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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이야기

내 삶의 무게는 얼마나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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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중방송 작성일22-12-28 20:42 조회48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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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청하던 가을 하늘이 갑자기 치매가 왔는지, 아니면 가을에 쫓겨갔던 장마가 심술을 부렸는지? 연 3일 동안 늦가을 날씨답지 않게 잔뜩 흐린 날씨에 많은 양의 비를 뿌려 그동안 집에 푹 박혀 꼼짝 달싹 못하고 갇혀 있다가 오늘 모처럼 가을다운 화창한 날씨라 아침밥 술을 놓기 바쁘게 집 문을 나섰다.
 
아침의 찬 기운이 싸늘하다 못해 코끝과 귀 부리에 냉기가 감돈다. 터밭에는 아직 거두지 않은 겨울 김장배추와 무가 간밤에 내린 서리가 아침 해살에 반짝거리고 있다.
 
눈을 씻고 올려다본 가을 하늘은 정말로 거짓말 하나 보태지 않고 눈이 시리도록 파랗고 이따금씩 드문드문 ㅅ자 모양으로 줄을 서서 남쪽으로 가는 기러기 떼가 끼룩끼룩 소리를 내며 어디론가 날아가고 있다. 길옆 풀숲에는 잠자리와 메뚜기들이 서리에 날개가 무거웠는지, 아니면 몸이 굳었는지? 사람이 가까이 가도 도망가려 하지 않고, 눈만 뒤룩거리며 나만 빤히 쳐다본다.
 
길 건너 사래 긴 옥수수밭과 가을걷이를 끝낸 논밭에는 소와 양 떼가 유유히 흐르고 있다. 이 가을도 이제 곧 떠날 채비를 하고 있다. 물이 고인 웅덩이에는 떨어진 낙엽이 바람이 부는 방향에 따라 이리저리 떠다니고 있다. 가던 걸음이 저도 모르게 멈춰지고 그 낙엽을 우두커니 서서 보노라니 문득 내 삶의 무게는 얼마나 될까 하는 생각이 든다.
 
25살에 결혼해서 아들로서, 남편으로서, 아버지로서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가정의 생계와 생활 유지를 위해 날마다 일에 쫓기고 시간에 쫓기고 세월에 쫓기고 돈에 쫓기면서 나름대로 좌우나 뒤를 돌아볼 여유조차 없이 다람쥐 채 바퀴 돌듯 줄곧 앞만 바라보고 열심히 달리며 살다 보니 어느덧 내 나이 60의 문턱을 넘어서게 되었다.
 
오늘에 와서 지나온 내 삶을 돌아보니 오직 내 가정을 위한 삶을 살았고 물질적으로 풍족하고 성공한 삶을 살았지만 취하지 말았어야 할 너무도 많은 것을 취하며 살아왔다.
 
항상 남들보다 더 잘 살아보겠다는 경쟁의식과 거기에서 오는 열등감과 불안감에 마음을 조이며 살았다. 물질에 대한 끊임없는 집착과 추구, 채우고 채워도 늘 모자람에 허둥거리는 허욕과 과욕의 늪에서 살았다. 물질에 집착하게 되니 나에게 있던 인성이 마실 나갔다.
 
대신 무슨 일에서나 이해 타산을 앞세우게 되고 그러다 보니 나와 상관없는 일에 매사에 무관심이었다. 어려운 이웃이나 길에서 누군가 어려움에 처했거나 거동이 불편한 장애인이나 노인들, 걸인들을 보면 '강 건너 불 보듯' 지나치기 일쑤다. 그리고 사람을 대함에 있어서 눈빛이 싸늘하게 되고 마음이 차갑게 되고 말과 행동이 거칠게 나오게 되는 등 나쁜 습관들이 바위 돌처럼 무겁다.
 
반면에 내 삶에 응당 취해야 할 너무도 많은 아름답고 필요한 요소들을 취하지 못하고 정신적으로 너무 삭막하고 가난하게 살다 보니 이웃과 사회에 대한 관심과 따뜻한 사랑, 부드러운 눈길, 선한 마음, 헌신하는 습관과 친절한 행동들은 언녕 창살 없는 감옥에서 격리와 자유를 박탈당하고 찌그러진 냄비가 되어 한쪽 구석에 낯바닥을 비벼대는 신세가 되었고 나의 여러가지 취미생활도 사라져 깃털처럼 가벼운 삶을 살아왔다.
 
육신의 나이가 하나씩 많아질 때 정신의 나이도 하나씩 보태져야 하는데 오히려 사라져 버렸다. 오늘에 와서야 훈장같이 세월이 준 흰 머리카락은 부끄럽게 산 수만큼 많아 이제야 고개를 숙이게 된다.
 
