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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이야기

엄마의 한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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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중방송 작성일23-02-24 00:26 조회34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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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5월 19일, 밤이 깊어갈수록 나와 엄마는 불안속에서 떨어야 했다. 2주일 전에 내가 사는 흑룡강성 목릉시 하서향 보흥마을에 큰 폭탄이 터졌다.
 
마을의 사거리에 대자보가 붙었다. 제목이 촌민들의 눈길을 확 끌었다. “역사 반혁명분자 최사범을 타도하자!”
 
내용은 간단하다.
 
지난 해에 갱신 마을에서 보흥 마을로 이사 온 최사범은 동녕현 노흑산에서 살 때 반일활동을 하다가 일본헌병대에 붙잡혔는데 다른 사람을 물어넣고 살아나왔다.
 
이 대자보 한 장에 온마을이 흥분했다. 반란파들은 “문화대혁명의 위대한 승리다.”고 외치면서 나의 아버지를 투쟁하는 군중대회를 열었다.
 
전일에는 아버지께서 밤 2시 전에 집으로 돌아오셨는데 이날엔 새벽 1시가 넘어도 돌아오지 않으셨다. 그러자 엄마가 더 불안해하셨다. 한동안 서성이던 엄마는 안방에 들어갔다 나오셨는데 손에 책 한 권이 쥐여 있었다.
 
얼핏 봐도 엄마가 애지중지하던 한글책이다. 이 책으로 엄마는 1966년 8월 21일에도 불안해 했다. 전날에 현성을 휩쓴 문화대혁명의 광풍은 현성 부근의 마을도 휩쓸었다.
 
마을의 반란파들은 밀차를 밀고 다니면서 봉건 물건 짝들을 바치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조선족은 남조선과 관련된 물건을 죄다 바치라. 나중에 발견되면 남조선 특무로 붙잡는다.”고 말이다.
 
그때 엄마는 한글책으로 고민했다. 이 책이 남조선 물건짝이냐? 이 책 안엔 우리글만 있다. 알아본데 의하면 이 책은 남조선에서 출판한 것이 아니라 중국에서 출판한 것이다. 그러니 남조선 물건 짝이 아니다.
 
엄마는 끝내 한글책을 바치지 않으셨다. 그런데 이번은 다르다.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라는 세월에 이 책이 반란파들의 손에 들어가면 남조선 특무란 모자를 더 쓸 수 있다. 엄마는 결단을 내렸다.
 
“이 책을 두엄 무지에 파묻어라. 이 책이 반란파들의 손에 들어가면 너의 아버지가 남조선 특무로 몰릴 수 있다. 나에게 한글책을 넘기는 엄마의 손은 눈 띄우게 떨리셨다. 나는 더 생각지 않고 한글책을 받아들고 창고에서 삽을 찾아들었다. 창고 뒤에 가 3일 전 반란파들의 집 수색이 우려돼 파묻은 나의 책 꾸레미를 파내고 포장을 헤치고 엄마의 한글책을 넣고 재 포장 해 묻었다.
 
엄마와 한글책의 인연은 순간의 인연이 아니라 파란만장의 긴 인연이다.
 
1932년 엄마가 살던 동녕현 페우골에 송강성 한인협회서 교사 2명을 보내 한글학교를 세웠다. 그때의 교과서는 이 한글책이었다. 당시 외할머니는 10살인 엄마를 이 학교에 보내지 않고 8살인 작은 딸만 보냈다.
 
왜?
 
외할머니께서는 엄마를 너무 미워하셨다. 첫애가 아들이길 바랐으나 딸이여서 시부모의 천대를 받았다. 그러니 엄마를 고와할리 만무하다. 그런데다가 엄마가 정말 못생겼다. 난쟁이를 면한 작은 키에 뱁새눈, 검은 얼굴, 실제로 못 생겼다. 그래서 외할머니께서는 큰딸이 보기 싫어 아침 식사를 마치기 바쁘게 집을 나섰다가 저녁 늦게야 집에 오신다.
 
외할머니께서 미워하시자 둘째 딸도 언니를 기시해 학교에서 받은 한글책에 손도 대지 못하게 했다.
 
1938년에 엄마는 이웃마울 노흑산에 사는 아버지한테 시집갔다. 그때 아버지한테도 그 한글책이 있었다. 그 책을 보는 순간 여동생한테 멸시당한 일이 떠올라 한글책에 손을 대지 않았다.
 
1944년 일제의 강제이주로 목릉시 서쪽골짜기에 끌려온 이주민들은 신흥촌 중국인들의 도움으로 생존했고 갱신촌을 세웠다.
 
일자 무식인 엄마였지만 부촌장인 아버지의 사업을 많이 도왔다.
 
