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동포들에게 국적취득의 문턱 낮취주세요
페이지 정보
작성자 한중방송 작성일26-01-19 13:39 조회5회 댓글0건본문
안녕하세요!
저는 1945년 중국 흑룡강성 목릉시 팔면통진에서 태여난 “해방둥이” 장경진입니다.
지난해 말 국무회의 생방송에서 하신 이재명 대통령님의 말씀을 듣고 용기를 내여 펜을 들었습니다.
대통령님께서는 중국동포에게도 차별없는 포용적정책을 실시할 것을 지시하셨습니다.
어릴 때부터 저는 아버지 장기주(张琪柱), 어머니 정옥선(郑玉先)의 고향자랑을 들으며 자랐습니다.
부모님께서는 매일이다 싶이 고향을 그리셨지만 생전에 고향을 찾아뵙지 못했습니다.
중국동포들에 대한 정책은 노무현 전 대통령 재임 시기부터 변화가 일기 시작했습니다. 덕분에 저는 2007년 12월 19일, 부모님들이 오매불망 그리던 고국 땅을 밟게 되었습니다.
먼저 국내거소신고를 하고 휴대폰도 장만했습니다.
신분이 확정되자 동사무소에 가서 부모님의 호적부터 찾았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이름을 대니 호적을 복사해 주셨습니다.
아버지 : 장기주 1910년 10월 8일 출생
주소 :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삼봉리 639번지.
어머니 : 정옥선 1917년 3월 1일 출생
주소 : 경상북도 김천시 증산면 유성리 228번지.
아버지와 어머니의 호적을 찾을 수가 있어 너무나도 감동되였습니다.
한국에선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도 호적관리를 정확하게 기재하고 있어서 정말 탄복했습니다.
저는 아내(김보옥)와 함께 아버지와 어머니의 고향을 찾아 보았습니다. 듣던 대로 살기 좋은 고장이였습니다.
아버지의 고향은 넓은 벌이였고 어머니의 고향도 문 잠그는법 모르고 수채가 돌아가는 아름다운 마을이였습니다.
저는 오매불망 그리던 고향 땅을 끝내 밟아보지 못하신 부모님을 대신하여 국적을 올리고 저희 골회라도 고국 땅에 묻고 싶었습니다.
국적을 신청하려고 하니 친척의 동의가 있어야 하고 친척과의 유전자검사결과가 있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와 어머니 양쪽에서 한국 국적을 가진 분은 한 분도 안 계셨습니다.
3대 독자인 아버지는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살길을 찾아 만주로 이민하기로 했답니다. 만주행 화물열차의 컨테이너에 수십명이 앉아 먹고 싸면서도 희망만 바랐습니다.
일본이 금을 캐기 위해 신설한 철로 위를 달렸습니다. 용암골에 이르자 내리기로 하였습니다.
만주의 겨울은 혹독하게 추웠지만 산등성 양지쪽에 막을 쳤습니다. 눈으로 바람을 막고 추운 겨울을 버티셨습니다.
쑥대가 무성한 벌을 개간하고 논을 일구어 벼농사를 시작하게 되였습니다.
그래도 벼는 일본놈들이 다 빼앗아 가고 썩은 냄새 나는 옥수수 가루를 배급 주어 연명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머니는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그리고 3명의 외삼촌, 2명의 이모와 함께 만주로 갔습니다.
만주에서 2명의 외삼촌은 병으로 사망하고 1명은 북한으로 가서 사망하였습니다. 2명의 이모 중 1명은 일본으로 시집 갔습니다.
그래서 외할아버지, 외할머니를 따라 만주로 갔던 3남 3녀 중 어머니 정옥선과 이모 정옥련만 만주서 계속 살았습니다.
그러니 한국에 남은 친척은 한 분도 안 계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국적을 가질 자격이 안 되였습니다.
그 후 영주권이라도 따려고 시도했지만 나이가 있다보니 취업을 제대로 할 수 없기에 연 소득기준을 채울 수가 없어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입국 18년에 나이 팔순이 되고 보니 못내 허전합니다.
지금 한국에 나와 있는 중국동포들에게 포옹정책을 실시하여 이들이 고국의 땅에서 편히 살 수 있도록 해주시길 희망합니다.
5년 이상 거주자로서 범죄행위가 없고 고국을 사랑하고 고국에 대한 애정을 가진 중국동포들에게는 본인이 원하면 국적이나 영주권을 취득할 수 있게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중국동포 장경진 올림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