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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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중방송 작성일22-10-17 22:15 조회902회 댓글0건본문
올해는 한중 수교 30주년이 되는 해이다. 우리의 속담대로 말하면 강산도 3번은 변해야 하지만 3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변한 건 거의 없는 것 같다. “한민족이 하나”가 돼야 할 우리들에게는 아직도 분단의 아픔과 같은 또 하나의 상처와 장벽이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한민족. 30년 간 그렇게 외치고 또 외쳐왔건만 나는 아직까지도 “나” 자신을 찾지 못하고 있다. 도대체 “나”는 누구인가? 수십 번, 수백 번 외치고 또 외쳐 봐도 누구도 대답을 주지 않는다. 아니 대답을 주지 못하고 있다.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이다.
그래서 나는 자신을 위안이라도 하고 싶어서 이런 노래까지 만들어 부르고 있다. 과연 이 노래가 “나”를 찾아 줄 수 있을지 걱정되기도 하지만 그래도 이 노래를 부르면 마음이라도 편해지는 것만은 사실이다.
우리는 한민족
우리는 한민족
이 세상에 피어난 백의민족
아, 세상 어디서나
뜨거운 가슴에 사는 민족
아~ 우린 하나
천년, 만년을
겨레의 얼을 받아 안고
사는 민족
그 이름 한민족
우리는 한민족.
우리는 한민족
이 세상에 태어난 예의민족
아, 세상 어디서나
뜨거운 열정에 사는 민족
아~ 우린 하나
영원, 영원히
민족의 염원을 가슴 안고
사는 민족
그 이름 한민족
우리는 한민족.
일제 강점기 시절, 살길을 찾아 중국으로 떠났던 우리의 선조들은 중국 땅에서 항일 운동을 하고 한글학교를 꾸리고 우리의 문화와 전통을 지켜가면서 건국 후에는 “조선족”이라는 소수민족으로 중국정부의 인정을 받으면서 살아왔다. 이들은 중국에서 한글학교를 꾸리고 한글문화를 지키고 한국어를 구사하면서 중국인들과의 치열한 경쟁 속에서도 우리 민족의 얼을 지켜왔다. 이로 인해 한중 수교가 이뤄지면서 “조선족” 즉 중국동포들은 가교역할에도 큰 기여를 했다고 자부하고 있다.
이렇게 자부심을 갖고 있던 중국동포들은 한중수교가 이뤄지면서 대량 한국에 입국하여 올해로 30주년을 맞고 있지만 아직까지도 그 정체성을 찾지 못하고 있다. 과연 그 원인은 무엇일까? 과연 누구의 탓일까?
이 문제에 대한 정답은 아직까지도 찾을 길 없지만 그래도 이들의 정체성에 대한 논의와 그 정체성을 찾을 방법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되어 나는 어제도, 오늘도 사처로 뛰어다니면서 “나”를 찾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다.
2008년 3월, 나는 사업자등록증을 신청하려고 세무서로 찾아갔다. 그런데 이 과정에 나는 너무나도 뜻밖의 일에 부딪쳤다. 글쎄 태어나서 말문을 열면서부터 학창시절을 거쳐 지금까지 아무 탈 없이 사용하던 자기의 한글이름, “전길운”을 사용할 수 없고 대신 “취앤 지윈”이란 나의 이름도 아닌 이상한 문구를 써야 한다는 것이다. 너무나도 당혹스러운 일이였다. 왜서일까?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모국에서 자신의 이름마저 쓸 수가 없다니?!
중국 즉 외국에서도 아무런 문제없이 잘 써 오던 자기의 한글이름을 정작 한국에서, 다시 말하면 모국에서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이 너무나도 신기하고 억울하기도 했다. 중국에서, 다시 말하면 외국에서도 한글을 배우고 사용하면서 우리문화를 지키고 발전시키는데 도움을 주었다고 자부했는데 정작 모국에서 자신의 한글이름마저 사용하지 못하고 우리말도, 우리글도 아닌 엉뚱한 외래어를 사용해야 한다는 것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이때로부터 나는 법무부, 법원, 등기소를 찾아다니면서 자기의 한글이름을 찾기에 나섰다. 우선 등기소로 찾아가 사업자등록증에 있는 누구의 이름인지도 모르는 “취앤 지윈”을 수정 하기로 했다. 그런데 이것을 변경하려면 법원에 가야 해결할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나는 서울시청역에서 교대역에 있는 법원으로 찾아갔다. 그런데 법원에서는 이건 가정법원에 가서 개명신청을 해야만 가능하다고 알려준다. 또 다시 가정법원으로 찾아가 민원실에 자초지종을 이야기 하고 개명신청을 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여기서는 외국인은 개명신청을 할 수가 없다고 한다.
