둥근 달님이 떠오르면
페이지 정보
작성자 한중방송 작성일26-05-05 10:41 조회2회 댓글0건본문
둥근 달님이 떠오르면
어머님 얼굴 보고 싶소
밝은 별빛이 반짝이면
어머님 말씀 듣고 싶소
이 노래 가사를 되뇌일 때마다 하늘나라에 가신 엄마가 너무 보고 싶고 그리워진다. 어머니는 둥글 넓적한 얼굴을 가졌는데 특별히 큰 귀방울때문에 부처님 관상을 가졌다는 말도 많이 들으셨다. 엄마는 종가집 맏며느리로서 평생을 정직하게 살아오셨고 넉넉한 인품으로 딸들에게 베푸는 법를 가르쳐 주시면서 따뜻하게 끌어 안아주셨던 분이다.
1983년, 매서운 강바람이 아직도 기승을 부리던 어느날. 음력설에 막내시누이 결혼식을 금방 올리고 한숨 돌리려고 하는데 친정으로부터 3월초에 막냇동생이 결혼식을 올리게 된다는 소식이 왔다. 경제형편이 좋지 않았던 나는 막막해났다. 언니의 체면은 지켜야 하겠는데 무엇을 들고 동생의 결혼식에 참석 하지. 남편과 둘이 머리를 맞대고 방법을 찾아보았다.
궁하면 방법이 생긴다고 우리는 단위에서 호조금 50원을 당겨 쓰기로 했고 큰 맘 먹고 어렵게 장만한 남편의 디카옷감을 부조로 들고 친정에 갔다. 여러 친척들과 언니들 그리고 엄마의 정성과 마음이 모아져 동생은 남부럽지 않게 세탁기며 재봉틀이며 자전거까지 "3대가전제품"을 구전하게 갖춰가지고 시집가게 됐다.
“막내 딸까지 시집보냈으니 아주머니는 이젠 시름 놓고 복만 누리면 되겠네요.”
“조양천집 딸들이 참 효녀라니깐.”
동불사큰어머니가 부러워 하면서 칭찬하셨다.
친척들의 부러움과 칭찬에 으쓱해진 엄마는 얼굴에 환한 웃음을 지으시면서 딸들의 자랑보따리를 풀어 놓으셨다. 친척들속에 끼여 앉아 엄마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작은 일에도 수판알을 튕기군했던 자신을 돌아 보면서 엄마의 사랑에너무나도 큰 빚을 지고 있다는 생각에 고개가 숙여졌다.
결혼식을 마치고 며칠이 지난 어느날 엄마는 나를 불러놓고 조용히 말했다.
“큰 맘먹고 장만한 디카옷감이 아니냐? 도로 가지고가 사위한테 양복 한벌 지어 주거라. 시정부에서 사람을 많이 만나야 하는 일을 보는 사람인데.”
그때만 하여도 디카옷감 한벌 장만하려면 쉬운 일이 아니였다. 일년 배당으로 받은 량표, 부표, 돼지고기표까지 돈이 될만한 것은 탈탈 털어 팔아서 돈으로 모으고도 모자라서 월급에서 조금 떼내여 산 옷감이였다.
세상에 엄마는 신선같다고 하더니 엄마도 딸이 어렵게 갖춘 옷감이라는 것을 알고 계셨던것 같다. 옷감을 손에 받아쥔 나는 엄마의 너그러운 사랑에 그만 가슴이 뭉클해났고 눈물이 왈칵 쏟아져서 어린애마냥 그 자리에서 엉엉 울었다.
그리고는 꼭 언젠가는 잘 살아서 엄마에게 보답하고 효도하면서 살리라고 속다짐하였다. 해가 바뀌고 달이 바뀌기를 수십번이 되건만 인자하게 웃으시며 옷감을 건네주던 엄마의 얼굴이 지금도 저 둥근달처럼 환히 내 마음을 비춰준다.
래일은 추석이다. 부모님 산소로 가는 날이다. 시부모님 산소로 갈 음식을 준비하면서 친청엄마 생각에 눈물이 내 량볼을 타고 흘러 내린다.
엄마는 지금 어디 계실까? 만날 수는 없어도 편지라도 보낼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가! 우리 글을 볼수도 있고 쓸수도 있는 우리 엄마인데. 엄마는 생전에 책읽기를 무척 즐기셨다. 잡지와 신문을 손에서 놓치 않으셨고 먼 곳에 떨어져 사는 동생들에게는 친히 편지도 써서 사랑의 마음를 전하시면서 우리에게 배우는 즐거움을 가르쳤다
2005년 5월24일, 엄마는 우리곁을 떠나셨다. 엄마의 유품을 정리하면서 우리는 엄마가 세상뜨기 5년전에 써놓은 유서를 발견하였다.
“자식들에게 부탁한다. 어머니가 세상을 뜬 다음 돌제사까지 지내고 골회함을 두만강물에 띄워보내라. 그리고 다시는 집에서 제사를 지내지 말어라 이것이 어머니의 유언이다.”
엄마의 유언을 두고 가문에서는 의견이 모아지지 않았다. 우리 가문은 안동김씨로서 례절과 가법을 가춘 가문이였다. 어렸을때 기억으로 명절이 되면 엄마는 하루종일 떡가루를 낸다, 부침을 부친다 하면서 조상들의 제사준비에 분주히 보냈던것 같다. 힘들고 고된 제사를 치르면서도 엄마는 얼굴 한번 찡그리지 않으셨다. 밤 12시까지 기다렸다가 제사를 치르고 나서는 항상 “조상을 모르면 인간도 아니야.”라고 하던 엄마인데. 게다가 우리 가문에는 조상들의 산소도 있는데 엄마가 이런 유서를 남기셨기에 더구나 리해가 되지 않았다.
종가집 맏며느리로서 크고 작은 일들을 도맡아 해오신 엄마라면 조상들을 당당하게 만나 그곳에서 안식할수도 있었을텐데. 결국 우리는 어머니의 유언을 존중해 드리기로 했다. 엄마는 선견지명이 있었을가? 아니면 딸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는 깊은 배려였을가?
엄마가 돌아간 후 과연 사정이 생겨 우리는 더는 조상들의 산소로 가지 않게 됐다. 하지만 "조상을 모르면 인간이 아니야."라고 하신 엄마의 말씀을 되새기면서 우리자매들은 특정된 명절이 아니더라도 바쁜 일상에도 자주 한자리에 모여 부모님과 함께했던 지난날을 추억하고 있다. 딸은 엄마를 닮는다고 우리는 엄마의 따뜻하고 너그럽고 베풀줄 아는 넉넉한 인품을 닮으려고 애쓰고 있다.
엄마는 아마 가고 싶은 곳으로 가 계실거라고 나는 믿고 싶다. 그러면서도 손주를 둔 내가 어머님의 무릎 아래서 자장가를 듣고 싶은 것은 무엇때문일가. 그것은 아마 엄마도 추석달 저 켠에서 우리를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겠지.
/김경희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