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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극이냐, 비극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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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중방송 작성일20-10-08 11:22 조회2,18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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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년 설날, 오전 10시에 나는 대학입학 통지서를 받았다.
 
몽둥이에 뒤통수를 맞은 듯 어안이 벙벙해났다. 이걸 어떻게 한담? 10년 전에 이걸 받았으면 얼마나 기뻤을까?! ...
 
1966년 3월, 고중 2학년 때 나는 당해 대학입시참가신청서를 학교 교도처에 제출하였다. 이 신청서는 현 교육국을 경유해 성 교육청에 전달됐다. 그해 5월에 고중2학년 응시 신청자 56명이 모이고시를 치렀는데 5명이 합격선에 들었다. 그 속에 내 이름도 있었다. 난 얼마나 기뻤던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그해 6월, 앞길이 창창하던 나에게 날벼락이 떨어졌다. 중앙에서 대학입학시험제도 취소 결정을 내렸던 것이다.
 
얼마 후 문화혁명의 태풍이 전국을 휩쓸었다. 나는 류소기 수정주의 교육노선의 검은 싹으로 몰렸다.
 
심연에 빠졌다. 지옥으로 떨어졌다.
 
설상가상으로 아버지께서 다른 사람의 모함으로 역사반혁명분자란 모자를 쓰고 투쟁 받고 있었다. 나를 검은 5류 분자 자녀대오에 가입시켰다. 마을 반란파는 나를 마을에서 100리 떨어진 방목장으로 보내 100여마리 소를 방목하게 했다.
 
목장에 도착하니 눈이 감겼다. 여기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오두막집에 셋이 누워도 좁은데 넷이나 이곳에서 생활해야 했다. 한숨이 흘러 나왔다. 저녁에 잠자리에 들어보니 돌아누울 수도 없고 세 노인은 코를 곯아 잠들 수도 없었다. 초막을 나서니 밖에는 수십 마리 들쥐들이 바글거렸다.
 
날이 희붐히 밝아오자 끔찍한 일이 발생했다. 오두막에서 좀 떨어져 있는 소 우리 아래의 흙탕물에서 멧돼지 10여 마리가 장난치고 있었다. 머리가 치솟고 등골에 식은땀이 쫙 흘렸다. 멧돼지한테 물리면 뼈도 남지 않는다. 그래도 방목해야 한다. 나는 물통을 들고 죽어라고 두드렸다. 놀란 멧돼지들은 뿔뿔이 달아났다.
 
며칠 후엔 더 끔찍한 일이 일어났다. 점심때에 곰이 풀밭에 나타났다. 눈앞이 빙글빙글 돌았다. 나의 이모부가 곰한테 뜯겨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아, 이걸 어찌나? 우리 넷은 소리를 지르며 물통을 두드렸다. 곰은 슬금슬금 달아났다.
 
소몰이가 끝나자 나는 더 힘든 돌 캐기 일을 시작했다. 나는 그처럼 큰 쇠메를 처음 봤다. 돌 벽에 메로 정대가리를 옆으로 때리며 구멍을 뚫고 남포화약을 넣고 심지에 불을 달아 돌을 캐 는 것도 처음 봤다. 메질을 시키는 대로 했다. 정을 잡은 분의 손을 때릴 번 하는 일도 다반사였다. 하루 종일 메질하고 나면 손과 팔이 퉁퉁 부어올라 이튿날 숟가락 잡기도 힘들었다.
 
그래도 메질은 계속 해야 했다. 일주일 지나니 부은 것이 내리고 팔에 힘이 올랐다.
 
돌 캐기가 끝나자 나는 또 더 힘든 일을 시작해야만 했다. 석탄 캐기, 금 캐기, 목재 메나르기, 변방 길 닦기, 지금은 생각하기도, 떠올리기도 싫은 일이다.
 
하지만 나는 그때의 체험으로 인해 농민들의 고충을 더 많이 알게 되어 사회생활을 하는데 큰 도움이 되였다.
 
2년 후 아버지께서 역사 반혁명 모자를 벗었다. 30년대에 반일투쟁에 참가하고도 모함으로 얻어맞아 세상을 뜰 번 했던 아버지께서 모든 누명을 벗은 것이다. 그 후부터 나는 공사중학교 교사, 현 당위 선전부 간사, 현 방송국 편집으로 승승장구 했다.
 
이때 대학입학시험제도가 회복 됐다.
 
