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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이야기

우리말과 우리글을 익힘은 나의 평생 념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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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5-10-28 12:07 조회1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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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자랑만 하는 사람은 ‘멍텅구리’, ‘바보’란 말이 있다. 그래도 나는 오늘 필을 들면서 각별히 한차례 ‘멍텅구리’나 ‘바보’가 되고 싶다.
   
지금 나에게는 우리말과 우리글에 관해 손꼽을 만한 영예증서와 상패가 몇 개 있다. 그중의 하나는 2002년 8월 9일 흑룡강조선어학회 성립 20주년 경축대회에서 “돌출한 공헌상(突出贡献)”으로 장려한 상패이고 다른 하나는 역시 흑룡강조선어학회에서 2006년 11월 18일에 수여한 “조선어학회를 위하여 돌출한 공헌을 하였다(为朝鲜语学会做出突出贡献)”란 붉은색 글발의 상패다.
 
셋째는 16절지 검은색 상장가위에 “국회(国会)”라고 황금색 두 글자가 박혀있는 표창장이다. 표창장에는 이렇게 씌여져 있다. “귀하는 언론인으로서 재외동포사회의 현안을 널리 알리고 한민족사회의 발전과 변화를 위하여 언론 흥보에 노력하였기에 2018년 한민족신문 창간 10주년 기념행사에 즈음하여 그 공을 기리고자 이 상을 수여합니다.”란 영예증서이다. 그리고 “안중근 의사 서거 87주년기념 공모전”에서 획득한 상패도 있다. 이런 영예와 상패들은 내 본신으로 놓고 볼 땐 우리말, 우리글, 우리 역사와 민족정서를 잃어버리지 않도록 노력하고 힘써 쌓아온 담벽, 사명이라 하겠다.
   
산재 잡거지구에 살던 내가 고중 때부터 한족학교를 다녔고 게다가 대학(할빈철도학원 철도건축계 본과) 문을 나서자마자 모주석의 “3선건설”의 호소에 두말없이 호응하여 32만 할빈철도국을 대표하여 30여명 “3선건설”지원자들과 함께 앞가슴에 붉은 꽃을 빛내이며 서남지역의 “3선건설”현장에 뛰여들었다.
   
이른바 “3선건설”이란 모주석의 전략구상의 하나로서“전쟁을 준비하고 폐황을 준비하고 인민을 위해 복무하자(备战备荒为人民)”는 지도사상에서 서남, 서북지방에서 대규모로 진행된 국방공업, 첨단과학기술과 교통건설을 가리킨다. 분망한 3선걸설현장에서 10년이란 세월을 보냈다. 이런 환경속에서 우리말을 하자거나 우리글을 익히기는 하늘의 별 따기였다. 하지만 난 사명을 지켜가려는 마음―조선어공부를 잊지 않았다.
   
북방으로 전근되여 돌아온 후 역시 산재지구에 살았지만 조선족임을 잊지 않고 우리말, 우리글을 배우고 우리글 문장들을 쓰려고 《조선말표준어사전》을 사들인다, 《새 중한사전》을 마련한다 하며 대여섯 개나 되는 조선어학습 참고 자료들을 장만하였을 뿐만 아니라 중국국제방송국 조선어부에 련결하여 그들이 편찬한 조선어학습재료 《실용중국어 회화》독본들을 얻어 보배처럼 여기고 틈만 있으면 우리말과 우리글을 배우기에 날 새울 때도 적지 않았다.
   
한번은 철도연선의 한 조선족마을에서 새끼토막을 갖고 노는 손자 놈을 꾸짖다가 새끼 얻으러 온 해방군 전사에게는 두말없이 한 틀의 새끼를 성큼 내놓는 광경을 보았다. 군민의 두터운 정을 구가하고저 나는 떠듬떠듬 서투른 우리글로 일주일간이나 쓰고 고치고 또 읽고 고치고 한 원고를 신문사로 부쳤다. 나는 하루이틀 신문이 오기를 애타게 기다렸고 신문이 도착하면 눈이 뚫어지게 살펴봤지만 몇주일이 되여도 나의 원고는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실망한 나머지 자신의 낮은 조선말, 조선 글의 수준만 원망할 뿐 원고 쓰려던 열정이 단번에 꺾어지고 말았다.
   
그러던 어느 날이다. 신문사에선 깎고 뜯고 수개한 “군민의 두터운 정”이란 나의 원고가 완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신문에 나갔다. 나는 얼마나 기뻤는지 몰랐다. 편집선생님은 이처럼 미숙한 투고자의 글임에도 불구하고 뚝 잘라버릴 대신 되도록 원 풍격과 성격을 살려 실어주었기에 나의 마음을 후덥게 해주었고 원고쓰기의 신심을 강유력하게 북돋아주었다.
 
이때로부터 나는 신문사, 방송국과 인연을 맺고 그들과 같이 호흡하면서 성냥갑만한 토막 문장으로부터 점점 손바닥 만한 문장으로 변하고 더욱 큰 문장으로 들어가면서 본지방의 정황반영과 원고쓰기에 전력을 다했다. 사람들도 “새로운 일 새로운 사람”이 있으면 나를 찾았다.
   
