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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간직했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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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중방송 작성일17-04-07 22:13 조회9,95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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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원주의 날씨는 구름 한점 없는 높은 푸른 하늘이다.
 
서울에는 벚꽃이 만발하여 가관인데 원주의 벚꽃나무의 꽃망울들은 핑크색으로 바야흐로 꽃필 준비를 하고 있다. 핑크색 꽃망울들은 마치 아기들의 젖꼭지마냥 말랑말랑하여 손으로 조금만 다쳐도 톡 터질 자태다.
 
내가 한창 꽃망울을 보면서 만감이 교차되는데 뒤에서 깔깔 웃는 소리가 들려 왔다. 5살 되어 보이는 한 여자애가 언니 오빠의 손을 잡고 중간에서 토끼처럼 깡충깡충 뛰면서 행복하게 깔깔 웃고 있었다. 그 즐거워하는 여자애의 모습을 보는 순간 나의 어린 시절이 영화필름처럼 돌아갔다.
 
나를 아는 사람들은 모두 무남독녀 윤순자라고 알고 있다...
 
나는 4살에 녕안시 기관유치원에 입학하여 7살까지 다녔고 8살에는 녕안시 조선족초등학교에 입학하여 5학년까지 다녔는데 문화대혁명 풍랑을 겪다보니 5학년을 한해 더 다니게 되였고 녕안시 조선족고등학교에 입학하여 1975년에 졸업하였다.
 
내가 4살 때 기관유치원에 다니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면 4살 때는 외삼촌이 나를 유치원에서 외할머니네 댁에 데려가면 어머님께서 퇴근한 후 외할머니 댁에 들려서 나를 집으로 데려왔다 한다. 내가 5살이 되자 외삼촌이 고등학교 4학년을 다녔기에 대학고시를 준비하느라 학교에서 늦게까지 공부를 해야 함으로 나는 혼자서 유치원과 가까운 아버지께서 출근하시는 인민은행으로 가야 했다.
 
당시 아버지는 녕안시 인민은행 총무주임 직을 맡으면서 금고 키를 관리하였다. 하여 매일 퇴근시간이 늦었다. 나는 은행 농구장에서 혼자 놀다가 어두워지면 은행 안으로 들어가 고객들이 앉는 걸상에서 아버지를 기다리다가 쪽잠이 들 때가 일수였다. 그러는 나를 아버지는 측은하게 생각하시고 깨우지 않고 업고 집으로 왔다.
 
나는 매일 유치원대문을 나설 때마다 "나도 언니 오빠가 있으면 얼마나 좋겠는가?"하는 생각을 백번도 넘어 했다. 하루는 저녁을 먹은 나는 갑자기 아버지 어머니에게 "나는 왜 오빠 언니가 없는가?"고 생떼를 해댔다. 아버지는 눈물이 글썽하여 나를 달렸고 어머니는 돌아앉아 흐느꼈다.
 
어린 나는 겁이 더럭 났다. 아버지 어머니께서 그토록 상심하는 모습을 처음 목격했다. 어린 나는 그 이유는 잘 모르나 나의 생떼 질 때문이라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그 후부터 나는 다시는 형제에 대한 말을 꺼내지 못했다.
 
내가 4학년을 다닐 때 문화대혁명이 터졌다. 녕안시 민정국에 출근하시던 큰아버지는 일본특무라는 누명을 쓰고 투쟁을 맞았다. 반년도 못 지나 아버지의 검은 머리는 흰머리로 변해버렸다. 나는 셋째 큰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홍소병에도 들지 못하게 되여 기분이 엄청 상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나의 딱 친구가 "너를 돌 틈에서 주어왔대. 아이들이 뒤에서 너의 흉을 보고 있어."라고 하는 것이였다. 화가 난 나는 그 친구를 막 꾸지람 했지만 수근 거리는 동창들 보면서 고민에 빠져 들어가기 시작했다. 며칠이 지나지 않아 나는 왕따가 되어버렸다.
 
집에 와서 거울을 들여다보고 가족사진을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나는 부모님을 닮은 데가 없는 것 같았다. 아버지 어머니는 쌍 까풀 눈이 아닌데 나는 큰 쌍 까풀 눈이다." 이때로부터 나는 밥도 잘 안 먹고 웃음소리도 사라졌으며 말도 하기 싫어하였다. 기중시험에서 계속 1~2등 하던 내가 10등을 하였다. 학부모회의를 다녀온 어머니는 아버지와 나란히 앉아 나를 차근차근 따졌다.
 
마침내 나는 그 동안 쌓였던 울음보를 터트리고 말았다. 실토정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날 저녁으로 아버지 어머니는 담임선생님을 찾아갔다. 여러 차례 반회가 있었지만 나에 대한 유언비어는 한시기 웃음꽃이 활짝 핀 나의 얼굴에 사정없는 비 줄기를 쏟아 부었다.
 
