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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좌진 장군과 해림시 한중우의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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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중방송 작성일17-06-03 14:41 조회11,06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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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룡강성, 해림시 해랑로 철남가에 있는 한중우의공원은 사단법인 백야 김좌진 장군 기념사업회(회장 김을동)가 해림시에서 기부한 부지에 2005년 건립한 곳이다.

 

청산리 전투에서 일본군을 대파, 항일독립군의 면모를 과시한 백야(白冶) 김좌진(金佐鎭, 1899~1930) 장군은 만주 해림과 산시(山市)를 무대로 신민부(新民府)를 조직하여 활동했다.

 

공원입구에 있는 ‘한중우의공원’이라는 한글이 가슴을 뛰게 한다. 안내문이 우리를 반긴다. "한중우의공원“은 총대지 면적 16,800평방미터로 2002년 6월 15일 착공하여 2005년 1월 29일에 완공하였으며 문화관에는 연수원과 동북지역에서의 항일운동역사가 전시되여 있으며 종합관에는 한국의 전통문화보급으로 한중 양국가의 문화, 경제 교류를 목적으로 세워져 있다.

 

한중우의공원은 한국의 김좌진 기념사업회에서 운영관리하고 있다. 공원 앞에는 나무가 잘 가꾸어져 있고 운동장이 제법 넓었다. 운동장에는 아주머니 30여명이 모여 에어로빅을 하고 있었다. 우리는 곧바로 역사문화관으로 향했다. 한중우의공원 주 건물은 1층이 연수관으로 강의실, 주몽관, PC방, 숙소가 있다.

 

이곳에서 강의, 교육이 진행되고 휴식을 하고 취침을 하는데 호텔이라 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시설이 좋다. 이곳에서 하룻밤을 묵을 예정이다. 2층부터 역사문화관인데 이곳에는 만주지역 항일독립운동사, 한중 수교, 한류문화 등 사진, 자료, 유품을 전시되어 있다. ‘중국지역 항일 역사 기념관’임을 표방한 대로 중국에서 한인이 벌인 항일 투쟁의 역사를 알차게 담았다.

 

1관부터 차례로 들러 만주지역 항일 독립 운동사를 관람했다. 1관은 한인의 동북이주와 독립전쟁준비 과정을 소개한다. 2관은 한인의 3·1운동과 독립전쟁의 전개를 알린다. 만주로 망명한 한인들이 점차 무장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하는 과정을 사진, 자료, 신문 기사를 통해 볼 수 있었다.

 

홍성 출신 김좌진 장군이 만주 망명길에 오른 것은 1918년. 만주로 이주한 한인을 독립군으로 양성하여 청산리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 안으로 들어가 제일 먼저 집어든 한중우의공원 안내 자료에 백야 김좌진 장군을 소개한 글이 눈에 들어왔다.

 

청산리 독립전쟁에서 소수의 독립군으로 최강의 일본군을 대파한 대한민국 근현대사 최고의 항일 명장 대한독립군 총사령관. 그 아래 좀 더 상세한 내용이 들어있다. 아쉬운 것은 청산리전투의 북로군정서 서일총재가 빠진 것이었다.

 

“만석지기 양반가 자제로 태어나 가노 해방, 재산 분배, 항일 무장투쟁의 선봉에 섰던 ‘노블리스 오블리쥬’ 정신을 실천한 민족의 위대한 지도자, 국제정세를 정확히 파악해 자유시 참변을 예측하여 따르는 수많은 부하를 위기에서 구해낸 탁월한 선각자, 국가의 미래와 독립군 자제들의 교육을 위해 20여개의 학교를 설립한 위대한 교육가, 민초들과 더불어 산업 활동으로 솔선수범했던 현대판 기업형 CEO, 청산리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던 뛰어난 장군으로만 알았던 김좌진 장군의 새로운 면모를 접할 수가 있다.

 

1889년 충남 홍성에서 태어난 김좌진 장군은 1904년 16세 때 노비를 해방하고 토지를 분배해주었다. 1905년 상경하여 육군무관학교에 입학하였다. 1907년 고향으로 돌아와 호명학교(湖明學校)를 세웠다. 김좌진 장군은 학교, 사관학교 등을 참 많이 세웠다. 호명학교를 세운 김좌진은 가산을 정리해 학교 운영비를 대고 자기 집을 학교 교사로 제공했다. 그 집 규모가 90여 칸. 만석지기 양반가 자제라는 게 헛말이 아니였다.

