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할 수 없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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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중방송 작성일21-06-16 09:37 조회1,586회 댓글0건본문
3기가 될 때까지 왜 몰랐냐고. 왜 검진을 받지 않았냐고 원망이 홍수처럼 밀려 들었다. 무척이나 착했고 법 없이도 산다는 친구였는데 건강검진에서 자궁경부암 3기 판정을 받고 지금 암투병중이라 한다. 너무나 충격적이고 마음 아픈 소식이다.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어린 시절을 함께 해온 동갑내기 죽마고우다. 오고가며 정 나눈지60년, 그렇게 다정하고 친절했던 친구의 갑작스러운 암 투병 소식에 머리가 텅 빈것 같다. 문안전화인줄 알았는데 친구의 암 투병 소식을 전해온 한통의 전화에 멍해진다. 전화기에서 들려오는 소리만 들을 뿐 아무런 반응도 할 수 없다. 내 귀를 여러 번 의심하게 하는 소식이다.
함께 지내온 추억을 간직했기에 너무 마음이 아프다. 황망한 마음이 떠나질 않는다. 너무 가슴이 아프다. 내 친구는 웃고 있었지만 행복하지 않았고 울지 않았지만 슬펐던 삶을 살아왔다. 그래서 더 많이 아프고 슬프다.
세상에 쓰레기 같은 나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왜 하필이면 열심히 살아가겠다는 착하고 착한 내 친구에게 못쓸 병을 주는 걸까? 신이 있다면 내 친구에게 이런 병을 안겨주는 건 왜 일깨고 묻고 싶다.
머리로는 괜찮아질거야. 힘내라 하는데 마음은 슬픔과 걱정, 불안뿐으로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불행을 불행으로 인정하고 불행에서 벗어나려 발버둥 치며 살아 온 친구다. 한국에서 내 집도 마련했고 새로 남자도 만나서 이제 여유롭고 즐거운 삶을 시작했는데, 평생고생만하다가 이제 살만 해졌는데 병든 몸만 남은 친구의 삶이 너무도 가엽다. 몇해전에 뇌동맥류로 머리수술을 받았을 때 그걸로 이번 생애에서의 불행이 끝내기를 바랐고 또 소망했지만 어찌할 까? 불쌍해서 어이하랴...
친구의 인생은 그토록 아픔과 고통이 가득했었다. 어려서 아버지가 산재로 돌아가시고 세 자매가 홀 엄마의 손에서 어렵게 살다가 12살 되던 해 엄마의 재가로 세 자매가 뿔뿔이 헤어지게 되였다. 언니는 할머니 집에, 친구는 삼촌댁에 얹혀 살게 되었고 동생은 엄마 따라 갔다.
다행이 숙모가 착하신 분이여서 구박 없이 잘 자랐다. 하지만 스스로 눈치 것 살다보니 하고 싶은 걸 숨기고 갖고 싶은 걸 티내지 않고 살아 와서 보는 친구들이 마음 아플 때가 많았다.
중학교부터 음악선생님의 레슨을 받은 후 학교가수로 급등장하여 꾀꼴새처럼 노래를 잘 불렀으나 가정형편 때문에 예술학교 시험 한번 응시해 보지도 못했다. 제대로 된 음악공부를 하였더라면 선배 조옥형 가수와 후배 류춘금 가수처럼 연변무대를 빛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함께 했던 수많은 추억들이 주마등처럼 떠오른다. 친구는 어렸을 때 벌레를 유난히 무서워 하였다. 중학시절에 한번은 학교 농장에 갔을 때 짓궂은 친구들 몇 명이 벌레를 꼬챙이에 꿰여 가지고 “벌레다” 하며 기겁하고 도망가는 그 친구를 쫓아다니면서 장난쳤다. 친구는 사색이 되여 끝내 울음을 터뜨렸고 우리는 선생님께 크게 야단 맞았었다. 왜 그랬던지 지금도 그 일을 생각하면 참 미안하다.
내 친구는 실직한 남편이 조건만 따지고 취업하지 않아 살아가기 힘들어 지자 가정의 생계를 떠맡고 나섰다. 그래도 남편은 요지부동이었다. 친구는 결국 어린 아들을 남편에게 맡기고 타향으로 돈벌이를 떠났다. 타향에서 식당 주방 일을 하면서 아글 타글 악착같이 벌어서 아들을 공부시키고 남편에게 생활비를 보내주었다. 남편은 인생을 포기한 듯 술에 젖어 시간을 낭비하다 건강이 악화되었다. 남편은 친구가 보내주는 병원비로 치료를 받다가 회복하지 못하고 끝내 황천길에 올랐다.
남편과 사별한 후 한국에 와서 식당일 하면서 청도에 신혼집 마련해서 아들 결혼시켜 주고 귀여운 손자손녀까지 본 위대한 엄마이자 훌륭한 할머니다.
자궁경부암 3기라, 한탄하고 슬퍼만 할 때는 아니다. 힘들고 어려운 항암치료의 여정에 네 마음은 다 알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그립다는 말, 힘내라는 말이 위로가 되려나, 지금 이 상황에 친구로서 아무런 도움도 줄 수 없다는 사실에 더 안타깝다.
삶의 아픔을 이겨내는 수많은 시간을 글 몇 자로 쓰는 것 자체가 야속하지만 그래도 슬픔을 글로 써본다. 너와 함께했던 시간을 추억하며 그 옛날 소시적처럼 외쳐보련다. 사랑하는 친구야, 나의 소중한 친구야, 보고 싶다. 힘내라. 넌 꼭 이겨낼 수 있어...
친구의 암 투병 소식에 글이라도 써야 위로가 될 것 같아 이 글을 쓰면서 내 아픈 마음을 달래본다. 친구가 더 슬퍼할까 감히 보내지도 못하고 내 서랍 속에서 잠재우고 있다. 전할 수 없는 이 편지는 서럽게 잠자고 있다. 친구가 암을 이겨내고 기적적으로 건강을 찾는 그날까지 꽁꽁 숨겨놔야 할 것 같다.
이 글을 읽는 모든 이들이 건강검진을 제때에 잘 받으시고 건강한 삶을 살기를 기원하면서 친구의 쾌유를 진심으로 바란다.
/김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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