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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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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중방송 작성일19-02-01 01:07 조회4,32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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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철에 들어선 날씨는 여간 춥지 않아서 밖에 나서자마자 저도 모르게 몸이 움츠러 든다. 엄마 집과 멀지는 않지만 높은 층이라는 이유로 자주 못 가게 되다가 오늘은 꼭 가야할 일이 있어서 발길을 옮겼다.
 
내가 간다는 전화를 받으신 엄마가 벌써부터 아래층에서 기다리고 계셨다.
 
우리는 함께 엄마가 사는 5층으로 오르기 시작했다. 엄마는 앞에서 나는 뒤에서…
 
금방 2층으로 올랐을 때 가쁜 숨을 몰아쉬던 엄마가 내 앞에 등을 내밀면서 어서 업히라고 하셨다. 86세인 엄마는 지난해봄에 심장병으로 해서 열흘 동안 입원치료를 받으신 후부터 매일 약을 달고 있는 상황이다.
 
젊은 사람도 5층 층계를 오를 때면 숨이 차서 헐떡거리는데 년세가 고령이고 심장병인 엄마가 숨이 찬 것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엄마자신도 층계를 오르시기 무척 숨이 찬데 날 업으려는 엄마를 보면서 나는 목구멍에서 그 무엇이 울컥하고 올라오더니 인차 눈시울이 젖어났다. 내가 여지껏 엄마 등에 얼마나 업혔댔는데...그렇게 많이 업어주시고도 싫증이 나지 않아서 육십이 넘은 이 딸을 아직도 업고싶어하시는 엄마!
 
뒤에서 엄마 뒤를 수걱수걱 올라가는 나는 끝내 눈물을 떨구고야 말았다. 휘여든 엄마 등을 바라보노라니 아리숭한 꿈 한 자락이 살푸시 눈 감고 내 마음에 자리했다.
 
내가 네살때의 겨울의 어느 날 나는 “소아마비증”으로 하루밤새에 일어서지도 못하게 되자 엄마는 매일 날 업고 병원으로 오르내리셨다. 이렇게 몇 달 동안 손까지 얼구며 업고 병원으로 오가시며 치료시켜서야 겨우 일어설 수 있게 되였단다.
 
내가 학교에 입학하자 4학년까지 엄마는 비가 오는 날이거나 추운 겨울이면 날 업고 학교로 오가셨는데 지금처럼 택시나 교통공구라도 있었더라면 몰라도 그때는 기껏해야 지나가는 소수레나 탈수 있는 세월이였다.
 
3햑년 때의 어느 비가 창살처럼 내리 꼰지는 날 하학한 내가 학교 대문 앞에 우두커니 서 있는데 엄마가 학교에 오셨다. 내가 엄마 등에 업히자 엄마는 한손으로 등에 업힌 날 붙잡고 다른 한손으로는 우산을 받쳐 드셨는데 때론 비가 막 뿌리워 우산 안으로 들어오기도 했다. 그럴 때면 엄마는 나보고 얼굴을 엄마 등에 파묻으라고 하셨다. 나는 얼굴을 엄마의 등에 파묻었다. 순간 엄마의 등에서 고요한 물처럼 은은한 향이 풍겨나왔다.
 
집에 도착해서 보니 내 얼굴은 조금도 젖지 않았지만 엄마의 배꽃같이 하얀 얼굴에서 비물이 흘러내리고 있었고 옷은 몽땅 푹 젖었다. 하지만 엄마는 얼굴의 비 물을 닦을 념도, 옷을 갈아입을 념도 하지 않고 먼저 내 얼굴을 만지셨다. 엄마의 등으로 해서 얼굴이 젖지 않은 것을 보신 엄마는 만족스런 웃음을 지으셨다. 하지만 그날 저녁 엄마는 연신 재채기를 하시더니 감기약까지 드시더니 인차 잠자리에 누웠다.
 
찬바람 몰아치는 겨울날 엄마의 등에 얼굴 파묻으면 대뜸 따스해났다. 엄마의 등은 정말 난로였고 바람막이였고 나의 큰 보호산이였다.
 
마의 등에는 또한 힘든 인생살이가 적혀있다. 자식 여섯을 등으로 업어 키워내셨고 봄이면 산에 가서 산나물을 등에 지고 돌아오셨고 여름이면 자식을 업고 강에서 빨래하셨고 가을이면 이삭주이, 산열매들을 등에 지고 집에 오셨다. 엄마 등에 업혀 우리 집에 까지 오게 된 감사이삭, 벼이삭, 옥수수 이삭으로 해서 살림에 큰 보탬이 되였다.
 
매번마다 맛나게 먹는 우리를 보시며 엄마는 가을 해볕에 그을려 가무잡잡해진 얼굴에서 흘러내리는 땀을 훔치며 미소를 지으셨다. 그때 철부지였던 우리들은 자식들을 굶기지 않겠다고 등으로 그 무거운 이삭들과 산열매들을 지고 다니시는 것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는 것 같지 않다.
 
어느 한번은 감자이삭을 주으러 뒤 산으로 가신 엄마가 세시간 넘어서야 돌아 오셨는데 마당에 들어서기 바쁘게 등에 업은 감자이삭 주머니를 마당에 확 메치고는 저쪽에 가서 나지막히 우시는 것이였다. 자식들에게 눈물 안 보이려고 구석진 곳에서 삶의 설음을 토해 내시였다.
 
동생들은 영문을 몰라 서로 쳐다보고 있었지만 맏이인 나는 알수 있었다.
 