대학입학시험장에 들어가 보지 못한 한을 풀어 보려려고 응시생 모집 사무실로 찾아갔던 나는 나이가 많다고 밀려났다.
 
그해 11월 중순, 66기 68기 고중졸업생은 나이가 많아도 시험에 참가할 수 있다는 희소식이 날아들었다. 나는 바로 등록했고 지망에 연변대학을 제1지망으로 썼다. 까닭은 흑룡강신문사에서 연변대학을 졸업하면 받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리과를 치르려면 물리, 화학을 복습해야 하는데 한 달간의 복습시간으로는 역부족이였다.
 
드디어 12월 24일, 나는 대학의 문을 두드릴 꿈을 꾸고는 25일에 시험을 다 치렀다. 성적을 예측해보니 괜찮았다. 나는 피식 웃었다. 서른 두살인 날 데려갈리 만무하지. 이렇게 생각하면서 아무런 미련도 없이 열심히 출근만 했다.
 
이런 나에게 대학입학통지서가 날아왔다. 화기애애하던 집안에 초상집 기분이 자욱했다. 4년간 어린 두 아들을 키우며 농촌 일을 하면서 살아갈 일에 억이 막힌 아내 눈에서는 눈물이 줄줄 흘렸다. 부모님과 형님, 형수의 입에서는 한숨만 풀썩, 풀썩 흘러 나왔다.
 
나는 입을 지긋이 악물고 결단을 내렸다. 모든 원을 풀었으니 대학에 가지 않겠다고 말이다.
 
그런데 그것도 뜻대로 되지 않았다. 이튿날 현 영도와 동료들이 축하하러 왔는데 나의 말을 듣고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한다고 했다. 들어보니 반박할 수도 없었다. 189명 응시생중 나와 한족고중 졸업응시생 둘만 본과대학에 붙었으니 이 기회를 버리면 안 된다는 것이다.
 
할 수 없이 나는 다시 연변대학에 가기로 결심했다.
 
그런데 정작 연변대학에 가보니 첩첩 심산이다. 어린 동창들 입에서 아톨스토이, 레브톨스토이란 말이 흘러나왔다. 고중 때 리과 공부만 하던 나는 그런 말을 들어보지도 못했다. 그렇다고 모른다고 말할 수 없고. 나는 시간 나는 대로 도서관에 가 학습에 도움이 되는 세계 명작을 다 읽었다. 그런데 너무 급히 읽어 지금 머리 속에 남은 것은 하나도 없다.
 
4년 공부를 끝내고 졸업장을 들고 집에 돌아오니 지친 아내는 병원에 입원해 있었다. 억장이 무너져 내렸다. 나는 부모님께 인사도 올리지 못하고 병원으로 달려갔다.
 
모든 재난은 홀로 오지 않는다. 흑룡강신문사에서 전화가 왔다. 아내의 호구가 농촌 호구여서 받을 수 없단다. 난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아 올랐다. 나의 상황을 잘 알면서 왜 지망에 연변대학을 쓰라고 했나. 나의 성적으로 흑룡강대학에 갈수도 있고 또 수학성적으로 수학학부로 옮길 수도 있었는데 말이다.
 
그러나 나는 다시 진정했다. 이 모든 것이 다 운명이라고 말이다.
 
1년 후 현 조선족 간부의 도움으로 아내의 호구를 도시호구로 옮겼다.
 
이후 할빈으로 이사를 갔다. 또 억이 막혔다. 신문사에 주택이 없어 세 방에 살아야 했다. 56원 월급에서 방세 30원을 내고나면 소학교를 다니는 두 아들의 교통비 6원을 내고 남은 돈으로 네 식구가 한 달 살아야 했다. 후회 막급했다. 현에 있으면 지금쯤은 과장으로 승진했을 거고 흑룡강대학 수학학부를 졸업했으면 학교에 남아 있었을 것이다.
 
후회 한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 후회에는 치료약이 따로 없다. 그 후 더 큰 일이 발생했다. 뛰어다니던 나는 쉰 살에 경추 허리디스크에 걸려 사지마비에 걸려 쓰러졌다. 수술치료를 받고 간신히 일어났으나 평생 지팡이신세를 져야 한다.
 
누군가 말했다. 인생은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이요,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 나의 삶도 바로 이렇다고 본다.
/최영철 (전 흑룡강신문사 부장)
[이 게시물은 한중방송 님에 의해 2020-10-16 13:17:36 메인뉴스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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