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돈과 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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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5-07-10 10:46 조회5회 댓글0건본문
예로부터 전해오는 이야기 하나가 있다.
한 농부가 밭에서 김을 매고 있을 때였다. 어디선가 토끼 한 마리가 미친 듯이 내달리더니, 밭머리에 우뚝 서 있던 참나무에 세차게 부딪치고 그 자리에서 숨을 거두었다. 농부는 호미를 내던지고 달려가, 젖은 빨래처럼 축 늘어진 토끼를 얼떨결에 안았다. 뜻밖의 횡재였다.
그날 이후, 그는 밭일을 접고 매일같이 참나무 밑에 앉았다. 또 다른 토끼가 달려들기를 바라며. 그렇게 그의 밭은 잡초로 우거졌고 무엇을 심은 밭이었는지도 알 수 없게 되었다.
수주대토(守株待兔)
그 고사성어를 처음 들었을 땐 단지 어리석은 농부 하나의 교훈쯤으로 여겼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나는 그 참나무 밑둥이 내 안에도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2010년부터 10년 동안, 나는 야당리 외식업체 홀서빙 일을 했다. 찌는 여름에도, 발 시린 겨울에도 접시를 닦고, 밥상을 날랐다. 허리는 굽고 종아리는 붓기를 반복했지만, 가족을 먹여 살린다는 자부심은 나를 버티게 했다.
그러던 2020년, 코로나가 세상을 뒤엎었다. 식당은 폐업했고, 나는 하루아침에 일터를 잃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실업급여 대상자였다. 하루 66,000원, 한 달 185만원, 그것도 8개월 동안. 하늘에서 떨어진 듯한 공돈이었다.
나는 그 돈으로 식당문이 딯도록 다녔고 사고 싶던 물건도 하나둘 장만했다. 처음엔 조심스러웠지만 이내 마음이 풀어졌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좀 쉬자.” 스스로에게 핑계를 대며, 나는 게을러지는 쪽을 택했다.
그리고 8개월이 지나, 실업급여가 끊겼다.
그러나 나는 다시 일터를 찾지 않았다. 마치 또 다른 토끼가 어디선가 달려올 것처럼, 나는 나무 밑둥을 바라보듯 시간만 보냈다.
‘건달의 4년’이었다.
아침엔 커피 한 잔을 들고 뉴스만 훑었다. 오후엔 고개를 뒤로 젖히고 TV를 틀었고 저녁이면 ‘언젠가는 뭐가 되겠지’ 하며 허공을 바라보았다. 하루가 허망하게 지나도, 그것이 괴롭지도 않았다.
현실감이 흐릿해지고 무위(無爲)는 어느새 습관이 되었다.
그 무렵, 나는 적금 통장을 마지막으로 깨뜨렸다. 살림은 바닥났고, 마음은 쪼그라들었다. 그때 며느리가 조용히 500만 원을 내 통장에 입금했다.
그제야 나는 내 삶의 참나무 밑둥을 마주했다.
토끼를 기다리며 노동을 멈춘 농부,
공돈에 취해 재취업을 미룬 미련한 나,
우연에 매달려 의지를 잃고 있었던 인간.
단 한 번의 뜻밖의 행운이, 나를 얼마나 무력하게 만들었는지?
사람은 누구나 한 번의 성공 체험을 쉽게 잊지 못한다.
그 경험에 기대 현실을 회피하고, 스스로를 마비 시킨다.
과거의 방식은 바뀐 현재를 보지 못하게 하고, 마음은 어느새 *“기다림”*이라는 이름의 망각 속에 가라앉는다.
수주대토
지금 나는 그 말을 책에서가 아니라, 거울 속에서 다시 만난다. 그 어리석은 농부는 다름 아닌 나였다.
/신석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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