한번은 출장길에 할빈 태양도에서 휴양하시는 흑룡강신문사 사장 윤응순 선생님을 뵈러 가서 간담을 가진 적이 있었다. 헌데 이 담화가 나의 인생의 한 전환점으로 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윤사장님은 나를 고무격려하여 “리헌동문 무슨 일을 하던지 지면을 리용하여 꼭 힘써 성공하는 사람이기에 나는 리헌동무를 물방울에 비유하여 ‘낙수 물이 댓돌을 뚫는다.’는 일기를 썼습니다.” 라고 하시면서 통신보도사업을 둘러싸고 여러 면에서 나를 고무격려하여 주었다.
   
이 ‘물방울’정신은 재빨리 나의 글쓰기에서 크나큰 힘으로 되였을 뿐만 아니라 내 인생의 좌우명으로도 되여 나의 사업과 생활에서 더없는 원동력으로 되였다. 우리말, 우리글 학습함에서의 난점, 사업에서의 난관, 원고쓰기에서 애로에 부닥칠 때면 ‘물방울’은 항상 나의 앞에 서서 나를 힘 있게 이끌어 나깄다. 학습과 생활가운대서 나는 점점 ‘물방울’정신을 터 활용할 수 잇게 되었다.
 
처마밑에 돌랑똘랑 떨어지는 물방울이 댓돌을 뚫을 수 있는 것은 그가 힘이 세서가 아니라 밤낮을 가리지 않고 부지런히 시종여일하게 돌을 내려치기 때문이다.
   
나는 ‘물방울’정신으로 꾸준히 배우고 꾸준히 글을 썼다. 신문사에선 전 성 통신원대회에서 나의 꾸준한 정신을 회보하게 했다. 뒤이어 신문사 령도에선 나를 데리고 목단강, 가목사, 하라얼, 아룽치 등 전 성 각지 조선족집거지를 순회하면서 이른바 나의 ‘물방울’정신을 회보하게 했고 토론도 하게 했다.
   
나는 점점 우리 신문의 애독자로부터 신문사의 통신윈으로 발탁되었고 특약기자란 영예증서도 받아않았다. 이후 통신원과 특약기자의 신분으로 선후로 수차 통신보도와 평보문장, 군중들의 반영과 “좋은 사람, 좋은 일”들을 썼다. 하여 “목단강시 새해 민족사업 신들매 조인다(흑룡강신문 2011.12,20)”, “목단강시정부 조선족장수로인을 위한 단체 ‘회갑연’마련(중국신문 2012.07.14.)”, “목단강시 사상최대윷놀이 개최(길림신문2011.02.16.)”, “목단강시 제7차 민족단결진보표창대회성황리에(중국신문2012.02.22.)”, “민족간부를 두고(연변일보 2004.08.26.)” 등 문장들이 여러 신문과 방송에 나갔다.
   
시대의 발전과 더불어 나의 조선어 습작능력도 점점 늘어났다. 내가 쓴 “심리상태로 뜯어보는 술상문화”가 흑룡강신문에서 벌린 술문화공모에서 가작상을 따 냈다. “조선어의 사회적지위를 높임에서 민족간부들 역할의 비 권력성적 영향력에 대하여”란 긴 문장은 흑룡강성조선어학 《학술론문집》에 발표 되였다.
   
나의 ‘물방울’은 조국의 대동맥이란 크나큰 바위돌위에 떨어지기 시작했다. 철도의 특징, 철도의 관리, 철도의 영업, 렬차속도, 렬차방향, 렬차번호, 철도안전 등 철로의 긴장한 사업을 중점으로 밝힌 논문 “국민경제의‘대동맥’-철도”가 북경의 《중국민족》 잡지에 채용되었다.
   
좀 무게가 있다고 하는 문장은 북경에서 열린 중국조선족발전 세미나에서 발언한 발언원고라 하겠다. 근 5000자에 달하는 론문의 제목은 “전자계산기 학술용어에서 조(朝), 한(韩), 중(中)의 차이점과 통일대책에 관한 단상”이다. 논문은 세부분으로 나누어 썼다.
 
첫 부분은 벤처사업에서의 전자계산기의 역할이고, 둘째 부분은 컴퓨터의 학술용어에서 조선반도 북남의 차이점과 중국의 차이점이며 셋째 부분은 학술용어 통일안 대책에 관한 약간한 사고이다. 이 회의는 국가민족사무위원회, 중앙민족대학 한국문화연구소와 《민족단결》잡지사 조선어부 등 5개부분에서 련합으로 별린 세미나다. 나의 발언은 대회의 호평을 받았을 뿐 만아니라 대회에 아주 좋은 반영을 일으켰다.
   
5년전이다. 2021년에 “중국조선족디카시인협회”가 일떠서면서부터 디카시 창작은 한개의 문학장르, 문학의 신생사물로서 보급되기 시작하였다. 디카시란 디지털시대에 스마트폰 하나로 보고 찍고 쓰는 누구나 다 참여 할 수 있는 대중문학으로 서술이 5줄로 제한되어 있기에 최대한 간결하고 은유적이면서 시적 운률과 감동이 있어야 한다. 디키시는 때와 장소에 관계없이 감흥이 있는 자연과 사물을 휴대폰 사진에 담고 짧은 글로 표현하기에 디카시 창작은 이미 나의 로년시기 생활의 활력소로 되고 있다.
   
90의 아리랑고개를 바라보고 있는 나는 디카시의 열차를 타고 인생의 종차역까지 우리말 우리글로 디카시를 쓰는 것으로 목표를 정하고 힘차게 내달리고 있다.
/리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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