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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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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중방송 작성일24-01-15 11:56 조회9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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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 밥술을 놓고 집을 나서려는데 아내가 음식물쓰레기봉지를 버리라고 하기에 나는 마음이 내키지 않았지만 음식물쓰레기봉지를 들고 집을 나서 현관문 옆에 놓여 있는 음식물쓰레기 전용수거기통을 열었다. 겨울 날씨지만 특유의 음식물냄새가 코를 확 찌르기에 나는 얼른 음식물봉지를 전용수기용기에 넣고는 뚜껑을 쾅 닫았다.
 
《아저씨, 아파요. 다음엔 나의 문을 살짝 닫아주세요.》
 
돌아서고 있는 나에게 음식물전용수거용기가 귀띔해주는 것 같았다. 순간 나는 살과 뼈가 없고 신경계통이 없는 음식물전용수거용기도 인간처럼 보여 부끄러웠다. 사시장철 비바람과 눈보라를 맞으면서 이 건물에 살고 있는 주민들을 위하여 고생을 하면서도 짜증 한 번도 내지 않고 자기가 맡은 직책을 한 번도 소홀히 여기지 않고 최선을 다하고 있는 음식물쓰레기통에 고마운 생각이 들었다.
 
55년 전 상해시에서 왕씨 성을 가진 한 분이 《반혁명》 감투를 쓰고 우리 동네에 정배되어 왔다.
 
촌장은 농사일을 모르는 왕씨에게 집집의 변소의 인분을 나르는 노동을 시켰다. 그 년대 인분이 농업생산의 비료로 적극적으로 활용된 것이다. 사람들은 왕씨가 길에서 인분수레를 끌고 가는 것을 볼 때마다 한 손으로 코를 감싸고 지나지만 왕씨는 자기가 맡은 일을 열심히 하였다.
 
어느 하루, 나는 나무 꼬치에 눈이 찔리는 사고가 있었다. 눈이 붓고 시리고 아프고 눈물만 나고, 눈도 안 떠지고 하여 너무나도 무서웠다. 당시 동네는 현 병원과 80리 떨어져 있기에 그저 동네 병원을 가서 진로를 받는 수밖에 없었다.
 
동네의사는 검은 눈동자(각막)부분에 상처가 난 것 같다고 하면서 3-4일이면 나아질 거라고 했는데 20일이 지나도 눈을 뜨긴 하는데 뿌옇게 흐려 보이고 또 오래동안 눈을 뜰 수가 없어서 붕대를 감고 학교러 갈 수밖에 없었다.
 
그날도 왕씨는 나의 집 변소간 인분을 담으려 왔다. 어머니께서는 가없는 분이라고 조촐한 밥상을 방에 올려다 놓고 왕씨를 불렀다. 왕씨는 붕대로 눈을 싸매고 있는 나를 앉혀놓고 눈을 싸맨 붕대를 제끼고 찬찬히 나의 눈알을 보더니 상처자국이 감염되었기에 빨리 수술하지 않으면 한쪽 눈이 실명될 수 있다고 하면서 저녁에 수술을 하겠다는 것이였다. 나와 어머니는 인분수레를 끌고 다니는 분이 눈을 수술한다고 하니 소가 웃다 꾸러미 터질 일이라고 생각하고는 왕씨의 말을 믿지 않았다.
 
저녁에 왕씨는 약속대로 약 가방을 들고 우리 집에 들어섰다. 그리고는 수술도구를 꺼내서는 알콜 소독을 하는 것이였다.
 
《아니, 왕씨 정말 수술할 수 있소?》
 
아버지는 도무지 왕씨를 밑을 수가 없어 하는 말이였다.
《노썬, 난 안과의사입니다. 시름 놓으세요.》
 
그제서야 가족들은 마음을 놓는 듯 했다.
 
나는 반듯이 구들에 누웠다. 왕씨는 나에게 마취제를 주사한 후 20분 쯤 지난 후 수술을 시작하였다. 어머니의 말씀에 의하면 왕씨의 수술 솜씨가 대단했다고 한다. 섬세하고 아주 빠른 손놀림으로 수술하는 걸 보면 유명한 의사라는 걸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제야 알게 되었지만 버스도 통하지 않는 산골에서 똥 수레를 끌고 다니는 것이 너무나도 안타깝다는 것이였다.
 
나는 왕씨 덕분에 한 달이 지나자 눈을 정상적으로 뜰 수 있게 죄여 학교에 갈 수 있었다. 이후 어머니는 집에 별미가 생기면 왕씨를 나의 집에 모셔다 같이 식사를 하였다. 1978년 왕씨는 《반혁명》 감투를 벗고 다시 상해로 떠나갔다. 후에 알고 보니 왕씨는 중국에서도 유명한 안과박사였다.
 
이 세계는 넓은 무대와 같고 우리는 그 무대에서 자기에게 주어진 역할을 수행하는 배우와 같다. 또는 모든 직책은 소용이 있어 생겨난 것이다. 귀한 직책, 천한 직책이 따로 없다. 돈 많이 버는 직책, 편안 직책, 권세 휘두르는 직책, 뼈 빠지게 일해 봐야 겨우 입에 풀칠이나 하는 직책, 일하면서 이리 채이고 저리 채이는 힘없는 직책, 또는 농부의 생활과 학자의 생활, 의사의 생활과 배사공의 생활은 완전히 다르다. 그러나 우리는 자기가 맡은 역할을 성심성의로 다 해야 한다.
 
자기 직책을 천직으로 생각하고 자기 직장을 인생의 도장으로 믿고 매일매일 내가 하는 일에 정성을 다하고 심혈을 기울이고 정열을 쏟아야 한다. 농부는 농부 구실을 잘해야 하고 공무원은 공무원 구실을 다하고 군인은 군인의 구실을 잘해야 한다.
 
모든 직업인들이 자기의 직책을 천직으로 생각하고 사명감과 대공주의의 정신을 가지고 자기 일에 헌신하고 몰두하고 봉사할 때 나라는 부강해지고 우리 민족은 번영할 수 있다.
/신석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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