실망에 좌절감을 느꼈다. 그래서 담당직원한테 외국에서도 문제없이 사용하던 한글이름을 모국에서는 왜 사용할 수 없는지? 왜 이런 일을 겪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더니 위로는 고사하고 “횡설수설”한다고 했다. 너무나도 화가 치밀었다.
그래서 당장 큰 소리를 질러댔다, “아니, 외국에서도 한글을 배우고 한글이름을 사용했는데 정작 모국에서 한글이름마저 사용할 수 없다면 우리민족의 문화를 보급, 발전시키는데도 문제가 있지 않느냐?”고 따지고 들었다. 또 “그렇게 대단한 사람들이 왜 자기의 문화를 버리고 외래어만 사용하느냐?”고 하면서 “횡설수설”이란 말을 함부로 하는 게 아니라고 꾸짖었다. 그러면서 우리 민족의 문화를 지키고 얼을 지켜가려고 노력하는 사람한테 미안하지도 않느냐면서 정중하게 사과하라고 강력하게 요구했다. 결과 직원은 사과했다.
순간적인 분풀이라도 한 것처럼 마무리됐지만 서러운 마음은 가시어지지 않았다. 비도 구질구질 계속 내린다. 울적한 마음에 다시 법원에 찾아가 아까 만났던 직원한테 가정법원에서 있었던 일을 자초지종 이야기 했더니 “그렇게 고생하는 모습이 안타깝다”, “나도 동감이다”고 하면서 등기소에 있는 지인한테 전화를 걸어 혹시 등기소에서 방법이 있으면 도와주라고 요청했다.
너무나도 감사했다. 그래도 도와주려는 귀인이 있어 큰 희망이 생겼다. 그래서 다시 비를 맞으면서 시청역 근처에 있는 등기소로 향했다. 등기소에 도착하자 소개받은 직원이 상냥하게 맞아줬다. 이젠 더 바랄 것도 없었다. 그래서 사업자등록증에 있는 “취앤 지윈”은 나의 이름도 아니고 우리문화에도 맞지 않아서 변경하고 싶다고 했다. 직원은 서류들을 가지고 들어가 한참이나 토론하고 나오더니 그럼 영문이름 “QUAN JIYUN"으로 쓰면 되냐고 했다. 외국인등록증상의 이름대로는 써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웃음이 절로 나왔다. 그래, 이거면 그래도 엉뚱한 “취앤 지윈” 보다는 나을 것 같았다. 얼른 대답하려고 하다가 다시 “그럼 한자는 가능하냐?”고 물었다. 그러자 직원은 또 다시 서류를 들고 들어가 토론하고 나오더니 가능하다고 말했다. 누가 봐도 “취앤 지윈”보다는 全吉云이 훨씬 더 낳았다. 이때로부터 법인등기부등본에 자기의 이름 “전길운 (全吉云)” 이 찍혀 나왔다. 이어 사업자등록증도 “전길운”으로 변경되였다.
이후 2011년 10월, 서울출입국사무소에서 열린 법무부 외국인정책 관련 회의에서 이 문제를 또 다시 제기하였는데 이 건의가 받아들여져 11월부터는 재외동포(F-4비자)로 인정받은 중국동포들의 외국인등록증(거소신고증)에 떳떳하게 한글이름을 병기할 수 있게 되였다. 참으로 눈물과 기쁨이 함께 터져 나오는 순간이였다.
그러나 기쁨도 한순간에 지나지 않았다. 2013년에 법무부는 외국적동포거소신고증에 병기하던 한글이름을 다시 취소시켰다. 나는 또다시 절망에 빠졌다.
