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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익어가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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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중방송편집부 작성일15-09-25 08:57 조회1,47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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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기수                                                                                                     
요즘은 날이 갈수록 가을을 재촉하는 분위기다. 조석으로 감겨드는 서늘한 기운과 한낮의 부풀어 오르는 따뜻한 열기에 우리네 산천초목은 속살이 익어가는 소리로 분주하다. 시리도록 파란 가을 하늘을 바라보면 천고마비의 가을이 왔구나 하는 벅찬 감동과 함께 세월의 무정함을 새삼스럽게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본격적으로 완연한 가을이 시작된다는 백로가 지난지도 이슥하다. 요즘 나는 가을이 농익어 가는 길목에서 아름답고 풍요로운 가을 풍경에 흠뻑 빠져있다. 빨갛고 노랗고 하얗게 물들어가는 가을의 미소는 다양하다. 천하의 품위를 자랑하는 산마저 가을 앞에 푸른정기를 바치고 울긋불긋 단풍에 물들어가는 깊은 사연을 저 산곡간의 맑은 물소리가 말해주고 있다. 갈바람에 곡식들이 소리치며 영근다더니 여기저기서 오곡백과가 익어가는 소리가 들려오고 아침저녁으로 제법 가을 향기가 물씬 풍겨온다. 황금전야에 곡식들이 익어가는 바스락 소리 ,저 소리는 분명 드팀없는 계절의 알람소리일 것이다.

자연이 연주하는 교향곡에 맞춰 길가의 가로수에서는 어느새 하느작거리는 춤사위가 벌어지고 살갗을 스치는 바람결이 더욱 서늘하게 안겨온다. 고삭은 담장 밑에 거칠게 뻗어나간 호박넝쿨에는 벌써 떡메로 내리쳐도 부서지지 않을 것 같은 떡 호박이 덩그러니 버티고 있는가 하면 아직도 한쪽에는 꽃도 피우지 못하고 지쳐가는 철없는 호박꽃 때문에 길게 늘어진 줄기에서는 우리네 정한을 담은 아리랑 선율이 들려오는 것만 같다.

어찌됐던 산간에는 맑은 물소리가 끊임없는 가락을 연주하고 가을 들녘에는 소곤대는 풀꽃들의 대화가 살갑다. 산기슭 군락지엔 해맑은 구절초가 기분 좋게 가을 하늘을 향해 손을 쫙 펴고 저기 은빛 날개를 세운 억새들이 바람결에 춤을 추고 있다.

어딘가에 몸을 숨겼다가 가을에야 비로소 초연하게 꽃대를 솟구쳐 올라 온 코스모스는 결코 뒤늦게 세상구경을 하려고 목을 높게 빼든 철부지가 아니다. 가냘프긴 해도 속세에 물들지 않은 청순미가 살아있고 종족번식의 숙명을 이루려는 다부진 숨소리가 있다.

인간은 사랑하면 코고는 소리마저 귀엽다는데 이 벅찬 자연의 숨소리가 어찌 싱그럽지 않으랴? 봄이 왔다고 겨우 눈을 뜨고 꼼지락 거리던 저 순하고 연한 것들이 초봄의 꽃샘추위와 여름의 장맛비에 부대끼고 병충해와 온갖 천적들과 싸우면서 인고의 보릿고개를 넘어 이처럼 탱탱 영글어 가는 모습을 보면 참으로 귀엽기 그지없다.

이렇듯 결실과 추수가 어우러진 풍요로운 이 가을에 우리는 살아온 한해의 삶에 대한 반성과 성찰의 진지한 시간을 할애하지 않을수 없다. 저마다 성숙을 위한 담금질에 분주하건만 교만에 빠진 우리는 아직도 계절의 뒤안길에서 어슬렁거리고 있지나 않는지 한번쯤 돌아보아야 하지 않을까? 나 역시도 조금은 살만하니깐 밤 문화에 젖어 부끄러운 영역표시에 넋을 흘리고 다니는 건 아닌지 잘 따져봐야 하겠다.

다행히 이제라도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찾았으니 그나마 축복받은 행운이 아닐까 싶다. 당장 마음의 빨래를 해야 하겠다. 시간이 별로 남지 않았다. 세파에 얼룩진 때 묻는 영혼을 맑은 물에 헹구고 펑펑 두드리고 쫙쫙 쥐어짜서 가을볕에 말려야 하겠다. 그리고 내친김에 창고 정리도 알뜰하게 해야 하겠다. 내 영혼의 가장 자리에 틀고 앉은 얌체족들을 몰아내고 순하고 착한 마음을 담아야 하겠다. 마음의 부자가 진정한 부자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래서 나는 내 가슴속 한 자락에 멋진 방앗간 하나 지어놓고 떡방아 찧는 소리 쿵쿵 울리고 싶다. 그리고 인정의 떡 사발에 사랑의 떡고물을 듬뿍 얹어 우리네 이웃들에게 돌리면서 마음 하나만은 넉넉하게 살고 싶다.

요즘은 마음을 비우고 자연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부쩍 는다. 시냇물이 촐랑대는 풍수 좋은 시골에 아담한 집한채 지어놓고 초야에 묻혀 닭 개짐승 키우고 채소랑 곡식이랑 심어놓고 온갖 새들의 노래와 들꽃들의 이야기와 곡식들이 익어가는 소리를 들으며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진풍경은 생각만 해도 가슴이 설렌다.

문을 나서니 선들 가을바람이 나를 한 없이 설레게 한다. 무엇에 망설이는가? 오곡이 넘실대는 들녘으로 나가보자! 곡식이 영글어 가는 소리는 가을이 익어가는 자연의 참소리이거늘 나가서 우리네 삶의 진실을 일깨워주는 대자연의 야무진 생방송을 들어보자! 계절의 한계를 인정하고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서 우리의 삶의 자세를 되새겨보자!

오늘도 나는 내 영혼이 익어가는 소리를 듣고 싶어 가을이 깊어가는 길목에 서서 저물어 가는 서산노을을 바라보고 있다. 내 눈에 석양 노을이 아름다운 것도 실은 내가 지금 가을에 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 게시물은 한중방송 님에 의해 2015-11-07 12:37:27 메인뉴스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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