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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이야기

자유공간 그룹과의 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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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중방송 작성일22-06-06 16:45 조회62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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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십대에 한국에 왔다. 한식을 더 배우려는 욕심에 왔지만 생각과는 달리 돌봄 서비스업에 발을 들여놓았다!
 
1996년 초에 나는 남들의 다 가고 싶어하는 대도시 상하이로 갔다. 그 당시 가정부들은 많이 부러워했지만 7곱살짜리 딸애를 두고 가는 내 마음은 너무나도 아팠다.
 
막상 떠나면서도 집 걱정에 딸애 걱정에 벌써 발걸음이 무거워 졌다.
 
내가 떠나는 날 아침, 어린 딸애는 눈물이 글썽해서 “엄마~, 내 노래 한곡 불러 줄까요? 하고 물었다.
 
나는 슬픔에 잠긴 딸애의 얼굴을 보면서 그래, 불러줘! 라고 대답은 했지만 딸애의 아픈 내심을 읽을 수가 있어 내 마음도 칼로 에이듯 아파났다.
 
딸애는 노래를 불러댔다.
 
세상에서 엄마가 제일 좋아
엄마 있는 아이는 보배 같지요…
 
흐느끼면서 노래를 부르는 딸애를 나는 내 품에 꼬~옥 껴안아 주었다.
 
한참 서럽게 울던 딸애는 내 팔을 풀면서 엄마 잘 다녀오세요. 건강 잘 챙기세요. 기다리겠습니다. 라고 외돌차게 말했다!
 
나는 울컥하는 마음을 억지로 참고 딸애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엄마가 돈 많이 벌어서 우리 딸에게 예쁜 옷을 많이 살줄게 …
 
그렇게 모질게 마음먹고 떠난 타향길이 십여년 되었다.
 
모성애는 모든 엄마들의 숙명이라 할까? 그 누구도 이런 애절한 엄마 마음을 이해 할 것이라 생각한다.
 
이렇게 나는 딸애를 보고 싶고 그리워하면서 몇 년을 힘들게 보내던 중 중학교 1학년 다니는 딸애를 상하이로 데려다 공부시켰다. 딸애가 대학을 졸업하자 나는 한국에 왔다.
 
상하이에서 나는 고급식당에 요리사로부터 요리장으로 일했다!
한식을 더 배워서 다시 상하이로 가기로 약속한 것이 현실로 되지 못하고 돌봄이란 서비스업에 발을 붙였다!
간병일이란, 환자에게 식사나 대접하고 물리치료 하러 모시고 다니면 다 되는 줄 알고 시작했지만 너무 끔찍한 현실 앞에서 나는 멍해졌다.
 
나는 주민등록증을 받고 서울에 있는 한 요양병원에 취직했다. 한 여사님과 함께 들어간 병실은 중환자실이였다.
 
나는 병상에 누워있는 환자들 모습에 온몸이 굳어지는 감을 느꼈다. 너무 황당하고 무서웠다.
 
환자들이 머리 술을 했다. 의식 수술을 받지 않아서 머리 절반은 거의 없다 싶이 푹 패여 험상궂은 얼굴들이다.
 
손에 식은 땀이 났다. 내가 어쩌다 이런 일을 해야 하나?
 
억울한 마음에 눈에서는 눈물이 금시 떨어 질 것만 같았다. 돌봄 일이 이렇게 힘든 일인 줄 일찍 알았더라면?...
 
후회 막급이였다.
 
그때는 간병인들이 면접도 보고 까운 값 협회 가입비도 지불해야 했다. 일단 일에 착수하면 무조건 5일이란 실습을 받아야 정식으로 근무할 수 있었다.
 
돈 벌려온 우리들인데 뭐 5일씩이나 실습해야 하나?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나는 비유가 약한지라 기저귀케어와 섹션 통을 비우는 것을 보고 그 자리에서 토할 것만 같았다. 점심식사 시간이 되여 다들 밥먹으려 갔다.
 
옆에 있던 여사님이 새댁도 밥 먹어야지 하고 내 손을 잡아끌었다. 밥상과 마주 앉았지만 자꾸 눈앞에 기저귀 교체할 때가 생각나서 도저히 밥이 목구멍으로 넘어가지를 않았다.
 
나를 쳐다보던 여사님들은 새댁은 회사나 다니지 왜 벌써부터 이런 어지러운 일하냐고 물었다. 그 당시 나는 사십대라 하지만 애 띤 몸매로 어려 보였다. 여사님들은 나를 막내라고 불렀다. 후에 알고 보니 같은 또래가 많았다.
 
나는 실습 3일째 되는 날까지 일 배우는 둥 마는 둥 살손을 붙이고 배우려고 하지 않았다.
 