과연 우리가 한민족이 맞는가? 우리를 재외동포로 인정하고는 있는가?
그렇다면 “나”는 또 누구인가? 아무리 생각해봐도 자신이 누구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또 다시 “나”를 찾기 위해 사처로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우선 법무부를 찾아가 “나”에 대한 정체성을 이야기 했다. 그리고 국회를 찾아가 국회의원들을 설득했다. “우리는 외국에서도 한글을 배우고 한국어를 배우면서 한민족의 정체성을 지켜오면서 우리의 문화를 알리고 전파하는데 기여를 해왔는데 정작 모국에서 자기의 한글이름마저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이 너무나도 비현실적이고 우리의 문화를 지키는데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하면서 나름대로의 이유를 설명했다. 그리고 KBS, TBS 등 방송에도 출연하여 우리민족의 정체성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피력했다.
결과 2019년 4월, 지상파방송에서 전파를 타게 되면서 이 문제가 드디어 해결되였다. 모든 중국동포들은 본인이 원할 경우 외국인등록증에 한글이름을 병기하여 발급받을 수 있게 되었다. 자기의 정체성 즉 한민족임을 인정받는 뿌듯한 순간이었다.
그러나 이런 기쁨이 또 한순간에 지나지 않았다. 나는 한국인으로 귀화하면서 또 다시 “나”를 잃게 되었다. 아니, 한민족의 정체성과 조상들한테서 이어오던 뿌리까지 잃는 혼란에 빠지게 된 것이다.
귀화 후 설레는 마음으로 가족관계증명서를 발급받아 보았는데 글쎄 이걸 어쩌나?! 아버지의 성은 “취안”으로 나의 성은 “전”으로 되여 있었다. 또 등본에는 “전길운”이라는 한글이름이 2곳에나 들어있었다. 내국인들의 등본에는 분명 괄호 안에는 한자가 적혀 있었지만 나의 등본에는 왜 한글이름이 반복되어 2번이나 적혀있을까? 상식적으로 봐도 이상한 일이 아닐 수가 없었다. 화가 나기도 하고 어이가 없기도 하여 구청직원에게 따지고 들었다.
“어떻게 아버지의 성씨와 자녀의 성씨가 다른가?”고 말이다. 그러자 구청직원도 당황하여 어쩔 줄 몰랐다. 그러면서 이런 문제는 우리 같은 말단 직원들이 맘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서 이를 해결하려면 법원에 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재외동포로 있을 때는 외국인등록증에 한글을 사용할 수 없었는데 이제 국민으로 되고 보니 이번에는 주민등록증에 또 한자를 병기하여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 사실 내국인들은 한자가 없어도 별 문제가 아니지만 한자 권에서 살아왔고 또 앞으로도 중국을 오가면서 사업도 해야 하는 상황에서 주민등록증에 당연히 한자를 병기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보다 더 가슴 아픈 것은 또 다시 소외됨을 절실히 느끼게 된 것이다.
그래도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필요성을 잘 알고 있기에 나는 주민등록증에 한자를 병기하고자 법원을 찾아가기로 결심했다. 그런데 법원에서 또 다시 신기한 일에 부딪쳤다.
이건 또 왜서일까? 법원에서 더욱 의아한 문제를 발견하게 되었다.
서울 남부법원에 찾아가 한자병기를 신청하려고 하니 주민등록증에 한자를 추가하려면 창성, 창본을 해야 하는데 서울 남부법원 관할에 있는 서울 영등포, 구로, 금천, 강서, 양천구에 거주하는 중국동포들은 귀화 후 주민등록증에 한자를 병기하려면 자신의 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치구의 이름을 본으로 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영등포구에 살면 자신의 성과 본이 어떠하던지 본은 영등포로 되고 구로구에 살면 본은 구로로 되어 구로 이씨, 또는 영등포 김씨 이렇게 된다는 것이다.
자신이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본과 이름이 있는데 왜서 창성, 창명을 해야 하는가? 이로 인해 나를 비롯한 중국동포 귀화자들은 자신의 정체성마저 잃은 채 억울한 마음에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중국동포출신의 한 귀화자는 전주 이씨지만 경기도 광명시에 살고 있기에 광명 이씨로 등본에 본을 올리게 되였다. 이외에도 허(許)씨 성(姓)은 쉬씨로 되었으며 김(金)씨 성은 진씨로 되어 부모와 형제자매가 다른 성씨로 되는 이상한 현상이 벌어지게 되였다.
