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녀린 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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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중방송편집부 작성일17-02-18 11:14 조회8,721회 댓글0건본문
나는 아침 급히 출근하는 남편에게 옷장위에 있는 트렁크를 내려다달라고 부탁했다. 저녁에 퇴근한 남편이 의아해서 나에게 묻는다.
“내가 아침에 트렁크를 안 내려놓고 출근했어?”
“트렁크를 내려주었는데... ...”
“그런데 어떻게 올려놓았어?”
남편은 불가사의하다는 표정을 짓고 한참동안 나를 쳐다보고 있다. 남편이 의아해할만도 하다. 15킬로는 실히 될 트렁크를 키 작은 아내가 걸상도 없이 1.8미터 높이의 옷장 위에 올려놓았으니 말이다.
분명한 것은 이 모든 것이 사실이라는 것이다. 다름아닌 “훈련의 결과”다. 2년 전 몇개월간 "훈련을 받"은 것이 효력을 발생했던 것이다. 다 같은 여자지만 "여인"이란 존재에 대한 나의 고유의 생각을 바꿔놓는 계기가 된 몇개월이었다.
현재 있는 직장에 오기 2년 전 나는 인쇄공장에서 약 3개월간 근무한 적이 있다. 유리용기에 제품설명서를 인쇄하는 공장이다.
유리용기에 제품설명서를 인쇄하는 작업은 단순하면서도 간단하다. 그 뒤의 작업들이 여인들의 한계를 크게 시험한다.
인쇄가 끝나면 인쇄된 용기를 난로에 넣고 구워야 하는데(일정한 온도의 난로에 넣고 구워야 인쇄된 글이 벗겨지지 않는다) 인쇄를 마치는대로 용기를 길이와 너비가 각각 약 70-80센티미터 되는 얇은 널 판지에 몇 줄로 올려놓은 뒤 네 바퀴 차에 싣는다. 한층, 두층, 세층... ...자기 키 높이보다 훨씬 높게 쌓고 또 쌓는다. 아슬아슬하다. 용기가 거개 긴 병모양이라 아차하면 넘어갈 판이다. 집중력과 조심성이 지극히 필요한 작업이다. 몸의 평형을 제대로 잡지 못하거나 혹은 진열대를 살짝만 건드려도 모든 진열판의 용기들이 마치 도미노처럼 와그르르 넘어지며 무너져내린다.
용기 진열 판을 쌓아 실은 밀차를 난로까지 밀고 갈 때도 여간 조심스럽지 않다. 바퀴에 자그마한 이물질이라도 걸채기만 하면 유리용기가 진열된 널 판지가 휘청하며 와그르르 무너져버리는데, 그 정경 가히 상상할 수 있지 않은가? 조심조심 난로 있는데 까지 끌고 가면 전문 작업 인이 유리용기를 난로에 넣고 굽는다.
용기 진열 판을 내려 먼저 난로 옆에 올려놓은 다음 용기들을 하나하나 난로입구에 세워놓으면 자동으로 난로 안으로 빨려 들어간다. 여기서 진열 판을 내려놓는 과정이 참 힘들다. 자기 키 높이보다 훨씬 높이 쌓여 있는 진열 판을 내려놓는다는 게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조금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다. 작고 가벼운 용기는 그나마 괜찮은데 길고 큰 용기는 무거워서 팔이 뻐근하다.
이 모든 작업을 거의 여자들이 해낸다(다른 회사와 달리 남직원의 수당을 여직원들과 똑 같게 주기 때문에 남직원이 가물에 콩 나듯하다). 그저 일이 아니다.
아주 예쁘장하고 날씬하게 생긴 연변 “아줌마”가 굽는 작업을 전문 담당하고 있었다. 나보다 2살 위라고 했는데 아주 아련하고 여성스러웠다. 남자의 보호가 꼭 필요한 여성이라는 인상을 주었다. 성 씨는 정씨라고 했다.
정 씨 아줌마는 먼저 용기 진열 판을 실은 밀차를 조심조심 난로 곁으로 밀고 왔다. 화장품 스킨수용용 용기라 긴 병모양이다.
나는 숨을 죽이고 조마조마해서 지켜보았다.
정씨 아줌마는 발뒤꿈치를 살짝 들고 두 팔을 위로 뻗쳐 진열 판의 가운데를 잡더니 아주 숙련된 동작으로 제일 윗 층의 진열 판을 가볍게 내려놓는다.
“저 가녀린 여인이 저걸 어떻게?”
정씨아줌마는 여기서 이 일을 꼬박 1년 했는데 한 번도 실수한 적이 없단다. 저 가녀린 체구, 저 가느다란 허리, 저 가느다란 팔목이 어떻게 저 무게 저 높이를 감당할까? 참 의문스러웠다. 탄복스러웠다.