당해 엄동설한의 어느 하루 밤. 나는 갑자기 열이 40도로 오르면서 온몸을 사시나무 떨듯이 떨다가 혼수상태에 빠졌다. 아버지는 나를 들춰 업고 우리 집에서 가까운 녕안시 한의원으로 달려갔는데 의사선생님이 빨리 큰 병원으로 가보라고 하자 아버지는 숨 돌릴 사이도 없이 시내 끝에 자리 잡은 녕안시 인민병원으로 달려갔다. 할빈의대병원 교수가 우파로 몰려 녕안시 인민병원에 전근해 왔는데 마침 그날 밤 교수님이 당직이여서 내가 기적적으로 살아났다고 한다.
 
정신을 차린 나를 아버지 어머니는 "살아나서 고맙다. 살아나서 고맙다."하면서 나를 품에 꼭 안고 눈물을 펑펑 쏟았다. 나는 부모님의 극진한 사랑에 목이 메였다. 후에 안 일이지만 아버지는 양말바람으로 엄동설한에 나를 업고 병원으로 달렸고 뒤따르는 어머니는 돈지갑도 휴대하지 않았다 한다.
 
내가 8학년을 다닐 때 지방학생들이 우리학교에 많이 입학하였다. 하여 한 반이였던 8학년은 1, 2, 3반으로 나누어지게 되었다. 나는 8학년 1반에서 공부하였다. 하루는 나와 한 책상을 쓰는 지방에서 온 동창이 나를 보고 "자식 없는 너의 부모님들이 너를 입양헀대."라고 하는 것이였다.
 
"나를 자신들의 목숨처럼 사랑하는 부모님들이 나의 생모가 아니라니?!" 나는 눈앞이 캄캄해졌다. 부모님께 직접 물어 볼 수는 없었다. 어릴 적 내가 형제 말을 꺼냈다가 부모님들이 너무 상심하던 일이 생각났다. 나는 주말에 할아버지 댁을 방문하였다. 나는 할머니로부터 끔직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버지 어머니는 아들 둘 딸 하나를 낳았다 한다. 오빠는 태어나서 닷새 만에, 남동생은 태어나서 석달 만에 모두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한다. 하여 나를 눈에 넣으면 앞을 세라 입에 넣으면 녹을세라 끔찍이 키웠다는 것이였다. 할머니는 "자식을 하나도 아니고 둘이나 가슴에 묻었으니 너의 부모님은 얼마나 상심하겠니?"라고 하면서 아버지 어머니 앞에서 형제에 대한 말을 절대로 꺼내서는 안 된다고 신신 당부하였다.
 
집으로 돌아오는 나는 부모님들이 나를 극진히 사랑하는 그 이유를 뒤늦게야 알게 되었다. 그때로부터 나는 오빠 남동생 몫까지 다해서 부모님께서 가장 좋아하는 공부를 잘해서 출세하여 부모님들을 기쁘게 해드려야 하겠다는 일념을 가지게 되었다. 나는 반급에서 간부로 활약하면서 공부를 잘 하여 학기마다 3호 학생으로 표창 받아 부모님들을 기쁘게 해드렸다.
 
나의 처녀시절도 행복하였다. 꽃다운 21세에 녕안시 텔레비전방송국 조선말방송편집실에서 아나운서로 일하면서 녕안시 조선족들의 사랑과 광심을 듬뿍 받았으며 바느질 재간이 뛰어난 어마님께서 지어주신 예쁜 옷을 입고 출근하면서 집안일은 거의 손대지 않았다."건강하게 출근만 잘하라"는 부모님의 소원이었다. 아버지는 시간만 있으면 나를 앉혀 놓고 인생 공부를 가르치셨다."
 
사람은 이 세상에 태어났으면 건강한 삶에 감사해야 하고 욕심을 부리지 말고 겸손하게 성실하게 착한 인생을 살아야 한다. 사람들이 너의 이름 세자를 부르면 참 좋은 사람입니다. 이 한마디를 위해 한생을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 이 말씀은 나의 일생에서 좌우명으로 항상 나를 채찍질 하였다.
 
2009년과 2010년에 선후로 큰 산처럼 의지해왔던 어머니, 아버지는 영영 나의 곁을 떠나셨다.
 
2012년에 정년퇴직한 나는 아버지고향인 한국으로 달려왔다.
 
모국이 나를 포옹해주었고 한민족신문과 KCNTV한중방송이 나를 포옹해 주었으며 아나운서 삼총사가 나를 포옹해주었다.
 
그리고 한중방송가족여러분들이 나를 포옹해 주었다.
 
무남독녀가 아닌 부모님이 사랑하는 독녀로서 한중방송가족여러분들과 형제자매처럼 즐겁게 행복한 삶을 즐기니 나의 황혼에도 벚꽃이 만발하였다!
/윤순자 기자
[이 게시물은 한중방송 님에 의해 2017-04-08 09:59:21 메인뉴스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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