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시절로 되돌아간 동창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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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4-03-05 09:06 조회201회 댓글0건본문
오늘 한국에 있는 초등학교 동창들과 55년 만에 고양시 호수공원에서 모임을 가지였다.
내가 다니던 학교는 중국 지도에서도 찾기 힘든 료녕성 환인현 와니전자촌 시골 학교였다. 나이도 60대 중반을 넘어서 벌써 몇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닌 친구도 있고 고향에 계시는 친구도 또는 이국땅에서 사는 게 뭐지 이런 일 저런 일 때문에 동창회에 참석하지 못한 친구들도 있어 생존자 가운데 18명 중에 10명이 결국 시간을 맞춰서 만나는 자리였다.
옛날 걷고 걸어서 오리길 십리 길을 6년간 함께 한 이들, 시골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우리들에게 누룽지를 나누어 주던 수철이, 코 흘리개 철남이, 별명이 덜렁 포수 호남이, 집의 동 그릇을 훔쳐 상점에 가져다 팔아 사탕을 사서는 우리들에게 두 알씩 나눠주던 일남이, 옆집 암탉 알둥지에서 닭알을 훔쳐서 앵두를 사 먹고 운동장에 차렷 자세로 반나절 서서 벌을 받던 용철이, 참새 별명이란 꼬리표를 달고 잇던 옥순이, 과부 딸이라고 놀려주던 순옥이... 이제는 할머니 되고, 장인이며 시아버지가 된 이들은 이국땅에서 이렇게 만남이 생겼다.
나는 초등학교 동창들이 중학교 동창들보다 소중하다. 그것은 문화대혁명 시절 현 소재지 조선족중학교가 폐교되어 울며 겨자 먹기로 동네와 15리나 떨어진 한족 중학교를 다니게 되었던 추억이 있기 때문이다.
시골이지만 나의 동년시절은 줄거웠다. 봄이면 짜개 바지 친구들괴 삽을 들고 앞 강에 나가 모래밭을 삽으로 파면서 동면에서 깨여난 개구리를 잡아 마른 버드나무 가지를 주어다 불을 피워서 개구리를 구워 먹던 동창들, 여름이면 일요일 강가에서 반두로 물고기를 잡아 어죽을 끊어먹던 동창들, 가을이면 초저녁 동네 앞강 맞은 편에 심은 햇땅콩을 훔쳐 먹으려고 강변에 옷을 벗고 알몸 바람으로 헤염쳐 강을 건너가 땅콩밭에 들어가 땅콩 넝쿨을 두 손으로 잡아당겨 한 포기, 한 포기 수확하던 그 못된 시절의 이야기, 그래도 그 덕분에 배가 터지도록 먹고는 개선가를 부르며 집으로 오던 동창들, 겨울밤 전지불을 비춰가면서 낮은 초가집 처마 밑에 있는 참새들을 잡아 이튿날 학교 가서 난로에다 구워 먹던 동창들이 55년 만에 한국에서 뒤늦게야 만남을 가졌다.
하기에 나의 초등학교 동창들이 잊혀지지 않는다. 오늘의 만남은 각자 살아온 인생을 자랑하는 만남이 아니고 꽃송이 같은 만남도 아니며 지우개 같은 만남도 아니다. 오늘의 만남은 수수한 시골 동창들이 남은 세월 새로워진 동창간의 그리운 만남이다.
또 60중반에 동창간 사랑의 아름다움을 알고 좋은 동창으로 오래오래 서로 머물러 주는 만남이였다. 하여 부산에서 강원도에 이르기까지 맛집을 찾아다니며 배운 솜씨로 준비한 음식을 놓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마시면서 서로 이런저런 안부도 주고받으면서 55년간 그리웠던 이야기를 꺼내들고 경쟁을 벌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호수공원은 조용하였다. 아마도 우리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 같았다.
이날 나는 술을 얼마나 마셨던지 금반지를 잃어버렸다. 그러나 어쩐지 하나도 아깝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이날 만약 내가 이런 자리에 함께 하지 못하고 친구들과의 소중한 시간을 가지지 못했다면 소중한 친구들을 잃을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이 소중한 시간과 더불어 죽마고우로 지내던 친그들을 얻었고 또 나의 사정을 알게 된 며느리가 순금 30돈 팔찌를 선물로 해주었다. 만
지금도 나는 소중한 만남의 자리를 떠나면서 “이제부터라도 죽는 그 날까지 돈의 포로가 되어 살지 말고 서로 돕고 의지하는 동창이 되자”고 했던 약속들을 기억하고 있다.
동창들간의 정은 영원한 우정으로 남아 있어야 한다. 오직 믿음으로 이어진 사랑만이 다이야몬드보다 더 단단하고 더 찬란한 빛을 내는 동창들의 우정을 가슴 깊이 새겨질 것이다.
/신석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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