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효되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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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중방송 작성일25-03-23 13:04 조회9회 댓글0건본문
요즘 건강을 위해 발효식품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우리의 선조들은 지혜롭게도 된장이라는 발효음식을 만들어서 가족의 건강을 잘 챙겼다.
된장은 옛부터 오덕(五德)이라 했다. 그 가운데 단심 (丹心) 은 다른 맛과 섞어도 제맛을 오롯이 내 고 항심 (恒心)은 오래동안 상하지 않는 특점이 있으며 불심 (佛心) 은 비리고 기름진 냄새를 제거하는 개성을 가지고 있으며 선심 (善心)은 매운 맛을 부드럽게 하며 화심(和心)은 어떤 음식과도 조화를 잘 이루니 된장이야말로 으뜸가는 전통음식으 로 손색이 없다.
그러나 어린 시절 나는 엄마가 된장을 하면 엄청 투정을 부렸다. 왜 힘들게 된장을 만드는가고. 콩을 삶고 장을 치는 과정은 보기만 해도 번거롭고 힘들어서 돈 주고 사 먹으면 될 일을 왜 손수 하려 하는 것인지 리해되지 않았다. 게다가 메주를 발효시 키는 퀴퀴한 냄새도 너무 싫었다. 그러나 엄마는 된장뿐 아니라 엿을 달이고 청주를 빚고 두부를 앗고 간장, 고추장, 청국장에 감주까지 거뜬하게 잘하였다. 그런 엄마를 보면서 나는 절대 힘들게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였었는데 언젠가부터 엄마의 어깨너머로 보아 오던 음식들을 직접 만들고 싶어졌다.
엄마는 늘 말씀하셨다. “사랑이 별거 아니다. 정성이 들어가는 음식을 내 손으로 해서 가족을 챙기는 일이다.” 인생은 그림 보기가 아닌 하나하나의 체험이라는 말이 마음에 다가오며 나는 된장을 만들기 시작했다. 콩을 푹 삶아서 메주를 빚어놓고 온도와 습도를 적절하게 맞춰주면 메주가 곱게 잘 뜬다. 스스로 산도와 영양성분을 조절하여 원하는 미생물을 자라게 하는 것이 신기했다. 그렇게 서재에서 발효되며 피여오르는 메주 냄새가 아련한 기억들을 불쑥불쑥 튕겨나게 하였다.
할머니에서 엄마로, 엄마에서 나로 대물림해온 장독에서 사랑과 그리움이 망울지면서 발효하였다. 엄마의 손맛을 이어받은 장 독은 나를 따라 수없이 이사를 다녔다. 요즘은 맛있는 된장도 쉽게 살 수 있다지만 해마다 조금이나마 된장을 하는 것은 나만의 고집이다.
이런 작지만 구체적인 일들은 나에게 천국 가신 부모님을 그리는 의식(仪式)처럼 경건하게 다가왔다. 콩을 물에 불려 삶는 과정에서, 메주를 빚어 발효시키고 장을 담그는 기나 긴 시간 동안에 나는 사랑하는 가족을 떠올리면서 나만의 그리 움에 푹 젖어본다. 인스턴트음식이 날로 많아지면서 사람들은 편리를 누리고 있다지만 기나긴 산고를 거쳐야 완성되는 된장을 담그면서 나는 기다림과 인내를 배운다.
글을 쓰게 되면서 이 또한 하나의 발효과정임을 깨닫게 되였다. 생활중에서 글감을 발견하고 그것을 내 안에서 곰삭이면서 한편의 글로 완성시키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마치 알알의 콩이 발효를 통해 깊은 맛을 가진 된장으로 탄생되는 것처럼 문학창작도 나의 마음속의 파편들을 발효시켜 하나하나의 단순한 맛을 가진 단어들을 새롭게 조합해야 한다. 그래야만 따뜻하게 깨달음을 주는 감동의 글을 지어낼 수 있다.
우리의 삶도 달고 쓰고 떫은 맛을 발효하는 과정 즉 자기의 감정을 컨트롤하는 과정이다. 감정에는 찌꺼기 같은 것이 항상 부착되여 있기에 그것을 적당한 온도에서 발효시키고 승화시킬 필요가 있다. 나의 고정된 삶의 방식이나 발상을 발효시키지 않으면 부패가 된다. 마치 음식의 부패되는 것처럼 원하지 않는 미생물이 자라서 발효과정이 파괴되고 오염되여 숙성을 멈출 수 있다.
이처럼 우리의 삶은 고요한 가운데서도 쉬임없이 움직이고 있는 발효과정이다. 혼돈스러운 시간 속에서 삶은 끝없는 물음의 련속이다. 그 물음의 답은 수많은 작은 우주 속에서 발효하면서 흘러간다. 비록 손에 쥐여 지지도 머리에 각인되지도 않지 만 현재의 깊이에서 느끼면서 감수하게 된다.
인생의 발효과정에 필요한 조건은 사물에 대한 관심과 열정 그리고 습관이다. 그래서 인생을 살아가는 지혜를 키워 발효하는 과정을 꾸준히 이어 가다 보면 삶은 스스로의 마중물이 될 것이다.
/한춘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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