또 김선숙(金善淑)이라는 이름으로 몇십 년간 살아온 한 중국동포귀화자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름이 “진산수”로 등본에 올랐다. 분명 김씨 성인데 진씨로 바뀐 것이다. 그래서 김선숙 씨는 억울하게도 현재 “진산수”로 살아가면서 “위명”으로 살다보니 아버지와 형제자매들과 성씨가 다른 남남으로 되어 버렸다.
그런데 만약 우리민족에게 “진”씨가 없다면 그래도 다행이지만 진(陈, 晋)씨도 이처럼 여러 가지가 있으니 남의 성을 도용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또 전(全)씨도 “취안” 씨로 만들어 아버지와 아들의 성이 다르게 되였는데 저도 마찬가지로 똑 같은 피해를 보게 되었다. 나도 가족관계에 아버지의 성이 “취안”이라고 등록되여 “이붓자식”의 신세로 전락되어 버린 것이다. 그래서 너무나도 억울하여 구청직원한테 “우리 엄마가 문제가 있어서 그런지 왜 나는 아버지의 성과 다르냐”고 말한 적도 있다. 당시는 비록 웃으면서 말하긴 했지만 나의 마음은 얼마나 괴로웠는지 모른다.
아버지와 자식의 성씨가 다르다는 게 무엇을 말해줄까? 아무리 생각해 봐도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것이 우리의 한민족이 살아가는 곳일까? 그렇다면 왜 자기의 모국에서 이렇게 살아가야만 할까? 머리가 아픈 고민이 수시로 찾아든다.
우리민족은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성”과 “본”에 대해서 너무나도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일제강점기 시기 일본인들이 우리민족에게 “창시개명”을 시킨데 대해서도 너무나도 억울하게 생각하고 또 분통을 터뜨리면서 일본인들의 만행에 치를 떨고 있다.
그런데 현재 우리는 왜 귀화한 중국동포들에게 우리가 억울하게 당했던 그런 “창시개명”을 다시 시켜야 할까? 이것이 우리민족의 문화를 지키고 한민족의 얼을 지키는 유일한 방법일까? 다시금 생각해보지 않을 수가 없게 된다.
당시 일본인들이 우리민족을 말살시키려고 했던 “창시개명”, 우리민족에게 치욕을 안겨주었던 “창시개명”이 현재 한민족에게 다시 반복되는 것은 큰 비극이 아닐 수가 없다. 그래서 나는 이 비극 속에서 해탈되어 다시 진정한 “나”를 찾고 싶다.
일제강점기 시기 일본인들이 우리민족에게 창시개명을 시켰다고 우리는 일본인들을 그렇게 욕하고 증오하지만 우리는 왜 같은 민족에게 창성, 창본을 시켜야 하는가? 또 당시 일제는 “남”을 자기 사람으로 만들려고 우리에게 “창시개명”을 시켰지만 지금 우린 “자기 사람”을 버리려고 “창성, 창본”을 시키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지금 한국사회는 일본을 욕하고 증오하면서도 일본을 따라가면서 우리민족의 전통과 습관을 버리고 있다. 이런 일이 지속된다면 아마도 우리민족의 정통이 곧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과연 우리민족은 어떤 민족인가?
이처럼 같은 민족의 중국동포들에게 실시하고 있는 “창성, 창본”이 앞으로 우리민족에게 수난의 시대를 가져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앞선다. 그래서 나는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한글이름과 성(姓), 본(本貫)을 지켜가면서 조상들한테서 물려받은 전통을 이어가는데 최선의 노력을 아끼지 않으려고 한다.
그래서 나는 한중 수교 30주년을 맞으면서 일제 강점기 시대, 우리민족에게 큰 고통과 치욕을 안겨주었던 “창시개명”을 버리고 우리민족의 문화와 습관, 얼을 지키고 “나”를 찾기 위해 지금도, 앞으로도 더 열심히 뛰고 또 뛰고 있다.
/전길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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