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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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중방송 작성일18-04-16 09:01 조회6,717회 댓글0건본문
우리가 식생활에서 빠지지 않고 먹는 것 중의 하나가 두부인 것 같다.
두부는 콩 제품 가운데 가장 대중적인 가공식품으로서 양질의 식물성 단백질이 풍부한 식품이다. 또 요리하기가 쉬우므로 빠른 시간 내에 다양한 반찬을 만들 수 있어서 좋고 다이어트에도 도움이 되기에 우리가족은 평소에도 즐겨서 먹는다.
오늘 점심메뉴로 마라두부(麻辣豆腐)를 했는데 식사를 하면서 갑자기 외할머니 생각이 나서 울컥했다.
저의 외할머니께서는 한평생을 두부 만드시는 일을 하셨는데 70세 지나서도 400여공씩 하시면서 사계절을 쉬는 날도 없이 새벽부터 일하셨다. 그 두부가 맛도 좋다고 입소문이 나서 동네에서는 물론 10여리도 넘는 산속에 주둔해있던 군인부대에서도 매일 차로 실어가군 했었다.
지금은 전기맷돌이나 믹서기로 불린 콩을 갈아서 두부를 만들지만 외할머니네는 당나귀가 큰 맷돌을 몸에 걸고 콩을 갈아서 두부를 만드셨다. 나는 어렸을 때 외사촌들과 함께 재미로 당나귀 구경을 하러 두부 방으로 갔었다.
당나귀는 두부 방에 들어서면 보자기로 두 눈을 막고 무거운 맷돌을 몸에 끌고 빙빙 돌면서 잘도 걸었지만 구경하는 우리들은 몹시 어지러웠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외할머니가 한쪽얼굴이 모래가 박힌 듯 갈겨 있는 것을 봤다. 외할머니께 물어봤더니 당나귀도 맷돌질에 지쳤었는지 일 마치고 외양간으로 가는 도중에 큰길에서 뒹굴면서 생떼를 썼다고 한다. 연약한 여자들이 감당하기엔 너무 버거운 일이였다. 고삐를 놓으면 덜 다칠 수도 있었지만 그러면 여러 사람들이 다칠 수 있다고 고삐를 꽉 잡고 끌려서 당나귀와 같이 큰길바닥에서 뒹굴었다고 하셨다.
그때부터 나는 당나귀가 떼를 쓰기 시작하면 무섭다는 것을 알게 되였는데 지금 그 일을 생각하니 마음이 몹시 아프다. 외할머니께서는 외고집인 당나귀와 매일 일하시느라 얼마나 힘드셨을까?
우리 형제들과 외사촌형제들이 만나면 유난히 맛있던 외할머니의 두부 이야기를 하면서 좋은 추억으로만 여겼는데 오늘은 웬지 마음이 많이 아프다.
가슴이 쓰리게 아파난다...
외할머니께서는 추우나 더우나 새벽길을 나서면서 일하셨으니 얼마나 아프셨으며 쉬고 싶었을까?
나도 이젠 할머니가 되고 보니 어머니와 외할머니의 마음이 이해가 되고 돌아가신 외할머니 생각이 많이 난다.
환갑나이인 나도 몸이 아플 때가 많은데 70세 지나서도 습한 두부 방에서 일하시던 외할머니께서 몸이 아프실 때는 얼마나 쉬고 싶으셨을까? 그런데 외할머니를 대신해서 두부를 만들 사람이 없다보니 쉬지도 못하셨다고 한다. 그 당시는 먹을거리가 적고 고기도 적은 시절이여서 두부가 하루라도 없으면 부대의 군인들과 마을 사람들께는 막막했을 것이다.
저는 흑룡강성 목릉시의 "천안하"라는 산간 마을에서 태여났다. 천안하는 목릉시에서 30여리길인데 버스가 산속으로 한 시간을 넘게 달린 후에 매우 가파로운 S자로 꼬불꼬불한 도로를 따라 내려와서 하늘아래 첫 동네였는데 한족과 조선족이 모여서 사는 자그마한 동네였다.
나는 그 곳에서 살다가 3학년 때에 목릉시로 이사를 했었는데 외할머니네 집으로 가는 버스는 며칠에 한 번씩만 운행을 했었다. 때문에 방학이면 외할머니네 집으로 갈 때면 외할머니 덕분에 군용차를 탈 수 있어서 어린나이에 외할머니가 참 자랑스러웠었다.
마을에서 버스나 차들이 정차하게 되면 숱한 애들이 자신의 친척이 오는 것처럼 마중을 나와서 누구네 집에 손님이 오는 걸 서로 알고 있었다. 그리고 시골 인심은 참 좋았다.
방학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갈 때면 외가집 덕분에 이집 저집에서 쌀이며 콩을 주셔서 많이 받아왔었다. 지금 생각해도 너무 고맙고 감사한 일이다.
외할머니께서 바쁘신 일과에도 책을 꼭 읽으시고 외우시기를 즐기셨으며 기억력 또한 매우 좋으셨는데 당시에 유행되던 아니 꼭 읽어야만 했던 “모주석의 로 3편”을 줄줄 잘도 외우셨고 시 대표로 현성에 강용(讲用)하러 다니시군 하였으며 연말엔 또 노동모범으로회의에 참가하시군 했었다.
84세에 돌아가셨지만 그 연세에도 피부가 아주 고우셨다. 아마도 평시에 늘 두부를 드신 덕분인 것 같다.
나는 80세에도 책을 놓지 않으시고 부지런하시던 외할머니에 대한 좋은 추억을 간직하면서 많이 배우고 삶의 질을 더 높이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아마도 외할머니처럼 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지금은 외할머니를 모델로 한민족신문, KCNTV한중방송과 인연을 맺고 글도 쓰고 방송도 하면서 남은여생을 즐겁고도 보람 있게 살려고 노력한다.
/이천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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