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지 못 할 옆집 이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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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중방송 작성일18-11-08 09:25 조회4,939회 댓글0건본문
“찌르륵, 찌르륵” 귀뚜라미 우는 올 가을 마지막 절기인 상강의 날, 옆집 “이모님”은 이사를 가셨다.
그날 나는 일 때문에 저녁 늦게 귀가했는데 “옆집 할머님이 짐 싣고 떠나시면서 어머니 찾으셨어요.” 아들이 알려 주었다.
“아뿔싸~” 한달전, 이모님이 11월달에 이사 갈 거라고 했었는데 하필 내가 집에 없는 날에 앞당겨 떠나셨을까?
나는 화분들로 가득하던 복도 안쪽이 텅 빈 걸 보면서 허전함을 금치 못했다.
2년전 어느날, 아침밥을 지으려고 주방에 나갔는데 옆집에서 탤레비죤 소리가 크게 울려왔다. 문을 열고 나갔더니 80세 중반쯤 돼 보이는 분이 복도 안쪽에서 잔뜩 진열해 놓은 화분들을 정리하고 있었는데 활짝 열어 놓은 문으로 텔레비죤 소리가 울려 나오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나의 인사말에 고개를 돌린 그는 “잉~ 나 어제 이사왔는디~이웃이구먼 잉~” 짙은 지방 사투리 말씨가 신기하고 귀맛좋게 들려왔다.
“아들이 임시로 여기 방을 얻어 줬는디---- ” 첫 만남인데도 그는 워낙 알고 지낸 사이마냥 스스럼없이 대화를 이어가셨다. 나는 어떻게 호칭할까 고민하다가 “이모님은 꽃을 좋아하시나 봐요. 저의 엄마도 꽃을 엄청 좋아하세요.” 라고 말을 이었다. “그랑끌랑~ 나가 꽃을 엄청 좋아한당께----아줌만 중국 으디여?” 이모님은 나의 말투에서 중국 동포란걸 알아 맞추고 물으셨다. . “중국 하얼빈에서 왔어요.” “나도 중국 아들네 집에 몇년 있었는디----” 이모님은 계속해서 큰 아들은 택시기사이고 둘째 아들은 중국 청도에서 사업하고 있는데 둘째 며느리가 당지 중국인이라고 알려 주셨다.
첫 만남 인사에서 우리는 이외로 많은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내가 일을 다니다보니 우리는 매일과 같이 만나진 못하지만 이모님은 묵묵히 나를 돌봐 주고 계셨다.
한번은 한 고향 언니가 들나물을 한 가방 가져다 주길래 데쳐서 건조시키려고 집에 있는 자그마한 소쿠리에 담아 실외기 위에다 놓고는 바쁘게 출근갔다. 퇴근해서 돌아와 보니 나물이 큰 소쿠리 두개에 골고루 펴진 채 하나는 실외기 위에, 하나는 이모님네 안쪽 복도에서 바짝 말라가고 있었다. 이모님이 화분에 물 주러 나오셨다가 건조나물 그릇이 너무 작은 걸 보고 다시 들어가 큰 소쿠리 두개를 가져다 옮겨 담은 것이었다.
다가구주택 1층에 세방으로 살고 있는 나와 이모님은 한 복도를 쓰고 있는데 봉페된 복도가 아니어서 비바람이 세게 몰아칠 때에는 벽쪽까지 비방울이 튕겼다. 한번은 이불 빨래를 해서 복도에다 널어 놓고 일 갔는데 돌아와 보니 이불 빨래가 안 보였다.
이모님집을 노크했더니 아니나다를가 낮에 소낙비가 쏟아질 듯 먹장구름이 몰려 오길래 이모님이 빨래를 걷어서 집안에다 펴 놓고 말렸다는 것이다. 반듯하게 개여 놓은 이불 빨래를 건네받는 순간, 나는 하늘 나라로 떠나신 친정 엄마를 보는 느낌에 눈시울이 붉어졌다.
이모님이 오신후부터는 주문한 택배가 도착해도 내가 없으면 이모님이 챙겨 주시기에 걱정이 없었다.
오는 정이 있으면 가는 정도 있기 마련이다. 나는 차츰 이모님을 많이 생각하게 되었다. 한번은 중국식 물만두를 빚다가 이모님이 중국 아들네 집에서 몇년 계셨다고 하신 말씀이 생각나 한 대접 삶아서 가져다 드렸더니 아주 맛있게 드시는 것이었다. 그 후부터는 물만두를 빚을 때마다 이모님 몫까지 꼭꼭 챙겨 드렸다.
그리고 복도 청소는 이모님이 손 댈세라 내가 도맡아했는데 청소 할 때마다 이모님네 안쪽 끝까지 화분들을 옮겨 놓으면서 물을 뿌려가며 철저하게 하군 했다.
“중국 사람들은 목이버섯을 많이 먹더꼬만 잉~ ” 어느 날. 이모님과 대화 중 나온 얘기인데 이모님도 즐겨 드셨다고 하셨다.
마침 중국에서 들고 온 목이버섯이 집에 있길래 나는 새콤달콤하게 중국식 목이버섯 무침반찬을 해서 이모님께 가져다 드렸다.
“고맙고만~잉, 감사혀” 나는 이모님의 칭찬이 좋았다. 마치도 친정 엄마한테서 듣는 칭찬마냥 포근하게 느껴졌다.
그러던 올 가을 어느 날, 이모님이 나를 부르셨다. “전화가 뭣땀시 안 된당께---” 이모님은 테블위에 있는 종이쪽지를 건네 주었다. 내가 들여다보니 번호 하나가 4로 썼다가 7로 고친 흔적이 있는데 자세히 들여다 보지 않으면 잘 알리지 않았다. 나는 휴대폰을 꺼내서 새로 고쳐 놓은 번호대로 눌렀더니 전화가 통했다.
통화를 끝내자 이모님은 나에게 아들이 하남시에다 집을 사서 이제 곧 이사를 가게 된다는 뜻밖의 소식을 알려 주셨다. 나는 연세 많은 이모님이 아들과 같이 한 집에 살게 되어서 기쁘다고 축하해 드렸지만 2년여 동안 모녀처럼 의지하고 지내던 이모님이 떠나신다니 못내 서운하고 허전하기 그지 없었다.
나는 이모님이 떠나시기 전에 식사 한끼 대접하리라 맘먹었다..그런데 예상과 달리 미리 이사 가실 줄이야!
나는 집에서 나와 이모님이 계시던 방문을 노크했다. “똑똑똑~”.
“찌르륵~찌르륵~” 마당 앞 숲속에서 늦가을 귀뚜라미 소리만 서글프게 들려 올 뿐 방안은 이왕과 달리 너무나 고요했다.
“후~” 내가 아쉽게 되돌아 서는데 홀연 이모님이 늘 나한테 하시던 말씀이 귀전에서 메아리 쳤다. “아프지 말고 돈 많~이 벌랑께~~”
/이화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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