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으로 충만한 폴란드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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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중방송편집부 작성일16-11-10 09:35 조회7,267회 댓글0건본문
ㅡ영화 “김귀덕” 관람기-
오늘 서울 역사박물관에서 영화 “김귀덕”을 관람하였다.
영화 "김귀덕"은 을란타 크리소바타 감독이 제작한 다큐멘터리 영화로 1950년대 초반 국가기밀의 하나로, 체결된 계약에 따라 폴란드에 가게 된 북한 전쟁고아들에 대한 폴란드인들의 사랑을 감동적으로 전한다.
1950년 초 1270명 북한 전쟁고아들이 폴란드의 한 마을로 이송되어 그 곳에서 8년간 머물게 되었다. 북한 고아들은 이 마을에서 폴란드어를 배우면서 폴란드인들의 사랑과 관심속에서 전쟁에서 겪은 아픔을 극복하여 나갔다. 언어와 문화에서 오는 차이는 별로 오래 가지 않았으며 아이들과 폴란드 교사들 사이에는 강한 유대가 형성되었다.
이 영화는 당시의 교사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기자와 영화감독이 함께 재구성한 이야기이다.
영화 제목으로 나오는 김귀덕은 고아중 한 아이의 이름으로 13세의 소녀로 등장한다. 소녀는 거주기간이 끝날 무렵 병을 알았으며 거주지내 병원에서 지속적인 치료를 받아야 했다. 귀덕과 그를 치료한 의료진은 수십 년간 끈끈한 연대를 이어왔는바 김귀덕이 저 세상으로 간 오늘까지도 그 때 그 의료진은 꽃다발을 들고 김귀덕의 묘소를 찾는다. 아주 감동적인 모습이다.
1947년 출생인 나는 6.25전쟁 때 흑룡강성 해림시 신안진 묘산촌 조선족 마을에 살았는데 그 때 우리 마을에 북한의 군인 가족이 피난민으로 와 있었다. 정부의 지시에 따라 촌민들이 북한 군인 가족을 아주 극진히 보살펴 주는 것을 나는 직접 목격했다.
북한 전쟁고아들과 같은 연령대여서인지, 아니면 북한 피난민을 보아서였던지 나는 영화 보는 내내 감동에 젖어있었다. 폴란드인들의 북한 고아들에 대한 극진한 사랑은 나의 눈시울을 한번 또 한 번 적셔주었다.
그때 세월은 자기가 먹고 쓰는 것도 아쉬운 가난한 세월이었는데 그렇게 많은 전쟁고아들을 데려다 공부시키고 병 치료도 해 주면서 친 자식 돌보듯 8년씩이나 돌보아 준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영화에 나오는 폴란드인들은 그 당시 북한 정부에서 고아들과 1대1로 접촉하지 말라는 지시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선뜻 북한 고아들의 아빠 엄마가 되어 주었다.
기생충병이 성행하던 그 시기 약이 없어 휘발유로 병을 치료해 주고 병이 심하여 백혈병에 걸린 아이들에겐 선뜻이 자신들의 피를 수혈해 주었다.
폴란드어로 말하는 그들의 표정에서는 폴란드인들이 북한 고아들과 함께 웃고 울던 그 때 그 시절을 행복한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으며 그 시절을 아주 그리워하고 있다는 것이 역력히 비치였다. 폴란드의 민주화운동으로 하여 8년 만에 북한에서 아무런 예고도 없이 갑자기 아이들을 몽땅 데려갔다. 어쩜 짐을 덜었다고 시원해할 수도 있으련만 폴란드인들은 오직 그 이별을 슬퍼하고 애틋해하였다. 이런 폴란드인들이 정말 대견스럽고 존경스럽고 사랑스럽다.
영화에서는 북한 전쟁고아들이 폴란드에 도착하는 상황과 씩씩하게 성장하는 모습 그리고 전쟁고아들이 폴란드를 떠나는 장면 등을 드문드문 펼쳐 보여 주어 관객들에게 진실감을 안겨 주었다.
영화에서는 50년대 폴란드인들의 끓어넘치는 사랑의 진면모를 보여 주었다. 지금까지도 그 전쟁고아들을 그리워하는 폴란드인들의 표정에서 사랑은 정녕 국경도 민족도 이념도 뛰어넘을 수 있다는 것을 심심히 느끼게 된다.
김귀덕의 묘소를 찾아보는 폴란드인들에게 행복이 함께 하길 기원한다.
김보옥 프로필:
김보옥, 1947년 생. 전 흑룡강성 목릉시방송국 아나운서 겸 편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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