 

그런 그가 22세에 투옥된다. 1911년에 북간도에 독립군사관학교를 설립하기 위해 자금을 조달하려다 체포된 것이다. 그는 2년 6개월간 서대문 형무소에서 옥살이를 하였다. 1918년 만주로 망명하여 대종교(大倧敎)에 입교하고 독립투쟁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그는 39명의 민족지도자의 한 사람으로 무오독립선언서에 서명하였다. 이는 1919년 2월 1일 중국 동북부 길림성에서 만주와 러시아지역의 항일 독립운동지도자 39명이 제1차 세계대전 종전에 맞춰 조국독립을 요구한 선언에서 발표된 독립선언서이다.

 

흔히 '무오독립선언서'라고 하며 우리나라 최초의 독립선언서이고 3.1독립만세운동의 기폭제가 되었다. '민족의 길을 밝힌 영웅의 발자취'에서는 독립운동에 몸 바친 투사들의 활동을 소개한다.

 

김좌진은 1919년 북로군정서(北路軍政署) 사령관이 되었다. 이 북로군정서군을 지휘하여 청산리 전투에서 승리를 거둔 것이 1920년 10월이었다. 3관은 한인의 독립운동단체 정비와 항일 투쟁을 주제로 독립단체의 활동을 소개한다. 청산리 전투이후 밀산(密山)에 집결한 10여 개의 독립군 단체가 통합하여 대한독립군단이 결성되었다.

 

총재에 서일(徐一), 부총재에 홍범도(洪範圖)·김좌진(金佐鎭)·조성환(曺成煥), 총사령에 김규식(金奎植), 참모총장에 이장녕(李章寧)이 추대되었다. 이 대한독립군단은 자유시 참변으로 큰 손실을 입었고 1922년 8월 재조직되어 총재에 이범윤(李範允), 총사령관에는 김좌진이 선임되었다.

 

김좌진은 1925년 3월 신민부(新民府)를 창설하고 군사부위원장 및 총사령관이 되었다. 신민부는 교육과 산업을 중시하고 독립 운동을 했다. 김좌진은 또 성동사관학교를 설립하여 인재양성에 힘썼다. 당시 해림에 거주하는 한인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기사가 동아일보 1925년 9월 23일자에 보도됐다.

 

산시에 있던 장군의 묘는 1934년 충남 홍성으로 이장돼 현지에는 가묘만 남아 있다. 김좌진 장군이 대한독립군단 총사령관으로 독립군을 지휘하면서 자택 겸 지휘본부로 사용했던 건물은 흑룡강서 해림시 산시진 도남(道南)촌 장군의 옛 거주지에 1999년 김좌진장군 기념사업회에서 복원했다.

 

이국땅에서 목숨을 걸고 싸우는 장군의 심사를 잘 보여주는 시, 단장지통(斷腸之痛 : 창자가 끊어지는 아픔)이 안내 자료에 실려 있다. "적막한 달밤에 칼머리의 바람은 세찬데/칼끝에 찬 서리가 고국생각을 돋구누나/삼천리 금수강산에 왜놈이 웬 말인가/단장의 아픈 마음 쓰러버릴 길 없구나/(백야 김좌진)"전시장 안 김좌진 장군을 소개하는 곳에서 이 시를 다시 볼 수 있다.

 

4관은 일제의 대륙침략과 한중 양국 민족의 항일 투쟁을 보여준다. 5관은 광복 후 현재의 한중우의활동을 소개한다. 1992년 8월 24일, 한중 수교, 2002년 월드컵, 2008년 북경올림픽 등 날로 깊어지는 한중 관계를 보여준다. 나오려는데 전시장의 글귀가 발길을 멈추게 한다.

 

“대한민국 국민은 님들의 고귀한 희생과 애국애족 정신을 영원히 기억할 것입니다.” 우리나라 청소년들이 이곳에 와서 본다면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이 한층 더해질 것이다.

 

사단법인 백야 김좌진장군 기념사업회는 매년 김좌진 장군의 항일정신을 계승하는 독립군 항일투쟁 유적지 탐방행사를 하고 국내외 대학생으로 구성된 청산리역사대장정대를 모집하여 이곳을 방문한다.

 

역사문화관 밖으로 나오자 어둠이 더욱 짙어졌다. 운동장에는 여전히 아주머니들이 모여 있다. 에어로빅을 끝내고 무용을 하듯 춤을 추며 행진을 한다. 한중우의공원의 숙소에서는 인터넷 와이파이가 국내에서처럼 연결이 잘 됐다. 방이 깨끗하고 아늑했다. 그래서 이곳에서도 한중 양국의 소식도 접하기가 더욱 쉬웠다.

 

앞으로도 계속 한중양국의 우의가 이어지고 김좌진 장군의 얼이 담긴 해림시 “한중우의공원”을 찾는 한중 양국의 국민들이 더 많아지기를 기대해 본다.

/노경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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