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의 시골 요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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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중방송 작성일22-03-29 21:14 조회1,352회 댓글0건본문
가을은 하늘색이 너무 맑고 구름색이 너무 깨끗하다. 추석을 앞둔 9월 중순에 내가 돌보는 어르신이 전에 지내시던 요양원으로 다시 입소하셨다.
요양병원에서 매일 어제와 같은 오늘을 보냈고 병실창밖으로 사계절을 느끼면서 3년에 가까운 세월에 문밖의 세상이 사무치게 그리웠다.
간병일은 밤잠 설치는 일이여서 주기적으로 쉬면서 에너지를 충전해주는 시간이 필요한데 코로나로 너무 무리하다 보니 피로도가 쌓여만 갔고 너무 지쳤었다. 버티다 못해 보호자에게 제안하였다.
“시골에 있는 요양원으로 이동하면 안 될까요?”
고맙게도 고민해 보겠다고 수용한다.
“이야~, 가망이 있어 보인다.”
요양원에 가면 숨통이 튀일 것 같다. 시골은 살만한 곳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기분이 마구마구 좋아졌다.
동상이몽이라 했던가! 보호자와 나는 제각기 자신들의 입장에서 서로의 계산법으로 수판을 두드리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여름이 떠나간 이 가을에야 요양원으로 오게 되였다. 다행이 어르신의 병환도 안정되어 컴백할 수 있게 되었다.
일상은 그저 당연한 것으로, 그저 노력도 없이 얻은 것이라 생각하며 살아왔던 지난날을 후회했다. 코로나에 일상을 빼앗기고 나서야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깨닫게 되면서 늘 일상에 감사하며 살아야겠다고 생각한다.
술렁이는 가을 숲의 싱그러움이 침대 위까지 그대로 올라온듯하다. 숲속의 맑은 공기가 방에 가득하다. 도심 속 요양병원에 있는 동안 하루도 이곳을 잊어 본적이 없다. 오늘 요양원에서의 첫 하루를 맞이하게 되였다. 병원의 딱딱하고 좁은 보조침대가 아니라 폭신한 싱글 침대에서 오랜만에 편안히 잠자리에 들었다. 어르신도 지난밤에는 아무 기척 없이 편하게 잘 주무셨다. 그 덕분에 나도 꿀잠을 잤다. 얼마만의 단잠인지 모르겠다.
창문들이 다닥다닥 붙어 하늘을 찌르는 도심 속의 병원과 달리 요양원은 벌써 공기가 다르다. 산새소리와 맑은 공기가 한몫을 차지하기도 한다. 의자에 앉아 창밖의 산을 바라보며 커피한잔을 하면서 하루를 연다.
들꽃에 배고픈 도시생활 하다 여기 요양원 에 와서 산야를 돌아다니며 들꽃을 만나는 기쁨에 빠졌다. 요양원의 산과 들은 나만의 천국이다. 나이가 어리지 않은 60대에 혼자 서 들꽃과 노는 모습은 좀 이상해 보일수도 있겠지만 바다색 닮은 하늘에 반하여 나는 휴대폰으로 하늘도 찍고 꽃도 찍고 셀카도 찍고 돌아온다. 눈에 보이는 그 예쁘고 맑은 자연의 색을 담으려고 휴대폰으로 목이 뒤로 꺾이는 줄도 모르고 연속 찰칵찰칵... 눈으로 마음으로 가득 담아 느낌을 한껏 누려도 좋으련만 눈에 보이는 증거를 남기려고 실컷 셔터를 눌렀다.
어르신이 낮잠 주무시는 오후에 지척 산에서 알밤 줍는 재미 또한 쏠쏠하다. 바람이 부는 날 밤나무 밑에 가면 반짝반짝 윤기를 뿜는 알밤들이 "날 데려가 주세요."하고 말똥말똥 쳐다본다. "와~ 알밤이다!" 희열을 느끼며 알밤 주으면서 수림속의 청량한 공기에 취한다. 손에 들고 오는 알밤의 무게로 풍족함까지 느끼면서 가을여인이 된 기분이다.