정씨 아줌마는 이 일을 아주 소중하게 생각한다고 했다. 용역을 통해 여러 회사들을 전전했는데 일이 자주 끊겨 꽤 속을 끓이다가 어렵게 얻은 일자리인지라 힘들지만 일이 안정적이어서 정말 좋다고 했다. 나중에 안 일인데 정 씨 아줌마는 자궁척출수술을 하여 어떤 땐 허리가 끊어지는 듯 아프다고 했다. 그의 말을 빈다면 몸에 있어야 할 장기가 없어져서 오는 후유증이라고 했다. 나는 연변아줌마에게 있어서 이 일자체가 몸에 무리가 가는 일이다 싶었다.
한 번은 쉬고 있던 그 옆에 있는 다른 난로도 가동했는데 책임자가 날 더러 맡으라고 했다. 더럭 겁부터 났다. 키보다 훨씬 높이 쌓인 용기 진열 판을 잠시 올려다보고 있는데 정 씨 아줌마가 어느새 와서 진열 판을 내려주었다. 참으로 고마웠다.
키가 작달막하고 깡마르고 얼굴이 자글자글한 60대쯤 되어 보이는 아줌마가 각별히 눈에 띈다. 아줌마라기보다 할머니라는 편이 나을 만큼 늙어보였다. 아주 가냘퍼보였다. 이 “할머니”가 글쎄 15킬로는 실히 됨직한 용기박스를 건뜻 들어 1.8미터 높이 되는 곳에 올려놓는 게 아닌가. 그 것도 한 두개가 아니라 단 숨에 30여개를. 입이 딱 벌어졌다.
그런데 그 일을 나도 해야 된단다. 전혀 엄두가 나지 않아 다른 데 가서 박스를 쌓기 시작했다. 바닥부터 한층 한층. "가냘퍼보이는 할머니”가 곁에 와서 요령을 알려주었다. 허리를 굽히지 말고 직선으로 편 채로 앉아서 물건을 들고 일어나서 올리란다. 이러면 허리에 무리가 안가고 힘을 쓸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 해봤다. 느낌이 좋았다. 하지만 첫 날도 둘째 날도 셋째날도 나는 그냥 내 키 높이만큼만 쌓았다. 신입이라 그런지 뭐라는 사람이 없었다... ...
이 현장에서 얼마나 일했을까? 어느 날 나는 다른 여직원들처럼 뭐든지 건듯 건듯 들어올리는 자신을 놀랍게 발견하였다. 집에서 물건이 조금만 무거워도 남편에게 의지하던 내가, 예전같으면 전혀 엄두도 못 낼 일을 해낸 것이다. 스스로도 대견스러웠다.
다른 한 “가녀린 여인”이 떠오른다. 나의 친구 홍이다. 나보다 세 살 어린 홍이는 날씬한 체구, 예쁜 얼굴에 약간 도도한 기품이 있어 어데 가나 사람들의 이목을 끈다. 그저 남편이 벌어준 돈을 펑펑 쓰면서 멋이나 부리면서 살던 “귀부인”형이었다. 그런데 사람 일은 모른다더니 홍이가 43살 때 남편이 그만 심장마비로 졸사를 했다.
그로부터 2 년 후 일이 있어 홍이네 집에 손님으로 가게 되었다. 힘든 일을 겪은 홍이가 지금 어떻게 변해 있을까?
홍이가 환한 얼굴로 반겨준다. 새로 인테리어를 한 살림집이 밝은 색상으로 홍이의 환한 얼굴을 받쳐준다.
“아주 좋아보여.”
“네, 잘 살고 있습니다. 연이가 저를 살렸습니다.”
남편이 돌아간후 약 반년 정말 버티기 어려울 정도로 힘들었다. 그런데 아버지를 잃은 딸, 대학입시를 앞둔 딸 연이가 홍이가 힘들다고 시름놓고 맥을 버릴 수 있게 하지 않았다. 2년간 홍이는 남편이 벌여놓은 건축공사를 마무리하고 집안 분위기를 바꿔보려고 살림집 인테리어도 새로 했다. 남편이 하는 사업에 전혀 관여하지 않다가 중간에 뛰어들어 마무리를 한다는 게 여간 힘든 일이 아니였다. 특히 공사대금을 받아내는 일은 말 그대로 사람 피를 말리는 일이었다. 그래도 해내였다.
“홍이가 참 장한 일을 해냈구나.”
“제가 이 집안의 가장이 아닙니까?”
담담하게 얘기하는 홍이의 눈에 강인함이 강하게 내비쳤다.
말을 마친 홍이가 발코니에서 사다리를 들여와 옷장에 걸쳐놓더니 옷과 이불을 올렸다 내렸다하며 새로 정리한다. 일 하는 양이 매우 걸 싸 보인다. 예전의 홍이가 아니였다. 감탄이 절로 나갔다.
“아줌마가 그렇게 드세도 되는거야?.”
나의 농담어린 말에 홍이가 환하게 웃는다.
가녀린 여인이 따로 있던가?
"엄살"도 때와 장소가 있는 것이다. 내가 지켜야 할 사람, 내가 감당해야 할 일이 있다면, 내가 아니면 안 된다면 엄살은 사치인 것이다. 책임 앞엔 어떤 “가녀린 여인”도 억척스런 여인으로 바뀔 수밖에 없는 것이 바로 세상사는 이치다.
한계는 사람이 스스로 만들어낸 것이다.
/방예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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