그날 엄마는 지나가는 사람의 도움을 받아서 이삭주머니를 등에 업긴 했지만 집으로 돌아오시는 길에 한번이라도 쉬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나가는 사람이 없으면 내려놓은 이삭 주머니를 다시 등에 멜수 없기 때문에 엄마는 허리를 마구 내리 누르는 무게로해서 아픔을 감내하시면서 집까지 겨우 오셨을 것이다.
 
그날 저녁 자식들이 그 감자를 삶아서 맛나게 먹는걸 보시는 엄마의 얼굴에는 웃음이 가실 줄 몰랐다. 언제 봐도 불평의 목록 쏟지 않고 감사의 일람표만 공개하시는 엄마는 늘 이런 이야기 하셨다.
 
“내 좀 힘들긴 했지만 그러나 너희들 잘 먹어주고 잘 커 줘서 감사해”
 
자식들의 기쁨을 등으로 바꿔온 엄마의 그 모성애는 오늘도 잊혀지지 않는 눈물겨운 이야기다. 엄마의 표정은 언제나 기쁨으로 군불 지핀 듯 얼굴색이 화사한 봄날이였다.
 
그때 엄마는 아무리 힘들어도 모든걸 견뎌내시는 그속에서 무럭무럭 커 가는 자식들로해서 심령이 세척되셨을 것이다.
 
가난했고 힘들었던 삶의 무게는 엄마의 등을 무던히도 짓눌렀고 엄마한테 쉴틈도 주지 않았다. 하지만 엄마는 어려움이 가슴에 말라붙을 지경이였지만 아침 이슬같이 반짝이는 아름다운 희망으로 어두운 가슴에 화사한 정원을 가꾸셨다. 엄마는 등으로 일년내내 우리집의 곤혹을 무마해주셨고 온 집안에 웃음꽃을 피우셨고 희망의 노래를 엮으셨고 가난을 한뜸 한뜸씩 기워 내셨다.
 
엄마의 등에서 나는 동심의 향기를 찾아냈고 엄마의 등에서 동심의 꿈을 설계했고 세상을 알기도 했고 또한 엄마의 등에서 도란도란 오가는 이야기는 하나의 아롱진 무지개 꿈이기도 했다. 뿐만아니라 때론 장애란 설음을 엄마의 등에 엎디여 토해냈고 얼룩진 운명을 적어놓기도했다. 엄마의 등은 이렇게 한권의 내 인생의 책이였고 나만의 작은 세상이기도 했다.
 
차차 나이들면서 엄마의 등과 멀리하게 되였지만 그러나 엄마의 등은 조금씩 조금씩 휘여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엄마의 그 휘여든 등마저 쉴틈 주지 않았다.
 
스무네살 먹던해 중병에 걸린 내가 향진 병원에서 치료하다가 효과가 없어서 연변병원에 갈때 나는 엄마 등에 업히워 문진에 갔고 서른 여덟살때 다리교정수술할때도 엉마 등에 업히워 병원의 층계에서 오르내렸고 마흔두살때 임신중절수술때도 난 엄마 등에 업히워서 수술실에 들어갔다.
 
어디 이뿐이랴. 내가 서른 네살때 어느한번 점심시간에 엄마 집에 갔을때 엄마가 창고에서 물건 정리하고 있기에 나도 두 팔 거두고 나섰다. 한참 하는데 난데없는 바람이 훅 불면서 창고 지붕의 널판자를 날려보냈다. 그러면서 기와장이 한장이 창고안에 떨어졌는데 내 머리위로 내려오고 있는걸 어느새 보아 낸 엄마가 날 확 밀쳤다. 난 무사했지만 그 기와장이 엄마의 등에 떨어졌다. 그후로 엄마는 며칠간 허리를 잘 쓰지 못하셨지만 그래도 날 보실때면 얼굴에 해님이 머물고 있었다.
 
아, 난 이렇게도 엄마의 등을 무던히도 힘들게 만들었다.
그런데 오늘까지도 날 그냥 업으시려하시는 엄마! 휘여든 엄마의 등을 볼때면 내가 엄마의 등을 휘여 놓은것 같다. 엄마의 등에는 엄마가 나에게 기울이신 사랑 이야기가 몽땅 기록되여 있다. 엄마는 그토록 힘들어도 삶속에서 무지개를 찾기 위해 먼저 비를 맞으면서 견디는 련습을 많이 했으리라.
 
엄마는 어느 순간이라도 날 내려 놓으려하지 않는다. 인제는 힘이 없으니 마음의 등으로 업으려 하신다.
 
홀로 사는 엄마는 재작년까지 물통을 등에 업고 사흘에 한번씩 샘터로 다니셨다. 구부정한 허리로 물통을 업고 다니는것이 안쓰러워 내가 달마다 물값을 대여 드릴테니까 물을 사면 되는데 괜히 자식이 팔릴짓이라고 책망 한적이 한두번 아니였건만 엄마는 엄마로서의 쟁쟁한 대답이 있었다. 뭐 운동삼아 물을 긷는다고. 늙었다고 성쌓고 남은 돌이 아니라듯한 모습을 보이고 싶어서란다.
 
엄마는 이렇게 삶속에서 즐거움도 찾으실뿐만 아니라 고령에도 자식한테는 무언가를 해주지는 못하지만 자식한테 부담이 안 되려는 그런 마음을 간직하고 있었다.
 
겹겹이 아픔을 덧칠한 몸으로 층계 란간을 잡으시면서 한걸음 한걸음 올라가시는 엄마의 등을 바라 보노라니 세월은 엄마 등을 왜소하게 만들었지만 내 마음에 자리잡은 엄마 등은 오늘도 옛 모습이다. 여전히 따스하고 포근하고...
/박영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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