인간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물질생활을 추구하는 것도 좋지만 너무 물질에만 치우치게 되면 저도 모르게 인간이 갖추어야 할 인성을 잃어가게 된다. 인성을 잃게 되면 삶의 균형을 잃게 되고 항행하던 배가 균형을 잡지 못해 전복되고 맛 좋은 재료에 양념이 빠지듯 자기 삶에 응당 있어야 할 삶의 아름다운 요소들이 빠져 삶의 의미와 보람이 사라지고, 기쁨과 행복도 사라진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흐르는 맑은 물에 솔바람의 향기를 더하듯 경험에서 얻어지는 지혜를 터득하는 과정이라 생각한다. 다행이 균형을 잃은 삶, 삶의 즐거움과 행복을 잃은 삶을 살아온 그런 자신을 이제라도 발견할 수 있어 다행이고 축복받은 행운이 아닐까 싶다.
 
비록 인간의 삶은 모두 미완성의 숙제로 끝난다고 하지만 어차피 인간으로 태어나 이 세상에 한번 살다 가는 인생, '같은 갑이면 분홍치마라'고 적어도 나에게 주어진 남은 삶만은 허송하지 말고 내가 책임지고 열심히 가꾸고 최선을 다해 노력하면 완성이라는 삶과 그 거리가 가까운 삶을 살아가는 게 더 바람직한 삶이 아닐까. 그리고 지나온 삶에 얽매이지 말고 미래에 휩쓸리지 않는 바로 지금 현재부터 나를 위한 삶, 나를 새롭게 변하게 하는 그림을 하나하나 그려가는 것이 바람직한 삶의 자세라고 본다.
 
'늦었다고 할 때 아직 늦지 않았다'는 말이 있듯 이제라도 당장 물질에 대한 집착과 욕심, 내 몸과 영혼에 쌓인 나에게 불필요한 오물과 찌꺼기들을 빡빡 긁어모아 흘러가는 물에 미련 없이 버려버리고 마실갔던 인성을 되찾아와 인간의 가치와 무게가 있고 의미가 있고 보람이 있는 일상을 살아가야 하겠다.
 
사람을 대함에 있어서 항상 부드러운 눈길, 아름다운 말, 선량한 마음, 헌신하는 습관, 친절한 행동, 어려운 이웃에 따뜻한 사랑과 배려하는 자세, 사회에 대한 관심으로 살아갈 것이다.
 
그런 삶을 살아가자면 우선 뭐니 뭐니 해도 건강이 최고인 것만큼 내일부터 새벽처럼 기상해 아침 조깅과 여러가지 운동으로 건강을 챙길 것이다. 그리고 여러 가지 취미생활을 찾아 기쁨과 즐거움도 누리며 살 것이다.
 
젊어서부터 수필과 시 쓰는 소질과 취향이 있어 여러 신문과 잡지에 수십 편을 발표했던 열정을 되찾아 지금부터 많은 시간을 할애해 책을 많이 보고 글도 많이 쓰고 투고도 하면서 그동안 잊고 지내던 문학도들과 전화와 만남을 통해 자주 교류하면서 즐겁게 살아야 하겠다.
 
자주자주 산을 찾아 힐링도 하면서 자연의 섭리와 법칙을 터득하고 제 때에 마음과 영혼을 정화하고 가끔씩 이름난 유람지를 여행도 다니며 짧은 안목과 견식도 넓히는 여유도 가져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추적추적 비 오는 날이면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그래서 친구들이나 동창들과 지인에게 안부 전화도 하고 만나서 점심도 먹고 커피나 차 한잔 하거나 집에서 맛있는 음식을 준비해 놓고 술잔도 나누면서 마음과 정을 돈독히 쌓고 덕담을 나누는 것도 좋으리라 생각한다.
 
그렇다고 너무 내 삶에만 치우쳐 살지 말고 아직도 어렵게 사는 이웃들이게도 따뜻한 마음과 사랑, 배려하고 봉사하면서 살 것이다. 내 적성에 맞고 나만 가지고 있는 특성과 빛깔을 살려 삶의 무게를 살찌워 삶의 균형을 조금씩 맞춰가면서 이제 나에게 남은 인생 제 2막을 '내 생의 첫날' 이라 생각하고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살아간다면 새롭게 변해가는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아침 한나절의 해가 가던 걸음을 멈추고 흐뭇하게 웃으며 내 어깨를 다독거려 주면서 집에까지 따라와 배웅하고 제 갈 길을 재촉한다.
 
어느새 산 까치 부부가 마당에 있는 사과나무에서 꼬리 총을 흔들며 '까아악, 깍깍' 소리 지르며 반갑게 인사도 한다.
/허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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