주위를 보면 모든 사람들 제 나름대로 시계바늘 가는대로 맞춤형 인생을 살아가노라 분주히 보냈다. 나는 어쩐지 저 흐름속에 나 자신도 포함돼 있을까 생각하면서 살아온 날들과 앞으로 살아갈 날들이 허무하게만 느껴졌다.
 
타향살이 십여 년을 경험한 것이 한국생활에 적응하는데 디딤돌이 될 거라 자부심을 가졌지만 이런 현실 앞에서 마음이 마치 모래 탑 마냥 한순간에 와르르 무너졌다. 간병 3일째 되던 날 오후 한 여사님이 인지가 있는 할머니를 가리키면서 섹션을 해주라 부탁했다.
 
그 할머니도 제가 초보인 것을 알고는 안 된다고 손으로 나를 밀치면서 거절하였다. 나는 그때 환자도 나를 초자라고 믿지 못하고 거부하는 그 말에 반발심이 생겼다. 나는 자존심이 상했지만 마음을 추스리고 그 할머니한테 내가 살살 해드릴 테니 한번 해봅시다. 라고 당부삼아 말씀드렸다!
 
할머니는 나를 쳐다보더니 나의 눈빛에서 내 마음이라도 읽었는지 아까 태도와는 달리 고맙게도 나의 당부를 받아주었다!
 
고마웠다 나는 처음으로 섹션을 했다. 할머니는 손을 내밀더니 엄지척을 했다!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그날 저녁 퇴근하시려던 간호부장이 중환자실에 오셨다.
 
나는 농담 삼아 진담삼아 부장님, 혹시 환자케어를 5일 동안 실습하면서 다 터득할 수 있어요? 라고 물었다. 부장님은 아니요. 환자 케어 하면서 경험도 쌓을 수 있고 노하우도 생긴다고 말씀하셨다.
 
부장님, 그런데 우리가 왜 5일씩이나 실습해야 하나요? 너무 긴 시간입니다. 돈 벌려 타국에 왔는데 이건 아니잖아요? 라고 말씀 올렸더니 부장님은 나를 빤히 쳐다보더니 그럼 저 환자분을 섹션을 해 보세요. 라고 하셨다. 나는 주저 없이 남들이 할 수 있는 일을 나도 할 수 있다고 마음먹고 한번 또 경험도 해봤으니 담대하게 나섰다.
 
내가 하는 것을 옆에서 지켜보던 부장님은 내일부터 정식 근무를 하세요. 라고 말씀하셨다. 옆에서 보던 간병인들은 우리는 무조건 5일씩 실습했는데 저 여사님은 왜 3일만 하냐고 따졌다.
 
부장님은 저를 가르키면서 이 여사님처럼 긍정적으로 자신감 있게 일을 하시면 누구든지 다 그렇게 해드린다고 대답하셨다.
 
나는 그렇게 중환자실에서 열심히 일했다. 수 간호선생님은 2개월 되던 날 나를 불렀다. 간병팀장을 하면 어떻겠냐고 물었다. 나는 아직 경험을 더 쌓아야 된다고 거절했지만 수 선생님은 충분히 잘 할 수 있다고 힘을 실어주셨다.
 
그렇게 오늘까지 팀장 15년차다. 그동안 많은 인연들을 만났다. 나는 한 지인의 소개로 우연히 자유공간그룹에 참여했다. 그룹에 들어와 보니 많은 훌륭한 분들이 계셨다.
 
자유공간그룹은 카카오톡으로 우리 간병인들의 일자리를 제공하는 무료그룹이다! 많은 간병인들은 이 그룹에서 구직되였고 그룹장과 관리팀의 도움을 받아 일하고 받지 못한 급여와 억울하게 당한 일들을 해결받았다!
 
나는 “아~ 이거구나!” 하고 마음이 끌렸다!
 
간병인들의 일자리 창출로부터 간병인 교육 환자케어에 대한 다양한 재료들을 제공하여 간병인들의 직업상 애로들을 감소 할 수 있게 도움을 주어 평판이 좋은 그룹이였다!
 
나도 이 그룹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가 생각해 보았다. 마침 최남일 그룹장의 도움으로 관리팀에 들어갔다. 평시 나는 관리부분에서 일한 경험으로 일을 잘 할 수 있었고 많은 훌륭한 지인들을 만날 수 있었다.
 
2020년에 최남일 그룹장과 함께 위챗에 간병팀장그룹을 개설하였다. 생각외로 반응이 좋았다.
 
