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의 소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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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중방송 작성일19-01-17 22:21 조회4,666회 댓글0건본문
아침에 일어나 베란다에 나갔더니 군자란이 피였습니다. 전날까지만 해도 입을 꼭 다문 듯한 봉오리였는데 하루밤새에 이 꽃을 피우려고 간밤에 모지름을 썼겠지요. 하나의 소망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렇게 일초일목도 다 소망이 있을러니 인간한테는 더 큰, 더 아름다운 소망이 있을 겁니다.
잘 살아보겠다는 소망, 자식농사를 잘 하겠다는 소망, 매일마다 건강하게 살겠다는 소망, 그 외에도 가수요, 화가요, 작가요 등등. 그러나 나의 가장 큰 소망은 바로 둘째 시형한테 절 올리고 싶은 소망입니다.
운명의 신은 나를 어릴 때부터 지체장애인대오에 줄서게 했습니다. 비록 동경을 잃고 인생의 향기를 도적맞인 신세였지만 그러나 어느때인가는 환한 빛이 찾아오리라는 그런 야무진 소망을 간직하고 살아왔습니다.
부모님과 선생님의 사랑으로 고중까지 마치고 시집갈 나이가 되자 시집가게 되였습니다.
결혼날 부모님 앞에 절 할때 쪼크리고 앉기 힘들었지만 그런대로 절 올렸습니다.
그런데 그 후 나는 소아마비 교정수술을 해서 효과는 컸지만 쪼크리고 앉기 아주 힘 들었습니다.
그래서 절하는 장소라면 가슴이 철렁대게 하는 장소였습니다.
몇 년 전 큰 시형의 제사 때였습니다. 그날 저녁에 시집친척들이 많이 모였는데 우리부부가 제사상에 술 붓고 절 올릴 차례가 되였습니다. 남편은 척하고 나섰는데 나는 나설 수가 없었습니다. 일어설 수도 그대로 앉아 있을 수도 없는 난처한 순간이였습니다. 내 마음을 읽은 남편이 난처한 국면을 조금 돌려주었습니다.
“기독교인은 절하지 않는다니까 당신은 그대로 앉아 있소.”
기독교인이 아닌 줄 번연히 아는 남편이 이렇게 슬쩍 돌려 부쳤습니다.
비록 납득이 안 되는 핑계였지만 그 시각 따라 남편이 더없이 고마웠습니다.
그리고 아내가 있으면서도 혼자서 외롭게 절하는 남편이 안쓰러웠습니다.
곁에 있던 둘째 시형은 낮은 탄식을 했습니다.
그날 나는 잘못을 저지른 사람처럼 얼굴이 자꾸 달아오름을 어쩔 수 없었습니다.
(진작 가지나 말았을걸.)
그날 저녁 잠자리에 누웠지만 창문으로 하늘 바라보고 별 바라보면서 이런 후회로 한참이나 잠 못 이루었습니다.
그 후 또 절을 할 일이 생겼습니다. 바로 둘째 시형이 환갑을 쇠게 되였던 것입니다.
며칠 전부터 나의 얼굴에는 그늘이 잔뜩 졌습니다. 아니 마음속에까지 그늘이 건너갔습니다.
그래서 거울 앞에서 절 연습을 해봤습니다. 그런데 쪼크리고 앉으려하니 두 발뒤축이 건뜩 우로 올라가다보니 하마 트면 뒤로 벌렁 넘어질 번 했습니다.
( 차라리 그날 큰 행사로 해서 외지로 간다면 좋겠는데)
심신이 얼마나 지쳤는지 이런 생각까지 했습니다.
환갑날 멋지게 장식된 호텔에 들어서니 내가 앉는 상에 그날 프로그램이 눈에 띄였습니다. 심심풀이삼아 내리훑던 내 눈에 이슬이 달랑댔습니다.
그 프로그램에는 그날 절하는 문제를 두고 언급한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아들 며느리 외에 형제와 모든 친척들은 절 올리는 걸 삼간다는 것이였습니다.
분명이 나의 처지를 두고 이렇게 결정한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친척들은 아무리 어째도 절은 올려야 한다고 한결 같이 말하였습니다.
“이런 행사에 절 안 받고 언제 받는 다우?”
“옛날부터 정해진 례법인데”
먼저 아들며느리가 절 올린후 우리부부 차례였습니다.
“절 못해서 어쩌나요?”
애타 움이 가득 찬 내 눈길을 바라보던 남편이 푸짐 좋게 대꾸 했습니다.
“이미 결정하지 않았소? 절 하는걸 취소한다고. 그러니 경례나 하기오”
남편과 함께 머리를 숙이며 인사를 하는 나는 속으로 이렇게 되뇌였습니다.
“아주버님 큰 절 올리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그날 물론 다른 친척들은 모두 곱게 절을 올렸습니다.
그날 행사가 끝나자 큰 짐을 내린 듯 홀가분했으나 그러나 내 마음에는 둘째 시형한테 절을 못 올린 게 큰 유감으로 남아있었습니다.
둘째 시형은 여직껏 우리부부에 대해서 마치 부모마냥 여러모로 많이 걱정해주시고 아껴주셨습니다. 아파트 한 채를 주시고도 모자라 살림이 넉넉지 못한 우리에게 살림에 보태 쓰라고 돈도 주시였고 친척집 좋은 일 궂은 일 때면 우리를 대신해서 부조 돈도 내주신적이 한 두번이 아닌 그런 하늘아래 흔치않은 자상한 형제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와 같이 고마운 시형한테 환갑날에 큰 절이라도 올려서 감사의 마음을 표달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그 소망을 이루지 못해 내 마음 무겁기만 했습니다.
재작년에 내가 다리골절로 누워있을 떄도 시형께서는 회복에 좋다는 약들을 사 주셨습니다.
석달 후의 어느 날 내가 밖에서 걷는걸 보시게 된 시형께서는 그날 저녁으로 시 조카들과 우리부부를 집에다 불렀습니다. 산해진미로 갖추어진 술상에 마주 앉자 시형께서 말씀 올렸습니다.
“오늘 제수가 걷는걸 보니 너무도 기뻐서 축하하고 싶소. 비록 요즘 아파서 술 마시지 말아야하지만 그러나 오늘은 난 술 마시겠소”
그리고는 술 한잔 제꺽 굽 내셨습니다.
순간 나는 코마루가 쩡해났습니다. 친형제들도 이렇게까지는 못했는데….
그때 시형께서는 열흘 전부터 허리 병이 도져서 바로 앉기도 힘든 상황이였습니다. 벽에 기대여 술상에 마주 앉으신 자세였지만 얼굴에 환한 미소를 지으시는 그 모습은 너무도 자애롭기만 했습니다. 그리고 얼마나 기쁘셨으면 의사가 마시지 말라는 술까지 마셨겠습니까? 그 감동 오늘까지도 아니 언제까지도 그냥 내 마음에서 고배칠겁니다.
아주버님. 내가 다시 태어나면 그때에 이승에서 못 올린 절 곱게곱게 올리겠습니다.
이것이 내 마음에 간직한 하나의 간절한 소망입니다.
/중국길림성 안도현 박영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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