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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이야기

아픔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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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중방송 작성일23-08-20 19:03 조회25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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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전 나는 퇴직하고 한국행을 선택했다. 언제나 아들 며느리를 첫자리에 놓으시며 항상 맛있는 여러 가지 음식을 손수 만들어 떠나기 전에 먹고픈 것을 다 먹으라며 항상 푸짐하게 음식상을 차려주시던 시어머님의 배웅을 받으면서 말이다. 손 흔들어서 배웅하면서 돈을 아끼지 말고 돈 벌라며 신신당부하시며 까만 흑점으로 보일 때까지 바래주던 시어머님이시다.
 
4년 후다. 오매에도 그리던 고향에 도착하자마자 짐을 집어던지고 나와 남편은 두 주먹을 쥐고 바람이 일듯이 꿈속에서도 그리던 시어머님의 계시는 모 요양원으로 달려갔다.
 
나와 남편은 원장 선생님의 안내를 받으며 어머님의 계시는 침실로 들어갔다. 시어머님을 만나는 순간 나는 아예 선 자리에 굳어지고 말았다.
 
4년 전의 밝고 활기찬 모습하고는 너무 앙상하게 바싹 메마른 어깨가 축 처지고 왜소한 시어머니가 짧디 짧은 남자머리를 깎고 옷도 순서 없이 여러 겹 껴입고 침대에서 내려와 땅바닥에 쪼크리고 앉아서 초점 잃은 눈길로 멍하니 우리 둘을 보고 있다. 너무나도 초라한 모습으로 말이다.
 
내가 기대해온 시어머님의 모습과 눈앞의 초라한 시어머님의 모습이 흐릿해진 시야에서 플래시 화면처럼 엇바뀌고 있었다. 저분이 나의 시어머님이 맞으시냐? 누가 나의 시어머니를 저렇게 만드셨지? 단지 4년이란 시간이 시어머니를 저렇게 만드셨을까? 단지 세월 때문일까?
 
2년 전만 해도 비자문제로 남편이 중국에 돌아갔을 때도 맨발 바람으로 구들에서 달려 내려와 반갑게 손 잡아주던 시어머니가 지금은 정기 잃은 두 눈으로 덤덤하게 무표정하게 땅바닥에 앉아 과자를 잡수시고 있는다.
 
남편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그저 어머님을 안아 침대에 앉히고서는 "엄마, 아들 며느리가 돌아왔습니다, 엄마 아들이" 라고 톤이 높은 목소리로 부르지만 시어머니는 "넌 누구야? 왜 이렇게 귀찮게 굴어. "라고 하고서는 남편을 밀쳐버린다. 그리고는 나를 건너보면서 "너는 또 누구니?" 하면서 나의 대답을 기다리는 듯 물끄러미 나를 쳐다보는 것이였다.
 
너무도 어이가 없는 것이다. 심장이 막 쪼여들면서 아파난다, 눈물샘을 비집고 나오려는 눈물을 참으려고 안깐힘을 다 하건만 눈물은 좀처럼 나의 뜻을 따라주지 않는다. 남편도 북받쳐 오르는 감정을 참기 어려워서인지 벌떡 일어나 밖으로 훌쩍 나가버린다. 시어머님은 여전히 퀑하니 앉아서 손에 쥐고 있는 과자를 먹다가는 끊어서는 부지런히 침대 밑에 던져버린다. 원장선생님과 물어보니 병아리에게 먹이를 주신단다.
 
시어머니가 1년 전부터 알츠하이머병으로 앓고 계신다는 것은 알고 있는 것이였지만 이렇게까지 빨리 진행될 줄이야 생각도 못했다. 파고드는 후회가 나의 얼굴을 사정없이 때려 갈긴다. 1년 앞서 빨리 돌아왔어도 시어머님과 오손 도손 둘이 앉아 맛있는 음식을 대접해 드리면서 재미있는 어머니 이야길 들을 수 있었는데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심장은 옥죄여들고 눈물이 시선을 가린다. 코로나 19때문에 하늘길이 막혔다하지만 그래도 딱 가려고만 한다면 갈 수는 있었던것이다.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심장은 점점 돌처럼 굳어져 호흡마저 하기 힘들 지경이다.
 
감정을 추스리고 남편이 들어오자 나는 원장선생님과 따뜻한 물을 대야에 떠다 줄 수 있는가하고 부탁을 청구했다. 따뜻한 물이 오자 나는 말없이 남편과 함께 시어머님을 머리를 감겨드리고 몸도 따뜻한 수건으로 조심스럽게 닦아드린다. 그러면서 나의 기억의 쪽배는 저도 모르게 옛날의 바다로 노 저어간다.
 
매년 가을 김장철이 돌아오면 시어머님은 백여 폭의 김치를 손수 담구어서 자식들한테 똑같이 나누어준다. 또 명절이면 출근하는 며느리가 힘들다며 만수성찬 갖추어 놓고 아침 와서 먹으라는 전화벨 소리가 나를 꿈속에서 깨운다. 뜨개질 솜씨가 이만저만이 아닌 시어머님은 손녀와 며느리의 털실옷의 전문담당이다. 한코 한코 뜨개질하여 시체 멋 나는 털실 옷을 하루라도 손녀와 며느리를 빨리 입히려고 밤을 지새우며 한코 한코 뜨개질 하신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시어머님이 가엽서 보이고 치매라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어머님, 사랑하는 어머님, 단 한순간만이라도 이 아들 며느리를 알아보았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나는 북받치는 감정을 간신히 억제하며 내가 사온 새 옷을 갈아입히고 새 양말도 신겨드렸다. 시어머님은 이쁘다 하며 손으로 만지작거린다. 나는 또 어머님이 밤새동안 헤쳐 놓은 옷 보따리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원장선생님이 말에 따르면 시어머님은 다른 사람이 자신의 물건에 손을 못 대게 하고 거부감이 그렇게 심한데 그래도 며느리가 옷을 정리해 드리고 몸도 닦아드려도 일 없는 것이 참 별일이라고 한다. 아마도 시어머님의 마음속에 깊히 뿌리 내린 아들며느리에 대한 끝없는 사랑이 효력을 낸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고향에 와 있는 동안만은 시어머님의 곁을 많이 지켜드리면서 그사이 고독했었고 아들며느리를 기다리던 그 쓸쓸함을 풀어드리리라 다짐하면서 시어머님이 오래오래 건강하기를 마음속으로 기도하면서 내일 어머님한테 가져갈 반찬재료를 사러 시장으로 향했다.
/장영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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