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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의 땅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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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중방송 작성일25-12-31 11:42 조회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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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께 효도를 하느라 부모님 앞으로 시내에 아파트를 산지도 어언간 20년이 가까와 오지만 부모님은 여전히 농촌생활을 고집하고 계신다.

 

“아직 터전을 심을 힘이 있는데 시내생활은 몇 해 후로 미뤄야겠다.”,“헛간의 땔나무들이 아직 많으니 저 땔나무들을 다 쓰면 시내로 이사해야지.”, “ 아파트에서 열 공급 전후로 추운 고생 할 것 있니? 그래도 따뜻한 온돌이 제일이야.”...

 

가지가지 이유를 핑게로 아파트생활을 거부하는 부모님의 심사는 알고도 모를 일이였다. 그러한 부모님이지만 해마다 섣달 그믐날만은 “앞뒤로 뛰여 다니며 고생하는” 우리들을 위하여 마지못해 아파트에 올라오셔서 설을 쇠군 하신다.

 

분주한 그믐날을 보내고 나면 정월 초하루부터 마음은 고향집에 가있는 부모님을 못이겨 결국 초이튿날 짐을 꿍져 시골집으로 모셔가는 수 밖에 없었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아버지는 부엌에서 재를 퍼내고 불을 지폈으며 어머니는 앞치마를 두르고 가마에 물을 붓고 군불을 때신다.

 

“참, 아버지 어머니는 왜 복을 누릴 줄 모르시나요?“ 내가 보다못해 한마디 한다.”

 

불을 때지 않아도 따뜻한 아파트에서 푹신푹신한 쏘파에 앉아 춘절만회를 보면 얼마나 좋으세요? 하필이면 이런 고생을...”

 

“우리는 그래도 추우면 불을 때고 따끈따끈한 온돌에 잔등을 덥히면서 티비를 보는 ‘우리집’이 더 좋단다.” 어머니께서 웃으며 이렇게 대답하신다. 어느새 아버지는 마당도 깔끔하게 쓸어놓으시고 난로 불도 활활 지피셨다. 이러는 부모님을 바라보면서 나는 속으로 (참 못 말리는 성격들이셔)하고 도리 머리를 저을 뿐이다.

 

사실 나는 부모님의 속셈을 알고 있었다. 부모님이 농촌생활을 즐기시는 이유는 평생 농촌일이 몸에 배인데도 있겠지만 더욱 중요한 이유는 바로 그 “땅”에 대한 애착때문이라는 것을.

 

팔십고개를 훌쩍 넘기신 부모님은 올해도 한국간 이웃집 터전까지 부치신다. 사질땅이여서 가물을 무척 타는 척박한 땅이지만 새벽부터 어스름이 질 때까지 씨뿌리고 지게로 날라다 물을 주고, 김을 매고 밭 이랑을 쳐줘 북을 돋우어주는 부모님의 손길아래 터전 노릇은 그런대로 하고 있는 터였다. 그러다보니 부모님의 손은 항상 터실터실 갈라 터지고 늘 쟁기에 맞히고 긁혀 상처투성이였다.

 

남편이 보다못해 올해만 부치고 내년부터는 그만두라고 권고하면 “그건 내년에 가봐야 알지......”하고 건성으로 대답하신다. 이듬해가 되면 또다시 밭을 갈아엎고 씨붙임을 시작한다. 터전도 터전이거니와 집 주변 도랑을 쳐내고 길옆 풀을 매는 일 또한 만만치 않다. 어머니는 풀 한포기 날세라 알뜰하게 매군 하였는데 장마철이 되면 새벽에 어스름한 달빛을 빌어가면서 풀을 뽑으신다.

 

부모님의 땅에 대한 사랑은 극진하다 못해 집착에 가까웠다. 개혁개방초기 밭을 농호에 나눠주고 생산책임제를 실시하자 직공호인 우리집에도 세식구 몫으로 7~8무의 수전이 차례졌다. 그런데 그 수전들은 지세가 높은 곳은 물이 잘 올라갈 수 없고 지세가 낮은 곳은 씨붙임도 잘 안되는 냉한 땅이였다. 아버지가 아침 출근전이나 공휴일에 논물을 보고 농약을 치고 비료를 쳐주고, 어머니가 손가락 끝이 터지도록 김을 매주었지만 첫해 농사는 나라에 징구량을 바치고 나니 겨우 우리 식구의 일년 식량 밖에 남지 않았다.

 

음력설을 쇠고난 부모님은 지게를 지고 삽과 괭이를 들고 여우도 눈물을 흘린다는 초정월 매서운 찬바람을 맞으며 밭으로 나가셨다. 괭이로 높은 곳의 흙덩이를 깨서는 지게에 담아 낮은 곳으로 날라오는 평정지작업을 하러 간 것이였다. 한삽, 두삽, 한지게 또 한지게... 이렇게 흙덩이를 깨고 지게에 지여 나르고 또 날랐지만 높은 밭은 여전히 높았고 일은 좀처럼 축나지 않았다. 점심에는 보온병의 더운물로 꽁꽁 언 누룽지를 씹어삼키며 시장기를 달래고 계속 일에 달라붙었다.

 

오후 네시쯤이 되여 해가 서산에 뉘엿뉘엿 질 무렵, 얼굴에는 땀에 반죽된 흙먼지를 푸욱 뒤집어쓰고 눈섭이며 눈초리며 입 언저리에 하얗게 성에를 쓰신 부모님이 기진맥진하여 집에 들어오시던 그 모습이, 오늘 이시각까지 내 눈언저리를 따갑게 자극하곤 한다.

