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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 찾아 간 경주의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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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중방송 작성일26-04-26 20:43 조회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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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의 봄 하늘엔 자유로운 꽃구름이 떠 있었고 왕 벚꽃이 만개해 가지 휘게 풍성하였고 마을은 고요한 호수처럼 고즈넉하였다.
 
나는 의도적으로 나의 온몸을 경주란 이곳에 풍덩 담궈보기로 하였다. 누구도 날 보고 싶어 하지 않았지만 나름대로 발길이 뿌리를 찾아 여기에 왔다. 외할아버지 외할머니가 사시던 곳이란다. 외할머니 외할아버지가 지금 만약 이땅을 다시 밟아보신다면 정지용 시인의 말대로 이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좀더 나아진 삶을 원해서 할아버지세대들은 이곳을 떠나셨고 우리후세들 또한 좀더 나은 삶을 위해 이곳에 찾아왔다. 삶에 대한 욕망은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은 것 같다. 우리 백의민족은 옛날부터 근로하고 지혜로운 민족이다. 그래서 동양의 유태인라 부르기까지한다. 하지만 한이 맺힌 삶이라 떠날 수 밖에 없었던 그 시절 우리 할아버지 세대들은 고향의 번영한 모습도 보지 못한 채 한 맺힌 삶을 마감했다.
 
내가 어릴 때부터 외할머니는 많은 옛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왜 그 좋은 곳에서 여길 왔냐고 물었을 때 외할머니는 한숨을 내쉬면서
 
“남쪽땅은 당시 농민들이 땅도 없고 먹고살 방법도 없어 떠날수밖에 없었단다.”라고 하시던 대답이 도무지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왜 먹고살기가 그렇게 힘들었을까… …
 
그리하여 외할머니 외할아버지는 증 외할아버지를 모시고 여섯 살 난 아들과 나의 엄마를 배속에 품고 두만강을 건너 대사하라고 하는 작은 시골에 정착하였다.
 
그때 가지고 온 물건은 단 할머니 할아버지의 밥상 위에 날마다 볼 수 있는 앞쪽 부분이 다슬어 패여 들어간 놋수가락이였다. 왜냐하면 외 할아버지는 당시 경주에서 놋그릇공장에 다녔다고 들었다.
 
방학이 돌아오면 나는 외할머니집을 자주 다녔는데 외할머니집은 엄청 크고 밭도 많고 먹을 것이 많았다. 특히 겨울방학이면 외할머니는 손자 손녀들을 위해 엿을 한 가마씩 다려서 헛간에 얼려놓고 손자 손녀들이 오길 기다리던 기억이 새록새록 하다. 역시나 땅이 커서 먹고 사는데 문제없었다. 저의 엄마 밑으로 또 삼촌들이 다 섯명이나 되는데 워낙에 할아버지가 부지런하시고 할머니가 생활력이 강하셔서 마을에서 제일 잘 사는 집으로 꼽힐 정도로 먹을 걱정은 전혀 없었다.
 
경산도 억양과 음식생활습관이 외할머니와 꼭 같아 경주란 이곳이 단 지리적인 그곳이 아니라 아스라이 긴 세월이 지나간 향수와 정체성을 띠고 있는 곳이구나를 실감했다. 그립다고 말하기엔 너무 평범한 이곳 땅을 밟으니 파도처럼 설레는 마음을 걷잡을 수가 없다. 고향떠난 사람들이나 고향을 지키던 사람들이나 세월이 이다지도 흘러서 이젠 모두 오늘의 효도스런 경주를 보지도 못한 채 하늘 나라에 가셨고 그의 후손들은 참답게 고향 땅을 잘 지키고 잘 보존하고 잘 효도하고 있었다. 경주를 상징케 하는 왕릉들은 여전히 천년 역사를 자랑하며 마치 책꽂이에 진열된 역사 책처럼 정갈하게 보전되여 있었다. 그래서 요즘 사람들은 천년을 함께 살자는 의미로 왕릉 옆에 찾아와 떠오르는 아침 햇살을 마주하고 약속 사진까지 남긴다고 한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떠났을까 라는 생각이 문뜩 든다. 할아버지는 늘 “연락선은 떠나간다….” 라는 노래를 평시에 말하듯이 부르곤 하셨다. 그때 우습다고 깔깔거리던 그 노래가 당시 할아버지의 고향 떠난 정서를 엿볼수 있었고 또 고향에 대한 그리움도 달랠수있지 않았을까 지금에야 생각된다.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넷째 외삼촌은 할아버지 고래함에 담긴 재를 강물에 뿌리면서 흘러흘러 남쪽땅으로 가시라고 시설질 하던 기억이 난다. 어쩌면 외할아버지 외할머니는 이땅에 묻혀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나는 나의 정체성에 대한 생각을 더듬어보기도 했다. 마치 멀지않은 하늘과 땅사이에 끈어지지 않은 희미한 실이 보이는것 같았다. 우리는 이땅에 감사하고 이 땅에서 살아온 수 많은 할아버지들의 희로애락을 옛보면서 오늘날 이 노근거리는 햇살을 머금고있는 경주가 있음에 경탄할 뿐이다.
 
경이로운 경주는 골목골목이 이야기가 깃들어 있고 해설이 따로 필요없는 역사책이다. 외할아버지가 다녔다는 놋그릇공장은 찾아보지 못하였지만 그 때 외할머니가 그 낡은 놋수가락을 왜 그리도 애지중지하였던지가 이해가 간다. 경주는 마치 그대로 기다리고 있는 자세로 날 안아 주고 시름도 없고 근심도 없는 언제든지 찾아뵐 수 있는 평화롭고 따뜻한 외가집같았다. 너무 오래 안 다녀서 조금은 낯설어진 외가 집 이젠 동포라는 신분으로 자주 들려바야겠다.
 
나는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옛날옛적에 온 듯한 느낌이다. 우리 민족은 옛날부터 이상적인 세상에 대한 갈망이 있었구나를 깨달을 수 있는 대표적인 건물이 바로 불국사였다. 거기서 사람들은 마음을 치유하고 아름다운 세상을 갈망하였구나를 알수있었다. 더불어 랑만을 추구하는 매력적인 황리단길이야말로 떡 한 조각도 나눠 먹던 이웃 동네를 방불케 하여 마음이 훈훈하다.
 
경주의 봄은 이렇게도 많이 오고갔다. 나의 잔잔한 마음속에 아련한 것이 일렁거리는 것을 어쩔수 없었다. 경주가 만약 따스한 봄이라면 나는 그 슬하에 핀 한 조각 꽃잎으로 남고 싶고 경주가 만약 가을이라면 나는 그 슬하에 떨어진 한 장의 단풍잎으로 기억되고 싶다.
/조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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