1945년, 마을의 살림집을 지을 때 엄마는 날 임신한 몸으로 구들돌 채석장을 찾아 구들돌을 마련했다. 또 구들을 놓을 때 엄마의 솔선수범과 지휘로 30집에 불길이 잘 들어 겨울을 무사히 지낼 수 있었다. 그래서 아버지의 부촌장 사업은 많은 실적을 쌓아 1950년에는 촌장으로 선출됐다.
 
그런데 엄마가 문맹이어서 아버지한테 불편한 일이 한 두가지가 아니었다. 아버지께서는 1953년 가을에 정부 관계부처에 겨울 3개월 동안 야간학교를 세우고 엄마처럼 학교문턱을 넘어보지 못한 40명 촌민들에게 우리 글을 배워줄 계획을 올렸다. 정부 관계부처에서는 적극 지지했다. 2명 야간학교 교사의 3개월 노임과 43권의 한글책을 보내왔다.
 
그 해의 탈곡이 끝나자 야간학교는 개학했다. 2개 반으로 편성됐다. 1반은 남성학생과 처녀학생으로 편성됐고 2반은 가정주부 학생으로 편성됐다. 1반은 소학교 교실에서 수업했고 량윤문소학교 교사가 가르쳤다. 2반은 우리집에서 수업하고 심복순교사가 가르쳤다.
 
개학 첫시간 첫번째 순서는 교과서 발급이다. 생소하지 않은 한글책을 받은 엄마는 외할머니와 여동생의 천대를 받은 일들이 새록새록 떠오르면서 몸을 부르르 떨었다.
 
낫 놓고 기윽자도 모르는 엄마는 처음으로 자음 ㄱ ㄴ ㄷ ㄹ 등 발음과 쓰기를 배우셨다. 이튿날 엄마는 가위로 두꺼운 종이를 베여 자음을 오려 주방에 붙이셨다. 발음과 쓰기, 자모음 합쳐 글 만들기를 배운 후 엄마는 교과서에만 매달리지 않고 늘 보고 쓰는 물건을 적으셨다.
 
받침을 배우기 전에 받침이 없는 물건을 적으셨다. 즉 고추, 가지, 파, 무우 등등이다. 받침을 배운 후엔 쌀, 간장, 소금, 된장, 이불, 옷 등등을 적으셔 집안 벽 여기저기에 붙이셨다. 이 시기에 엄마의 비상한 기억력이 마을에 알려졌다. 엄마는 한 두번 보고 들은 것을 죄다 암기하기 시작했다.
 
야학교를 졸업한 후 엄마는 편지를 쓰실 수 있었다. 아버지와 중학교를 다니는 형님도 처음엔 믿지 않았다. 엄마가 직접 편지를 쓰는 걸 보고서야 탄복하였다. 엄마는 외할머니께 첫 편지를 보내셨다. 편지를 받으신 외할머니께서도 믿지 않으셨다. 외할머니의 초대로 외할머니께서 사시는 할빈에 가서 직접 편지를 쓰는 엄마를 보고서야 인정하셨다.
 
문화대혁명이 끝난 1976년 10월에 나는 파묻었던 책 꾸러미를 파내 한글 책을 엄마한테 넘겼
다. 그때 엄마는 깜짝 놀라 한동안 멍하니 한글책을 보실 뿐이었다.
 
조금 후 엄마는 날 보시면서 반가운 웃음을 지었다.
 
”그날 밤에 이 책을 두엄무지에 버리지 않았나?“
”엄마가 애지중지하신 한글책을 어떻게 두엄무지에 버리나요.“
”그래, 그래. 이 한글 책을 두엄무지에 버릴 순 없지.“
 
엄마는 25절지 회색에 가까운 이 한글 교과서에 깊은 애착을 가지셨다. 한참동안 한글책을 이리저리 살펴보신 엄마는 그 한글책을 들고 방안에 들어가 농궤안에 다시 넣으셨다.
 
7년 후 연변대학을 졸업한 나는 할빈시로 이사갔다. 그 후 엄마는 두 번 우리 집에 오셨는데 그때마다 한글책을 갖고 와 손자 둘에게 책 자랑을 하셨다.
 
나와 둘째 며느리를 보고는 죽으면 이 책을 갖고 저승에 가 학교 문턱을 넘지 못하고 죽은 다섯 자식에게 한글을 배워주겠다는 유언을 남기셨다.
 
나는 엄마의 유언대로 엄마가 세상을 뜨셨을 때 한글책을 엄마의 품에 안겨드렸다.
 
오늘도 엄마는 다섯 동생들에게 한글을 가르치고 계실거다.
 
ㄱ ㄴ ㄷ ㄹ..., ㅏ ㅑ ㅓ ㅕ...
엄마, 수고하셨어요.
엄마, 존경합니다.
/최영철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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