 

이렇게 4~5년 고생한 끝에 부모님은 끝내 그 수전 땅을 옥답으로 만들었고 또 밭머리의 억새풀과 당나귀풀이며 장피을 뽑아내고 황무지를 개간하여 수전 면적을 한 헥타르 넘게 늘이는데 성공하였다. 아버지는 흑룡강신문에서 농업생산기술에 관한 기사를 보면 꼭꼭 읽어두고 과감히 실천해 보면서 농사일을 익히셨고 어머니는 벼꽃 피기 직전인 초복까지 논김을 맸는데 김을 어찌나 알뜰하게 매였는지 돌피 한 대 찾아불 수 없었다.

 

이렇게 알뜰경작을 고집한 덕분에 우리 집은 해마다 마을에서 무당 수확고를 최고로 기록했는데 마을에서 손꼽히는 실농군들도 탄복하군 했다.

 

‘한치의 땅도 소중히 다뤄야지, 어떻게 일군 땅이라고...” 혼자말처럼 하시는 아버지의 말씀에는 땅에 대한 더없는 경의와 사랑이 깊이 스며있었다. 나의 눈앞에는 20세기 40년대 초, 어린 자식들을 업고, 손에 이끌고 저 멀리 조선반도에서 살길 찾아 만주 땅을 찾아오신 할아버지 할머니, 외할아버지 외할머니의 모습들이 또렷이 떠오른다. 천신만고를 겪으면서 아성에 도착하여 이사 짐을 풀려 했으나 결국 마적들에게 모든 것들을 빼앗기고 또다시 땅이 넓고 인가가 드물다는 북대황을 찾아 동으로, 동으로 향하였다는 할어버지네 일행이였다.

 

그 후에도 여기저기 여러 곳으로 집단이주를 하셨다는 나의 친가 집과 외가 집의 깊은 인연 역시 “땅”이 맺어준 인연이였다고 한다. 땀 흘려 가꾼 보람으로 우리 가정은 아버지의 빈약한 노임과 “책임전”에서 나온 수입으로 친척들에게 손 하나 내밀지 않고 나와 동생의 대학공부 뒤바라지를 빠듯하게나마 할 수 있었다.

 

땅은 우리 가정의 명줄이였고 희망이였으며 행복의 원천이였다. 나와 동생이 대학을 마치고 호적을 시내에 붙이게 되자 생산대에서는 량식전(책임전)을 회수하여 아버지는 수전농사도 이젠 그만 두게 되었다.

 

갑자기 “백수”가 된 부모님은 이젠 그만 향수를 누려야겠다고 생각하리라 믿었지만 도리어 한동안 어딘가 몹시 허전하고 망연한 듯 하셨다. 그것은 곧 “땅”에 대한 미련이였던 것이다. 바로 이때 부모님은 또다시 새로운 “땅”을 발견하게 되었다. 마을에서 맨 남쪽에 위치한 우리집 앞으로는 작은 물도랑이 흐르고 있었는데 강가의 공지는 마을 사람들이 아무렇게나 버려두는 쓰레기와 재더미로 주변 환경을 어지럽혔고 우리 집 울바자는 수시로 밀려오는 재먼지를 덮어쓰기가 예사였다.

 

”쓰레기 금지”라는 패말을 써붙여도 늘어나는 재무지와 쓰레기무지는 막을 길이 없었다. 의논끝에 부모님은 쓰레기무지와 재무지우에 강냉이를 심어 환경정돈을 하기로 하였다. 밀차로 남들이 버리는 구들고래를 훑어낸 쓰레기와 낡은 벽을 허물어낸 건축 쓰레기 등을 실어ㅠ와서 웅뎅이를 메우고 쓰레기ㅠ무지를 강냉이밭으로 만들었다.

 

이렇게 5~6년간 노력한 끝에 쓰레기 무지는 어데론가 자취를 감추었고 우리 집은 늦강냉이와 줄 당콩이 키돋움하는 자그마한 문전 터전을 한 뙈기 밭을 얻게 되었다. 어느덧 한국 바람이 불어 마을 사람들은 하나둘 한국 나들이를 가게 되였고 터전을 맡아 다뤄줄 “지킴이”가 필요했다. 그때마다 마을 사람들은 “땅 사랑”이 지극한 부모님을 찾아왔으며 한해 농사를 마친 겨울철이 되면 나는 고추가루며 찰 옥수쌀, 팥, 열콩같은 특산물을 그분들에게 부쳐주는 임무를 맡아야 했다. 혹시 그분들이 고향에 오시면 부모님은 농약이나 화학비료를 일절 사용하지 않고 순 친환경으로 키운 건강 채소라며 감자, 배추나 무우 그리고 찰 강냉이 쌀들을 넉넉히 주셨고 된장이나 고추장까지 나누어 주셨다. 부어도 부어도 끝없는 땅 사랑이였고 나누고 나눠도 끝없는 시골인심이였다.

 

세월은 흘러 나도 어느덧 정년퇴직을 맞게 되였고 부모님댁에 자주 드나들 수 있는 여유를 갖게 되었다. 봄에는 부모님을 도와 하우스를 씌우고 배추씨랑 시금치씨도 뿌려주고 여름이면 가지 모, 고추 모도 해주고 가을이 오면 빠알갛게 익은 고추들을 썰어 따가운 가을볕에 말리면서 부모님의 그 기막힌 “땅 사랑”을 가슴으로, 가슴으로 알아가고 있는 중이다.

 

이제 나의 자식들이나 손주 녀석들이 내 나이가 될 즘이면 그 애들도 나처럼 부모님의 이 같은 “땅 사랑”을 얼마간이라도 이해할 수 있을런지...

 

/고련옥

 

작자 소개 : 흑룡강성 밀산시 화평향 출생. 목단강사범학원 정치교육과 졸업. 밀산시 조선족중학교 부 교장, 밀산시 조선족 소학교 교장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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