이라 평일에는 열심히 일하러 다녔었다.
직장과 집, 집과 직장, 나는 “두 점 일 선(兩点一線)”사이를 오가며 일상을 오직 “일” 그리고 또 “일”로 보내였다.
그렇게 죽을 둥 살 둥 일만 하던 중, 3년 후인 2014년의 어느 날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나에게 건강검진 통지서가 날아 왔다(남편이 건강보험에 들어 한 가족이 모두 혜택을 보는 것이다). 나는 시간을 내서 건강검진을 다녀왔다. 며칠 후 병원에서 연락이 왔다. 몸에 이상 있으니 재검진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재검사 하니 암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으니 수술하라는것이다. 그래도 괜찮겠지 하면서 천천히 수술 날자를 잡고 입원하였다. 그런데 이게 무슨 날벼락이람? 수술받고 조직검사를 한 결과 암이라는 판정이 나왔다.
“암이라니?”
순가 나는 머리 속이 새하얘졌다.
나는 남편을 끌어안고 하염없이 울었다.수술해야 한다고 할 때 서둘러서 했을걸. 몇 년 간 몸을 혹사하며 정신없이 일만 한 것이 한스러울 정도로 후회되었다.
발병 초기라니 하루 빨리 치료하면 좋아질 것이라고 남편은 나를 위안 했다. 그해 8월 28일나는 수술을 받았다. 병 진전이 예상보다 빠르다고 주치의사가 말 하였다. 그런데 이때 공교롭게도 비자가 만기되어서 난 항암치료도 못 받고 중국으로 들어갔다.
이듬해 9월 다시 한국에 들어온 나는 병이 완쾌되지 않아 일을 할 수 없어 매일 집에서 놀면서 휴식을 취했다. 심한 통증으로 누우면 일어나기 싫었다. 어쩌다가 정신 차려 운동하느라 3키로 떨어진 보라매공원까지 걸어갔다 왔다. 운동장을 몇 바퀴 돌았는데 몸에 무리가 갔는지 더 힘들었다.
무미건조한 나날들이었다.
그나마 나를 따뜻하게 보살펴주고 아껴주는 남편이 곁에 있어서 마음 한구석이 든든했다. . 병원에 입원했을 때 밤낮으로 살뜰히 시중들어 주던 남편은 내가 퇴원하자 정기검진을 놓치지 않도록 수시로 일깨워주고 나에게 일할 생각 말고, 생활비 걱정 말고 건강만 잘 챙기라고 신신당부 하였다. 아무리 부부사이라도 남편이 한없이 고마웠다.
내가 살고 있는 곳은 7만 명의 중국 동포들이 살고 있는 한국 속의 작은 중국으로 불리우는 동포타운 대림동이다. 사는 양이 중국과 별반 다름없었다.
저녁이 되어 식사를 마치고 집근처 공원에 나가보았다. 70~80십대 할머니들이 광장무를 추는 모습이 아주 보기 좋았다. 흥겨운 멜로디에 맞춰 즐겁게 춤 추는 모습을 보노라니 울적하던 마음이 조금 개운해졌다. 광장무를 추는 것이 혼자서 걷기보다는 훨씬 나은 것 같았다. 많은 사람들을 사귈 수 있고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어서 좋은 것 같았다. 그래서 50대인 나도 광장무 대렬에 들어서 거의 매일 할머니들과 함께 광장무를 추었다 .
그러던 어느 날 우리 한민족음악동호회 김영숙 총괄이 나보고 춤을 추겠는가고 물어 보았다. 나는 못 추는 춤이지만 추어 보자는 생각에 한민족음악동회에 가입하였다. 그래서 낮에는 한민족음악동호회에서 춤 연습을 하고 밤이면 광장무를 추었다.
한민족음악동호회에서 부지런히 춤 동작을 익히고 노래 연습을 하였더니 무대 공연에 나갈 기회도 주어졌다. 무대에서 공연하는 것은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다. 중국에서도 무대 공연을 못 해 본 나는 한국에서 경로당 봉사 공연부터 국회의사당에서 열린 한중문화예술 축제 등 무대에서 수십 번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었다. 꿈만 같다.
우리가 광장무를 추는 다사랑공원은 일요일이면 청소하는 사람이 없었다. 우리는 자발적으로 일요일 아침마다 나가서 공원 청소를 하였다. 후기엔 한민족연합회의 명의로 관할사무소에 정식 봉사신청을 하고 공원청소를 하였다. 우리가 매일 나가 놀고 춤을 추는 공원이 깨끗해지니 기분이 정말 좋았다.
그런데 이렇게 수술후 바깥세상에 나가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적극적으로 건강관리를 하고 있는 나에게 엎친데 덮친다고 또 다른 병이 찾아왔다. 담결석에 걸린 것이다. 아프기 시작하면 참기 어려울 정도로 아파나 땀이 바질바질 났다. 도저히 견딜 수없어 나는 지난해 8월에 담결석 수술을 받았다.지금은 의술이 좋아 국부에 구멍 3개를 뚫고 담석을 제거해버렸는데 아주 빠르고 간단했다.
수술후 며칠 휴식을 취한 나는 또 여느때처럼 봉사에 나섰다. 공원청소도 하고 무대 공연도 계속 하고 필요할 때마다 활동실로 나가서 정리정돈도 하고 물건도 관리 하였다.
한민족음악동호회에 가입한 나는 공원 광장무 팀 할머니들을 이끌고 한민족음악동호회 행사에도 참가하였다. 한민족음악동호회도 반기고 할머니니들도 아주 즐거워했다. 지난해 말에는 한민족연합회 명의로 공원 광장무 팀 할머니들을 조직하여 “겨레얼살리기 운동본부”에서 개최하는 윷놀이에 참가하도록 했는데 할머니들은 기뻐서 애들처럼 좋아했다. 할머니들이 즐거워하는 것을 보니 나도 한없이 즐거웠고 행복했다. 남편도 함께 즐거워했다. 나를 “놀이터 대장”이라고 놀리면서.
봉사는 할수록 더 행복해 진다더니 정말 그랬다.
한민족음악동호회 활동실과 가까이 살고 있는 나는 활동실 키를 관리 하였다. 매일 매일 할 일도 있고 보람도 있었다. 누구든 필요로 하면 언제든지 활동실문을 열어주러 나간다. 그들이 노래 부르고 춤추고 탁구도 치면서 즐기는 모습을 보면 내 마음도 즐겁다.
그리고 지난해 KCNTV한중방송 방송교육을 진행하는 반년 간 나는 다른 교육생들과 함께 항상 먼저 교육장에 가서 청소를 하고 방송교육이 끝난 후에는 또 끝까지 남아서 교육장을 깨끗이 정리정돈했다.
한민족음악동호회 회원들과 함께, 공원 광장무 팀 할머니들과 함께 춤추고 노래 부르고 공연 및 재능봉사를 하는 지금이 나는 한없이 즐겁고 행복하다.
우리 말 속담에 “물 마실 때 우물 판 이를 잊지 말라.”는 말이 있듯이 나는 우리에게 이런 활무대를 제공해 주신 한민족연합회, 한민족음악동호회 전길운 회장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그리고 나에게 따뜻한 배려, 관심과 사랑을 아낌없이 준 한민족음악동호회 김영숙 총책과 조봉희 단장을 비롯한 여러 회원들에게도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암이라는 병을 앓으면서 나는 어울림의 철학을 터득하고 봉사와 나눔이 사람을 행복하게 한다는 걸 터득했다.
한민족음악동호회 회원들, 우리 함께 나누며 봉사하며 건강하게 행복하게 살아요.
/강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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