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을 고할 때가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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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중방송 작성일23-06-06 10:40 조회429회 댓글0건본문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초록의 세상에 탄성이 터진지가 엊그제였는데 요즘 산마다 아카시아 꽃이 하얗게 피였다. 장미의 5월이라지만 아카시아의 은은한 향기에 취하고 싶은 오월이였다. 계절의 변화에 감사하고 자연이 안겨주는 행복에 마음 깊이 감사드린다.
67년 살고있는 나의 몸, 머리부터 발끝까지 잔병투성이 된 이몸, 삶의 역사를 이루어낸 이몸을 이젠 쉬여줄 때가 된듯 싶다. 얼마나 혹사 시켰는지 내몸은 알고 있다. 일에 쫓겨 늘 바지런히 앞만 보고 걷다가 가까이 들여다보니 그새 주름이 자글자글 늙어있다. 이젠 걸음의 속도를 늦추고 느린 보폭으로 발걸음 멈출때가 됐다고 생각한다. 토닥토닥 내가 나를 위로해 주어야겠다. 인생의 전반전은 성공을 추구했다면 후반전은 마음을 키우는 삶, 건강을 추구하는 삶을 살아야겠다. 이젠 통장의 잔고도 생각하지 않고 나의 몸을 더 사랑하기로 했다.
그동안의 간병일상은 어수선한 지루함의 연속이었다. 건강식단 NO, 편식 NO, 뭐가 있으면 뭘 먹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환자침대 옆 작은 간이 침대에서 얇은 이불을 깔고 쪼그리고 쪽잠을 자고 개인적인 질문이 끼어들 틈이 없었던 삶이었다. 때론 지친 몸을 의자에 던지고 잠간이나마 기절한듯 잠에 곯아 떨어졌다가 보호자의 눈총을 받은 적도 있었다.
그래도 나름 후회없이 열심히 노력했다. 간병인에게 주어진 협소한 공간안에서 되도록이면 깔끔하게 살려고 정리정돈은 칼같이 해서 페기하는 박스를 주어다 안을 물딧슈로 깨끗이 닦아내고 빵집 쇼핑백을 박스속에 부치고 큰박스속에 작은 박스를 맞춰 넣으면서 훌륭하게 서랍장도 만들어 사용하였다. 깔끔하게 정리해 놓고 보면 병원생활도 좀 가뿐하게 살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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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전쟁 같은 하루를 보내면서 영혼없는 대화로 치매환자를 달랬고 감당하기 어려운 한계에 부딪혀 낙심천만도 했었다. 마음이 산산조각이 날때도 있었고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 눈앞에 쏟아지기도 했었다. 우락부락한 생김새에 잠시 경계심이 스쳤다가 환자의 수줍은 미소에 마음을 놓고 일하기도 했고 폭력적인 치매환자에게 욕먹고 꼬집히고 할퀴기, 물리기도 하면서 안 그런 척, 모른 척, 괜찮은 척, 착한 척, 적당히 참고 견뎌왔다. 때론 마음이 산산조각이 나기도 했고 좁은 마음이 들기도 했었다. 그래도 봉사가 아니라 응분의 댓가를 받은 덕분에 은행잔고는 많이 늘어 났다. 주저리주저리 나의 간병인생의 넋을 쏟아내고 보니 허탈하기 그지없다.
그동안 가슴 절절한 감동들도 많았고 아쉬웠던일도, 가슴 아픈 사연들도 많았었는데 차곡차곡 나만의 추억으로 남겼다. "마음은 몸속에 있고 몸은 마음속에 있다"고 했다. 하루를 열심히 산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그동안의 삶은 선한 의지가 필요했다.
지금 나는 간병인으로서의 내 삶이 그리 싫지 않다.
4월 30일, 한민족신문 창간 15주년기념행사에서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위원장 표창장을 받았고 재한동포 애심간병인 총연합회에서 특수공로상까지 받은 덕에 그동안 걸어온 간병인의 생을 되돌아보면 감회가 생긴다.
행복과 자부를 느끼기도 한다. 사람들은 간병이란 대소변을 치우는 하찮은 일이라 생각하겠지만 환자나 보호자가 만족해 하면 나는 보람을 느끼기도 했다. 그동안 내 손을 거쳐 건강이 회복된 환자, 갖은 심혈을 쏟았지만 명을 달리한 가슴아픈 환자들이 추억 속에 오래도록 남아 있을것 같다. 하지만 결코 적다고 할 수 없는 나이다 보니 지나온 날들보다 살아갈 앞날을 더 자주 돌아봐야 겠다.
꽃은 봄마다 핀다지만 세월은 가면 돌아오지 않는다. 일이든 놀이든, 체력이 부족해 중간에 그만둘 때면 억울하지 않을까? 스스로 정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체력은 길러둬야 하고 몸은 아껴야겠다. 내 인생의 봄날은 갔다. 꿋꿋하게 코로나도 이겨냈다. 집 나왔던 아줌마가 코로나에 갇혀 할매가 다 되도록 컴백하지 못하고 있다. "가출한거 용서해줄테니 빨리 컴백홈하라"는 집식구들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이젠 고향으로 돌아가야겠다.
편 가르기가 만연해 있는 오늘의 현실을 좌절하기에 앞서 모기만한 힘이라도 모이고 모여 뭉쳐야겠다는 숙제를 남기고 간병사의 처우개선 과제도 남기고 간병사에게도 밤이 있는 삶이 주어지길 바라는 마음만을 안고 간병일에 종지부를 찍는다. 내 스스로 정한 정년퇴직이다.
할미꽃이 겸손한 모습으로 고개를 숙이듯이 이젠 인생의 깊은 산속에서 노년의 삶을 살아야 겠다. 내가 알고있는 모든 이들이 늘 건강하시고 원하시는 일들이 이뤄지길 기도하면서 오늘의 인사를 마친다.
/김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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