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엽을 밟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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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중방송 작성일19-02-01 01:02 조회4,071회 댓글0건본문
산책을 나갔다가 넘어져 골반 뼈를 상한 남편 시중을 드는 것이 참 힘든 일이였다. 하루 세끼는 물론 약 챙겨주고 혈당 재고 주사 놔주고 대소변 받아내고 하여간 매일 팽이처럼 뱅뱅 돌아치는 것이 일상이 돼 버렸다.
그런데다가 잔소리는~ 한번해도 될 걸 서너번씩 곱씹고.. 때론 힘들어서 조금 쉬려고 하면 “요거요, 조거요” 하고 불러대며 엄청 스트레스를 준다.
몇십년 전에 인의 소개로 만나 결혼해서 반년이 돼서부터 이런 병 저런 병 잔병을 앓기 시작하다가 후에는 하루가 멀다하게 술에 푹 빠져 살며 애 먹이다가 늙으막에 술 담배 다 끓으니까 인제부터 내 인생 제대로 살아 보려나 했는데 웬걸, 당뇨병이요 뇌경색이요 하다가 이번에는 뼈까지 다쳐가지고...
휴~.그러던 중 어느 날, 남편이 또 불러대며 잔소리를 시작하자 화가 치민 나는 남편이 부르건 말건 뒤 전으로 하고 무작정 "쾅"하고 문을 닫고 나와서는 우울한 심정으로 터벅터벅 목적지 없이 걷고 걸었다.
걷고 걷다보니 어느새 이룡산 밑에 와 있었다. "휴, 이곳에 와 본지도 어언간 일년반이 됐구나". 나는 혼자말로 중얼거리며 그냥 앞으로 걸었다.
일 년 반전의 어느 날, 노년대학 노래교실에서 들놀이를 나온 적이 있었는데 그날은 무척 즐거운 날이였다. 다 륙십이 넘은 노인들이지만 들고 온 도시락들을 꺼내놓고 서로서로 권하면서 맛있게 음식들을 드시고 나서는 춤과 노래로 자기들만의 장끼를 자랑하며 실컷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나는 즐거웠던 그날을 생각하면서 가파로운 비탈길을 톺아 올라 산 정상으로 향했다.
산 정상에 올라서서 한눈에 안겨오는 아름다운 명월구 시내를 한눈에 바라보며 "야호"하고 소리를 한껏 외치고 나니 마음의 열기가 뿜어져 나오면서 좀 편해지는 것 같았다.
나는 한숨을 "후ㅡ" 내쉬고는 계속하여 앞으로 걸어서 들놀이 놀던 장소에 다달은 후 그네위에 앉아서 그 열기 띄고 즐거웠던 화면을 눈앞에 그려보며 쉬였다가 일어나서 계속 앞으로 걸었다. 걷고 걷다가 낙엽이 가득 널린 낙엽 길을 걷게 되였는데 "바삭, 바삭" 발 밑에서 낙엽이 밟히는 소리가 귀를 간지럽히며 귀맛 좋게 들리다가 조금 후에는 자신의 팔자타령을 하게 되였다.
너무 힘들게만 살아왔던 혼인이 억울하고 괴로워서 나는 무고한 낙엽한테 성풀이를 하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두발을 한껏 높이 들었다 놨다 하면서 스트레스를 풀었다. 그러던 중 그 통쾌하게 들려오던 낙엽 밟는 소리가 점점 남편의 신음소리로 들리다가 나중에는 비명 소리로 들려오며 가슴이 섬찍해 났다.
그 사람도 아프고 싶어서 아픈 것도 아니고 의외의 사고였는데, 믿을 사람이라곤 나 밖에 없으니까 나하고 잔소리 하는 것이 아닐까!
황급히 정신을 차린 나는 가던 길을 되돌아 산에서 내려와서 택시를 타고 곧바로 집으로 향했다. 아픈 남편이 미워서 스트레스 풀러 밖에 나갔던 나 자신의 행위에 자책감을 느끼며 급급히 집 문에 들어서는데 소변용기를 쥐려고 안깐 힘을 쓰는 남편의 모습이 한눈에 안겨왔다.
나는 얼른 신을 벗고 한달음에 달려가 남편 손에 소변용기를 쥐여 주고는 미안하고 송구스러운 마음을 감추느라 얼른 돌아섰다. 그리고 남편에 대해 측은한 생각이 들면서 코끝이 찡해났다.
삼십년 넘게 함께 살아온 동반자, 미울 때도 많았고 스트레스도 많이 준 남편이였지만 그래도 회로애락을 함께 해온 긴 세월의 동반자, 남편의 존재가 집안의 버팀목으로 한가정이 지켜지고 있는 게 아닌가? 누군들 아플 때가 없으랴? 어느 가정에 매일 좋은 일만 있으랴? 힘들고 지친 삶은 부부가 함께 감당해야 그 무게가 가볍지 않을까? 나는 생각할수록 미안해지면서 고개가 숙여졌다.
늦가을 산행 길을 다녀온 후 나는 굳게 다짐했다. 인생의 황혼 길에 들어선 우리 부부가 인제 살면 얼마나 더 살랴! 살아있는 동안 서로 아끼고 사랑하며 남은여생을 즐겁고 행복하게 보내리라.
나는 폰에서 음악 듣고 싶어져 “있을 때 잘해”란 음악을 찾았다.
인차 우리 집에 노래 소리가 울려 퍼졌다.
있을 때 잘해 후회하지 말고
있을 때 잘해 흔들리지 말고
......
그래 있을 때 잘해야겠다.
나는 다지고, 다지고 또 다지고 있었다.
/안도현 김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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