산의 신록이 아침마다 색깔이 달라진다. 차가워진 바람에 가을이 깊어간다. 출입 금지된 병원에서 지쳐가는 내가 딱해서 요양원행을 택해준 보호자의 배려에 한없이 고맙다. 보호자가 주는 간병비보다 더 돌려주어야 하겠다는 마음으로 어르신을 돌본다. 환자와 보호자의 마음을 헤아려 믿음으로 돌보고 가족보다 더 오래 곁을 지키고 있기에 원하는 것을 스스로 알아서 해주고 보호자의 기대치를 충족시키려고 노력한다. 청소도 열심히 해서 정리정돈이 깔끔한 방에 “신발을 벗고 들어가야 겠다”고 간호사가 농담하기도 한다.
침대머리 꽃병에 꽂아놓은 달맞이 꽃이 저녁 9시가 되면 꽃망울을 톡 터뜨리면서 싱그러운 향을 방안 가득 풍겨준다. 오늘은 보라색 가을국화와 쑥 향이 넘쳐 노랑 소국으로 장식했다. 소국이 풍겨주는 쑥 향을 맡으면서 편안한 밤을 보낸다. 아마도 며칠 후부터는 서서히 바뀌여 가는 산의 변화가 눈에 담길 것 같다.
감금에서 도망한 것도 아닌데 이렇게 후련할 수가 있을까? 몇 년 만에 나선 산길 산책에 넘나 행복하다. 이런 걸 힐링이라고 하나? 갑갑한 강제격리에서 탈출하고 시골의 청순한 공기를 한껏 마시며 자유를 즐겨서 좋긴 한데 아직도 감금은 아닌 격리에 갇힌 동료들 생각에 마음이 편하지 않다.
어려운 상황이라 우리는 서로 도우면서 서로가 많이 의지하였다. 배식, 환자이송, 환자산책, 병상정리, 기저귀 포장, 싱크대 청소 등 간병 일을 서로 스스럼없이 다가가 돕기도 하고 간식을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외식 배달음식도 자주 시켜서 함께 먹는 즐거움도 있었다. 어려운 역경과 외로움이 동료 간에 혈육은 아니지만 자매 같은 깊은 우정으로 묶어 놓았다.
병원 로비까지 배웅 와서 눈 굽을 찍는 할빈 언니를 다독여주던 심양언니가 울컥해서 눈물 물을 훔친다. 그 모습을 보고 보호자가 "여사님들 우시네요" 하며 측은하게 바라본다. 나를 꼭 끌어안고 아무 말도 못하고 있는 장백현에서 온 착한 막내에게 작별을 고하고 언니들 하고 빨리 병실로 올라가라고 등 떠밀어 보냈는데 몸도 불편한 목단강 언니가 허겁지겁 뛰어와 손을 덥석 잡는다.
슬픈 이별도 아닌데 왜들 이러 나~. 착잡한 마음에 한숨이 튕겨 나왔다. 얼마나 외롭고 정이 고팠으면, 오죽하면 울컥하기까지 할까... 간병팀장과 아쉬운 이별을 하고 떠났다. 병원장님과 원무과장님 복지사 선생님도 배웅해주셔서 떠나는 길에 아쉬운 마음도 실었다.
코로나에 지친 동료들이 이토록 믿어주고 의지해 주는 마음들이 고맙고 미안했다. 2년이란 세월에 혈육과의 만남도 없으니 정이 그립고 외로운 건 환자나 간병인이나 같은 심정이다. 나는 동료들의 아픔을 위로해 주려고 가을산과 하늘, 들꽃들을 날마다 사진으로 보내준다.
누구나 느끼는 바이지만 산길은 걷기만 해도 힐링이 된다. 산이 아직은 온통 초록으로 푸르다. 눈도 마음도 더 명랑해진 느낌이다. 코로나로 출입금지 된 요양병원에서 쌓인 스트레스를 하루 밤 하루아침에 확 날려버린 듯 개운하다. 아침 산책길에 가을비 촉촉히 내린다. 비 맞은 아침이 싱그럽다. 하늘도 이쁘고 가을꽃도 이쁘고 마음도 이뻐지는 아침이다. 시골길 산책에 나서니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다. 코로나의 위기가 피부로 느껴지지 않는 시골 요양원의 일상은 자유롭다. 덤으로 얻은 힐링 또한 즐겁고 자연에 감사하다.
/김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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