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승조선족경로원에서의 견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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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중방송편집부 작성일16-03-24 11:02 조회7,031회 댓글0건본문
일전, 필자는 여동생과 함께 어머니를 모시고 로인들 만년의 보금자리로 이름난 녕안시 강남향 명승조선족경로원에 갔다.
우리 일행을 태운 택시가 녕안시내를 빠져나와 15분정도 달리니 고풍스런 한옥들이 정연하게 들어선 산뜻하고 아담한 신 개발 동네가 한눈에 들어왔다.
청와대 건물을 방불케 하는 3층 건물앞에서 우리를 태운 택시가 멈추자 미리 연락을 받은 심기섭 원장과 서너명 직원이 문앞에 대기하고 있었다. 강남향 명승조선족경로원에 도착한 것이다.
직원들은 열정적으로 맞아주며 짐을 부리워 밀차에 싣고 우리를 안내하여 건물안으로 들어갔다.
크고 넓직한 대청에 들어서자 빙 둘러 앉아 마늘을 까고 난 로인들이 반갑게 인사하며 어머니의 손을 잡아 주었다.
"딸한테서도 전화 받고 조카딸한테서도 연락 왔소. 오늘 오신다는 안계순분이시죠?" "잘 보살펴 드리라고 부탁 합데."
1년전 중풍에 걸려 입원했다가 퇴원후 곧바로 이 경로원에 왔고 지금은 완쾌되어 자립할수 있는 퇴직교사 이순옥할머니가 다가 오며 열정적으로 맞아 주었다.
필자와 절친인 그의 조카딸이 어머니를 명승조선족경로원에 모시도록 추천해 주었던 것이다.
우리는 안내 직원을 따라 어머니가 계실 방--2층 205호실에 들어섰다.
순간 상상했던 자그마한 방과는 달리 120센치미터 너비의 침대 세개가 정연하게 놓여 있는 널찍하고 높고 환한 방이 눈앞에 펼쳐졌다. 가슴이 탁 트이는 것 같았다. 방에는 매 개인당 옷장과 침대머리 서랍이 따로 있고 벽걸이 티비, 깨끗한 실내 화장실까지 갖추어져 마치 호텔에 들어온 듯 했다.
짐을 풀고 정리하고 나니 어느덧 오후 4:30시 저녁 식사 시간이 되었다.
식당은 일층에 있었다. 한식으로 된 10여가지 반찬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는데 로인들은 입맛대로 집어서 반찬그릇에 담아갔다. 밥과 국은 직원들이 별도로 떠 놓았다.
필자도 식당에서 먹었다. 김치,무침,볶음반찬 심지어 가지, 감자와 떡호박을 한데 넣어 끓인 국까지 입맛에 딱 맞았다.
저녁후 우리는 여유가 있어 일층의 이곳저곳을 돌아보았다. 식당, 넓은 대청, 탁구대, 목욕실과 아담한 활동실외에도 복도에 설치된 각종 운동기구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우리 자매는 어머니방으로 되돌아가서 예약은 되었지만 아직 비여 있는 어머니옆 침대에서 밤을 지냈다.
3일째 되는 날, 이틀에 한번씩하는 정기 오락활동이 9:30시부터 대청에서 한다고 옆방 할머니가 어머니 데리러 왔다.
경쾌한 음악과 노래소리가 온 경로원에 울려 퍼졌다.
전자 오르간, 아코디언, 장고, 탬버린 등 악기에 맞춰 부채 혹은 패트병을 두개씩 든 로인들이 녕안시 문화관 박선생님의 지휘밑에 노래하고 춤추며 움직이는 장면은 흡사 무대공연을 방불케 했다.
어머니의 춤추는 모습을 처음 보는 나의 눈시울이 뜨거워났다.
나는 소문 듣고 찾아 온 명승조선족경로원이 과연 명불허전이란 걸 강하게 느꼈다.
명승조선족경로원은 현재 100여명 로인이 입주해 있다. 성내의 경로원을 거의 다 고찰하고나서 가장 마음에 드는 명승조선족경로원을 선택했다는 김순금님, 지도자분들이 책임성이 강하고 직원들이 친절해서 집보다 낫다고 말하는 정정숙님, 열정적이고 남을 잘 배려해 주시는 이순옥님, 그리고 조용하시고 수양을 갖춘 어머니의 방 친구 미옥 이모님. 어머니는 이내 많은 분들과 익숙해지고 친해지셨다.
직원들은 매일 방 청소를 두번씩 해 주었고 끓인 물을 보온병에 담아서 가져다 주었으며 로인들의 필요한 물건들은 대신 사다 주거나 모시고 같이 가기도 했다.
명승경로원에는 대문이 없었다. 특별 간호 환자와 치매환자외의 자립할 수 있는 로인들은 마음대로 나와서 동네를 산책하거나 활동실에 모여 화토 혹은 마작을 놀기도 하고 운동기구에서 운동하기도 했다.
경치가 수려한 야산밑에 위치한 이 경로원은 명승촌 로입협회활동실, 실내 게이트볼장과의 거리가 불과 30여미터였다.
명승조선족경로원에서 3박4일을 보내고 귀가하는 필자의 마음은 올 때의 불안한 마음과는 달리 가뿐했다.
" 입주한 로인분들로 하여금 편안하고 즐겁고 행복한 만년을 보내도록 하는 것이 저희 경로원의 경영 취지입니다. 그렇게 실천하고 있습니다. "
심기섭원장의 말이 귓전에서 오래도록 메아리 쳤다.
/이화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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