그룹에서 우리는 타국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분들에게 후원도 해주었고 좋은 작품, 영상, 최신정보들을 공유하면서 힘든 일상에서 몸과 마음이 지친 회원들에게 힐링 할 수 있게 공간을 제공하였다!
 
그룹 회원들은 현명한 분들이 많다. 김용이란 젊은 분이 교통사고로 치료비로 힘들어 할 때 우리 자유공간그룹 회원들과 팀장들이 아낌없는 경제적 후원과 진심담긴 애심을 전달하고 힘을 실어 주었다.
 
최근에 또 관리팀에 계시는 탐장의 아들이 교통사고로 수술비용 때문에 힘들어한다는 아픈 연에 최남일 그룹장의 리더하에 자유공간그룹의 회원들과 팀장들이 따뜻한 후원의 손길을 보내주셨다!
 
본인들도 힘들게 일해오시면서 챙겨야할 가족들도 많지만 본인들의 아픔마냥 헌신하는 그들의 고마운 마음은 아름다운 보석처럼 빛날 것이다!
 
이런 훌륭한 분들이 계시기에 세상은 아름다운 것이라고, 인정미가 넘치고 살맛나는 세상이라고 생각해본다.
 
모래위에 발자취는 오래가지 못하지만 우리 자유공간그룹에서 만난 인연의 발자국은 영원히 이 땅위에 새겨질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이렇게 자유공간그룹과의 인연에서 현재 9000명 되는 회원들과 최 그룹장을 비롯한 관리팀 팀장들과 두터운 우정과 인연을 맺고 있다.
 
생각하면 마음이 뿌듯하고 자부심이 생긴다! 나는 자유공간그룹에 “팀장 역할이란” 교육재료와 방호복을 입고 나와 동고동락을 함께해온 간병사들의 코호트격리에 힘들었던 나날들을 “방호복을 벗던 날” 로 글로 표현하였고 자유공간그룹을 홍보로 “폼”이란 시도 썼다. 그리고 50~60대 간병인들을 위해 힘을 실어주고 싶어서 많은 글들을 쓰고 싶다.
 
나는 지금 자유공간 팀장그룹에서 그룹장으로 열심히 활약하고 있다.
 
타국생활에서 나와 동병상련이 된 그들은 어쩜 내 인생의 동반자와도 같다. 힘들고 지쳐
있을 때 누군가가 손잡아주고 이끌어주고 사랑을 주면서 서로가 버팀목이 되어 준 그대들이 오늘날 그룹을 전대미문의 그룹으로 발전시키는데 한몫을 담당하고 있다. 실로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이다!
 
그들이 있기에 내 마음은 든든하고 후련하다.
 
오늘날 우리 자유공간그룹은 동포들을 위해 많은 간병일자리를 제공해 주고 있다. 그룹의 번창은 회원들의 로고와 갈라놓을 수 없다.
 
그대들이 계셔서 그룹은 앞으로도 초심을 잃지 않을 것이다. 회원들은 우리그룹의 생명수이다. 배려, 사랑, 베품, 3가지를 다 갖춘 삼다수이다.
 
많고 많은 인파속에서 만난 인연, 삶이라는 소풍에서 만난 인연, 자유공간그룹에서 만난 인연, 이 모든 인연들은 고국을 떠나 모국에서 만난 인연이다. 인연은 소중하고 관계는 노력이고 그 인연을 잘 이어가는 것도 중요하다.
 
함께하는 여정의 길에는 나눔이 있고 사랑이 있고 배려가 있다.
 
나는 그 인연들에 내 마음을 의지하고 동고동락하면서 오늘까지 그 빛을 받아 꿋꿋이 잘 살아가고 있다. 세월을 반추해보면 다사다난 했던 힘든 날도 있었지만 즐겁고 행복한 날들이 더 많다고 생각한다.
 
생각해보면 참 고마운 인연이라고 나는 말하고 싶다.
 
자유공간그룹에서 맺은 인연의 끈을 놓지 않고 그룹을 활기차고 다채롭게 꾸려 타향살이에서 몸과 마음이 지쳐있는 분들에게 힐링 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여 고향에 돌아가는 그날까지 무탈하게 건강하게 돌아갈 수 있도록 힘을 실어줄 것이다.
 
오늘도 간병일선에서 환자들의 손발이 되여 노심초사하시면서 몸과 마음을 헌신하는 우리 자유공간그룹 회원님들과 팀장님들 그리고 저와의 인연이 되어 준 모든 분들에게 항상 건강하고 무탈하시고 좋은 일만 가득하시고 행복이 소복소복 쌓일 것을 기원합니다.
 
끝으로 좋은 인연이 되어 준 여러분들에게 존경하고 사랑한다는 말을 꼭 전하고 싶다!
/이영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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